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호 Oct 08. 2021

토끼

 

 승달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핀 산벚꽃이 지면서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날 우리 집 어미 토끼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언니와 민들레 홀씨불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날려가는 민들레 홀씨 사이로 아빠가 걸어오시면서 얘기해 주셨습니다.  

 "애들아 우리 토끼 새끼 낳았다."  

 "진짜?" 기뻐서 언니와 나는 동시에 답을 했습니다.  

 "아빠! 보러 가자!" 내가 아빠에게 재촉을 하자,

 "지금은 안돼, 어미 토끼가 새끼를 낳고는 신경이 예민해 잘못하면 새끼들을 물어 죽일 수 있다. 며칠 지나고 아기 토끼 몸에 털이 나면 볼 수 있단다" 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토끼가 생긴 것은 2년 전 승달산에 산벚꽃이 활짝 피었던 봄날 일입니다.

 언니가 토끼를 사달라고 며칠 동안 때를 쓴 결과 아빠가 무안장에서 흰 토끼 두 마리를 사 오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랫마을 이웃 할아버지 댁에서 회색토끼 또 세 마리를 더사오셔 우사 한쪽에서 키웠습니다.  우사 한쪽의 토끼집이 시멘트 바닥 이어서 그랬는지 번번이 새끼를 낳아도 잘 기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올해 봄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지금의 토끼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토끼는 흙이 있어야 번식이 잘된대, 그래서 흙이 있는 토끼집으로 옮기는 거야" 아빠가 토끼집을 옮기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미 토끼는 아빠가 비닐하우스를 개조해서 만든 새 토끼집으로 옮기던 그날 밤 토끼집 한쪽 모서리에 자신의 배에서 털을 뽑아 아기 토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두려움과 처음으로 아기를 낳는 고통을 견디어 아기 토끼 여덟 마리를 낳았습니다. 나중에 아빠에게 들어 알게 되었지만 이 어미 토끼는 처음으로 새끼를 낳은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아기 토끼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어미 토끼는 이사하는 과정의 두려움을 견뎌내고 아기 토끼들을 물어 죽이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아기 토끼들 소식이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아기토 끼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기 토끼들은 무얼 하고 지낼까?'

 그러나 토끼집에 들어가서도 며칠 동안은 아기 토끼들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빠가 몇 번이고 다짐을 해서입니다.  

"너희들 며칠간 절대로 아기 토끼 보면 안 된다. 잘못하다 어미가 화나면 새끼들 다물어 죽인다. 그러니 며칠만 참자!"  

 그렇게 5일이 지나고 유치원에서 돌아온 오후 아빠가 토끼집 한쪽 모서리로 언니와 나를 조용히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히 해야 한다. 쉿!" 아빠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언니와 나는 숨죽이며 아기 토기들의 보금자리에 가려진 판자를 약간 지치고 아기 토끼들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미 털 보금자리 사이로 이제 몸에 털이 돋아나고 있는 아기 토끼들이 보였습니다. 아빠 손가락만 한 아기 토끼들이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몸이 떨려왔습니다.

"우와 진짜 귀엽다!" 언니가 말했습니다.  

"아빠! 만져보아도 돼요?" 내가 물었을 때  

"며칠만 참으면 만져볼 수 있으니 며칠만 참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기 토끼들을 지켜보는 사이 어미 토끼는 우리들 옆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토끼집에서 나오자 곧바로 어미 토끼는 아기 토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몹시도 걱정이 되었었나 봅니다.  

그날부터 유치원을 다녀오는 발걸음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통학택시에서 내리면 아기 토끼들이 궁금해 곧바로 토끼집으로 향했습니다.  

"애들아! 잘 있었니?" 언니가 아기 토기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엄마젖 많이 먹었어?" 내가 아기 토끼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를 따라서 토기 풀을 뜯는 일은 신나기만 했습니다. 아빠 말에 의하면 토끼들은 칡잎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우정동 집 주변에는 칡잎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길가 어디에서나 칡잎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언니와 나는 아빠가 만들어주신 미끄럼틀을 타면서 아기 토끼들의 이름 짓기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난 토미 할래" 언니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럼 난 삐삐" 내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언니와 나는 아기 토끼가 여덟 마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흰 토끼 두 마리에,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검정 토끼 한 마리, 그리고 어미를 닮은 회색 토끼 다섯 마리, 이제 만져보아도 된다고 아빠가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오래동안 만지면 안 된다. 어미 토끼가 걱정하니까?"

 여전히 조건이 있기는 했습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내 두 손 안에 들어온 흰 아기 토끼! 몸에난 털이 너무도 희고 부드러웠습니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평화로운 표정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흰색 제일 큰 아기 토끼를 내 토끼로 정했습니다. 이름은 '삐삐'

 언니는 흰색 작은 아기 토끼를 '토미'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삐삐야 이제부터 넌 내 토끼야!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 그러고 나면 삐삐는 내 말을 알아듣는지 내 품에 가만히 안겼습니다.  

  "아빠! 삐삐 우리 집에 데려가면 안돼요?" 내가 물었을 때, 아빠는 아직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역시나 어미 토끼가 걱정한다고 하셨습니다. 안고 있을수록 정이 들어 이제 내 토끼 삐삐와 잠시도 헤어지기가 싫어졌습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삐삐를 안고 있던 행복한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삐삐와 함께 마당에서 그네 타기, 미끄럼틀 타기, 술래잡기를 하고 노는 행복한 꿈을 아침이 되도록 꾸었습니다.  

 

 아빠가 매일같이 부지런히 해다 주시는 칡잎을 먹고 어미 토끼는 아기 토끼들을 정성을 다하여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아기 토끼들을 보러 온지 보름이 다되었건만 어미 토끼는 언니와 내가 들어가면 여전히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합니다. 우리가 아기 토끼를 안고 있으면 주변을 서성이며 아기 토끼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삐삐가 드디어 눈을 떴습니다. 삐삐의 빨간 작은 눈이 보였습니다. 이제 삐삐도 나를 보았습니다. 빨간 눈을 가진 흰 아기 토끼 삐삐처럼 예쁜 토끼는 이 세상에 없을 것라 생각되었습니다.  

 

 이제 아기 토끼들 모두 눈이 뜨고 걸으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주 먹만 하게 자랐습니다. 깡충깡충 뛰어노는 모습은 귀엽기만 합니다. 이제는 나와 언니 손을 피해 도망치기도 곧잘합니다. 그러면 더 잡아보고 싶습니다. 아빠가 이제는 오랫동안 만지는 것에 대해서도 허락하셨습니다. 아기 토끼들이 그렇게 많이 자란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토끼집에 들어가 아기 토끼들과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삐삐 모습이 아른거려 방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언니와 함께 자주 한참을 토끼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기 토기들이 걷기 시작하더니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상추나 오이 등 야채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에서 상추 잎을 따다 아기 토끼들에게 주었습니다. 아기 토끼들은 오물조물 상추 잎을 갉아먹었습니다. 나에게 이제 아기 토끼풀을 해다 주는 한 가지 일이 더 생겼습니다. 아기 토끼들은 마치도 내가 가져가는 상추 잎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삐삐야 맛있게 먹어?"  

 

 다음날 언니와 내가 토끼집에 들어선 순간 우리 둘은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아끼시는 검정 아기토 끼는 죽어있고 주황색 커다란 뱀이 아기 토끼들 보금자리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아기 토끼들이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고추밭에서 일하시는 아빠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아빠! 아빠! 아빠 토끼! 검정 토끼 죽었어? 주황색 엄청 커다란 뱀이 나오더라? 뱀이 아기 토끼들 물어 죽였나 봐?" 다급해진 언니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순간 몹시 놀란 아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셨습니다.  

 아빠와 우리가 황급히 토끼집에 들어섰을 땐 이미 주황색 뱀이 달아난 뒤였습니다. 아빠가 아끼는 검정 토끼와 회색토끼 한 마리가 이미 뱀에게 물려 죽었고 내 삐삐도 뱀이 목을 물어 목이 퉁퉁부은 채 작은 몸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언니와 나는 뱀이 또 나타날까 봐 걱정이 되어 남아있는 아기 토끼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삐의 빨간 눈이 점점 초점을 잃어가며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볼 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죽어가는 삐삐를 보면서 내가 삐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빠에게 지금의 사실을 알리는 것밖에는...  

"아빠! 삐삐의 빨간 눈이 점점 까맣게 변해요? 어떡해요?" 내가 물었을 때 아빠도 고개를 떨구신 채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기 토끼들을 문 주황색 뱀에 대한 분노와 삐삐와 아기 토끼들에 걱정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아빠는 그래도 방 안에서 아기 토끼를 기를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언니와 나는 다시 아기 토끼들을 토끼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남은 아기 토끼들이 살아주기만을 바라면서...

 

 토끼집에서 어미 토끼를 보신 아빠는 독사가 어미 토끼 또한 목을 물어 부어올랐다고 하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어미 토끼의 목이 엄청나게 부어올라있었습니다.  

 뱀이 아기 토끼들을 물어 아기 토끼들의 비명소리가 나자 황급히 달려온 어미 토끼는 아기 토끼들을 구하기 위해 뱀과 싸움을 하였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뱀과 싸웠습니다. 다행히 여덟 마리 중 세 마리는 뱀에게 물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나는 남아있는 아기 토끼들이 걱정되어 오래도록 잠이 들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 밤에 그 주황색 뱀이 다시 들어와 아기 토끼들 물면 어떡해요?"

"여울이가 걱정이 되는구나? 아빠가 어떻게 조치를 하셨을 테니 괜찮을 거야, 그만 걱정하고 자자!" 엄마가 내 가슴을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주황색 뱀은 다시 나타났습니다.   

 삐삐와 함께 내가 마당에서 아빠가 만들어주신 그네를 타며 놀고 있을 때 삐삐의 목을 물어버린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토끼집엔 언니 토끼 토미를 포함해 세 마리만이 살아남고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어미 토끼의 뱀에게 물린 목은 더욱 부어 있었습니다. 어미 토끼는 살아남은 세 마리 아기 토끼를 품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새끼들을 떠나보낸 슬픔에 잠긴 채 말입니다. 세 마리만이라도 살아주길...

 삐삐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삐삐를 볼 수 없습니다. 삐삐와 보냈던 지난 20여 일은 너무도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삐삐야 잘 가!"

언니는 삐삐를 떠나보낸 저를 위해 토미를 함께 기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토미라도 살아남았기에 다행입니다.  

 

 잔뜩 흐린 다음날 불행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토미가 심한 설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 왜 토미가 설사를 해요?" 내가 아빠에게 물었더니  

"어미 토끼가 뱀에 물리면서 독이 퍼져 어미젖에 독이 있어서 그럴 거다. 그렇다고 어미 토끼와 갈라놓을 수도 없고 불쌍해서 어쩌냐?"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토미는 설사로 인하여 온몸에 살이 없어지고 뼈만 앙상히 남았습니다. 내가 죽어가는 토미에게 해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아빠를 따라서 칡잎을 구해 가져다줄 뿐입니다. 이제 토미는 칡잎을 먹을 힘조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미안하다 토미야!'  

 

 그날 밤 아빠에게 어떻게 주황색 뱀이 토끼집에 들어왔는지 물었습니다.  

"토끼집 주변 풀숲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주황색 뱀은 아기 토끼들의 소리를 들어을 거야!"

 "그러고선 잡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토끼집에 들어갈 구멍을 찾았을 거야."  

"토끼집 아기 토끼들의 보금자리를 찾은 주황색 뱀은 잡아먹기에는 너무 많이 자란 아기 토끼들을 보고는 사악한 마음에 마구 물어 죽이기 시작했을 거야."

 "이 순간 아기 토끼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어미 토끼는 급하게 뛰어왔을 테고 물리지 않은 세 마리 아기 토끼를 품고 있는 힘을 다해 주황색 뱀과 싸움을 하였을 거야."

"자신도 주황색 뱀에 물리면서 말이야, 결국 주황색 뱀이 어미 토끼의 저항에 포기하고 떠나가던 순간에 너희들에게 발견됐을 거다."

 

 아기 토끼들은 결국 어미 토끼를 닮은 회색 한 마리만 살아남고 모두 떠나갔습니다. 어미 토끼는 이제 눈물을 머금고 아기 토끼 한 마리 만을 품에 품고 있습니다.

 

 아기 토끼들이 떠나가고 며칠 후 아빠는 토끼집 주변 풀숲을 에초기로 베어냈습니다. 에초기 칼날에 놀라 먹이를 찾아 풀숲에 나섰던 뱀 한 마리가 달아나다 아빠의 에초기 소리에 몸이 잘려나갔습니다.

 그날 밤 아빠는 언니와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토끼집 주변 풀숲을 에초기로 베는데 뱀 한 마리가 에초기에 잘려 죽었다"

 "아빠 그 뱀 무슨 색이었어요?" 내가 혹시나 주황색 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응, 주황색?" 아빠는 더는 말씀을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잠시 후 "아빠가 이제 다시는 뱀이 토끼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을게? 앞으로 토끼들 잘 기르자?"

"아빠! 다시는 뱀 토끼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내가 아빠에게 재차 다짐을 받았습니다.

 

 삐삐와 아기 토기들을 떠나보낸 잔인한 봄이 지나고, 뜨겁고 무더운 우적동 마을의 여름이 지나가던, 보름달이 환한 초가을밤! 어미 토끼는 아빠 토끼와 사랑을 나눕니다.



2012년 6월에 쓴 동화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