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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바꾸다.

-다 큰 어른의 "주책"과 "순수" 사이에서

by 걷는사람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각자 자기분야에서 어느 정도 승패를 겨룬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경기장에 들어서기는 쉽지않다. 보통 이를 “주책” 내지는 “무모함”이라고 한다. 매번 테니스 경기를 하고 좌절하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공연히 잘하지도 못하는 운동을 하고있는가?

나는 왜 공연히 오늘도 코트에 나가 잘 못한다는 걸 여전히 확인하고 터벅터벅 돌아오는가? 내가 여기서 새로운 인생의 2막, 3막을 열어보려는 것인가? 아니다. 전혀.. 거의.. 아마도. Never..Rarely.. Barely


테니스라는 새로운 경기장에 찾아가다.

나는 내 인생에서 테니스라는 새로운 경기장에 제발로 찾아들어갔다. 새로운 경기장에 간다는 것은 새로운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누가 억지로 떠민 것도 아니고, 무슨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른이 되고나서 이런 짓을 하기는 쉽지않다.

하루는 나의 "안정적인" 즉, 줄지도 늘지도 않는 실력에 실망하며 아파트에 들어오는데 누가 이렇게 우편함에 테니스 공들을 잔뜩 담아놓았다. 그 집주인이 무슨 연유로 이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갑갑한게... 딱 내 처지를 보는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나름 내 분야에서는 열심히 해왔다. 그냥 오래 했다고 꼰대처럼 인정해달라는게 아니다. 내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서 모자란 공부도 하고 늘 소통하며 일을 개선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분야나 직급을 떠나 적어도 내 분야에선 나도 프로급이란 말이다.


그런 익숙한 내 분야를 놔두고, 굳이 익숙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소위 “체육계”에 발을 내디딘 건 알량한 승부욕이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순수하게 “좋아해서” 이다. “하고싶어서”이다. 내가 내 몸을 가지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하게된 것이다.

왜?
그냥 좋아서


요즘처럼 연이어 비가 쏟아져내려 며칠씩 코트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창밖을 보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날이 덥거나 추워도 코트에 나가 한두걸음 달려 치다보면 잘 나왔다, 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오늘 처음 본 내 파트너와 기분 좋게 격려하며 운동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마찬가지로 오늘 처음 본 상대방 팀들도 기분 좋게 이기고 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세세상에서 다른 누군가의 편익도 뺐지 않으면서 나의 편익과 행복이 이렇게 올라가니 얼마나 좋은가. 두시간을 힘차게 코트 구석구석을 내달리고 돌아올 때는 실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그래도 경기장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세상에서 아무의 편익도 뺐지 않으면서
나의 행복이 이렇게 올라가니 얼마나 좋은가.


경기장을 바꾸자.

어른이 되면 전혀 다른 경기장으로도 가보자.

마치 아이의 본능처럼, 어른들에게도 순수하게 마냥 좋아서 할수있는 것을 하나쯤은 찾아보자. 나이들어 새로 하게되는 취미나 덕질 같은 것을 전문용어로 아마 “주책”이라고 하는 줄 잘알고 있다. 그래도, 경기장을 바꿔보자.

오늘도 익숙했던 나의 경기장에서 나와

다른 게임, 다른 경기장으로 성큼 건너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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