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영화 내용 스포일러 포함

by 마법거북이


반 발짝 낮은 곳으로, 픽사는 언제나 우리 주위의 작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장난감, 차, 곤충, 작은 물고기, 레스토랑에 사는 쥐의 세계... 픽사는 의인화를 통해 그들에게서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모습, 그들이기에 가능한 것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디테일과 유머로 자연스러운 공감과 깊은 감정을 이끌어 낸다. 그들이 흔히 어른의 동화로 불리우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시작점이 되는 토이 스토리는 이 세계에 가장 적절한 소재를 다룬다. 장난감, 인형. 인간을 닮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는 곧 픽사의 상징이자 핵심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시리즈의 3편에서 감동을 받았다 말한다. 그러나 3에서 이들은 철저히 장난감일 뿐이다. 1에서 버즈는 자신이 장난감인 줄 모른다. 자신이 장난감이 아닌 진짜 우주전사인 줄 아는 그가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그 사실을 긍정할 줄 알게 됐을 때, 그래서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있게 추락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할 줄 알게 됐을 때, 그는 오히려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선 존재가 되어 인형의 의인화가 아닌, 관객인 우리가 자연스럽게 그의 모습에 자기를 대입하게 된다.

영화 밖 시간이 영화 속에도 흘러, 3편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장난감들의 주인 앤디와 함께 놀 수 없게 된 장난감들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이 고민은 자연스러우며 고민이 오해로 이어지는 사건 또한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탁아소에서 이들이 겪게 되는 모험과 탈출은 어느새 처음의 고민은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재미난 만큼 처음의 고민과는 동떨어져 있다. 물론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 모험에서 되돌아온 장난감들과 앤디의 이별 장면에서 감동을 받는다. 'So long, partner.', 우디가 이별을 고하듯 시리즈는 이것으로 멋지게 마무리되는 듯 했기에 다시 9년이 지나 나온 토이 스토리 4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괜한 사족이 아닐까 싶은 걱정이었다. 이 걱정은 현실이 되어 대다수는 4가 3보다 못한 영화로 여기는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4는 내용상 기존 시리즈와 이어지면서도 확연히 떨어진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언뜻보면 그야말로 사족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4는 정말 사족인가, 3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합동으로 움직였다면 4는 1과 같이 철저히 우디가 중심이 되어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3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다시 행복한 장난감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것만 같았던 우디는 보니에게 가장 첫번째 가는 장난감이 아니다. 설 자리를 잃은 듯한 기분을 받는 우디는 앤디와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돌리의 반대에도 불구, 몰래 가방에 숨어 들어 보니의 유치원을 따라 간다. 마치 보모처럼 우디를 지켜 보는 우디는, 보니가 처음으로 간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자 쓰레기통에서 꺼내 온 몇 가지 재료를 보니의 책상에 던져 놓는다.

보니가 스스로 직접 만든 존재인 포키를 통해 자신감을 얻는 모습을 본 우디는 보니를 위해 포키를 지키려 하나 포키를 놓치고 헤매는 중에 3에서 단지 대사로 처리됐던 보핍을 다시 만난다. 주인 없이 자유로운 보핍은 장난감이라기엔 거의 보헤미안에 가까워서 분명 너무 멀리 간 존재다. 하지만 사실 우디가 보니에게 갖는 의무감 역시 더는 장난감이라는 존재가 가질만한 의식이 아니다. 그건 장난감이나 우디가 말하는 것처럼 충성심이라기보단 오히려 부모에 가까운 심정이다. 우디는 늙지 않지만 포키를 데려오기 위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우디가 포키의 손을 잡고 밤길을 걸어오는 장면에서 톰 행크스의 목소리는 지치고 쓸쓸해 보인다.


가끔 현실이 영화 속에 겹치는 순간에 우리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 탑건 2에서의 발 킬머가 그러하고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도 그런 예다. 토이 스토리 3편은 현실에서 흐른 실제의 시간을 통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줬다. 그러나 이 감동이란 곱씹어 보면 감상의 피상성, 감상을 인물의 감정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기억에 내맡기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어디까지나 장난감들의 이야기로서 토이 스토리에 주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인간이란 캐릭터라기보단 배경에 가까웠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한 후 내내 물러나 있던 앤디가 갑작스럽게 결말에 이르러서야 나누는 가슴 따뜻한 이별이 주는 감동의 원천은 관객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두 인물에게 대입하는 것일 뿐, 극 안에서 이뤄지는 정서가 아니다.


3나 4나 모험의 과정은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비록 몇몇 부분에서 개연성은 좀 부족할지라도 우디의 모험은 내면의 갈등과 계속 맞닿아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자유로운 보핍이 있고, 서로 다른 측면에서 스스로 만든 마음에 묶여 있는 개비개비와 우디가 있고, 내가 이름을 부르니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 구절과 같은 존재인 포키가 있다.

골동품점 주인의 손녀를 이상화해 고장난 장치를 고치기만 하면 손녀가 자신을 봐줄 것으로 여기는 개비개비, 모든 문제를 자기의 고장난 장치와 대상의 문제로 여기는 개비개비와 주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맹목으로 움직이는 우디는 서로 다른 듯 닮아, 고장난 장치를 대체할 우디의 부품을 노릴 때까지 개비개비는 악역이었으나 개비의 기대와 달리 장치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손녀는 개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에 실의에 빠진 개비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던 우디가 그녀를 다시 밖으로 이끈다.


개비에게도, 우디에게도 끝에 놓인 건 출발이다. 오해이건, 실수이건 1편과 3편은 집밖으로 나가게 된 장난감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4는 장난감들 스스로 가족의 여행을 즐겁게 여겨 따라 나왔다. 이 가족이 탄 캠핑카에서 충성심이건 다른 무엇이건 한 번 더 스스로 뛰쳐 나간 우디는 독립적 존재가 된다. 결국 우디의 모험이란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다뤄져 아마도 영화 주제의 고전이라 할 법한 자아 찾기의 과정으로 그 결론은 어찌 보면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있게 추락하는 것'이라는 1편의 명대사와 전혀 다른 지점에 놓인 듯싶다. 장난감으로서의 우디가 아닌 마치 중년을 넘어선 한 존재가 자기의 쓸모를 잃어버려 새로운 쓸모를 모색하는 이야기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2차 창작으로서 1과 2의 처음으로 장난감을 맞이하는 순간, 3에서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해 장난감과 이별하는 순간, 이 모든 현실에서 흐른 실제의 시간이 바탕이 되어 우디를 장난감이 아닌 온전한 존재로 만든다. 이 결론이 비록 1의 명대사만큼 모두에게 자연스런 공감을 이끌어내진 못했는지 몰라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난감들의 지난 오디세이가 집을 떠나는 출발로 끝났기에 픽사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토이 스토리 4에 이어 나온 '소울'이 아예 영혼을 다룬 건 그래서 연속적인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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