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1)
정원은 나의 소유욕이 불러온 이기심의 결과물이다. 이기심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왔다. 이기심이 정원의 시작점이라면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는 중간과정이다. 정원은 완성되지 않는다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원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또한 정원이다.
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어느 날 꽃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혹을 넘겨 삶에 지쳐 메말랐던 내 심경의 큰 변화였다. 한 오육 년 전의 일인 것 같다.
꽃에 대한 마음이 생긴 것이 삶에 지친 나머지 휴식을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새로움을 쫓는 모험심의 발로였는지? 지금도 그 변화의 정확한 지점을 짚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시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것 같다. 꽃은 그런 나를 위로했다.
그해 나는 창고로 쓰던 공간을 바꾸어 온실로 꾸몄다. 오래도록 가꾸길 원했던 레몬나무를 큰 화분에 심었다. 화원에 자주 들려 이것저것 꽃을 사 오고 화분에 심어 온실을 채워갔다. 그것은 마음속에 묘한 안도감으로 찾아왔다. 사랑하는 마음이 주는 삶의 안도감을 꽃과 정원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쉬는 시간 나는 종종 온실에서 설레임 가득한 쉼을 얻게 되었다. 휴일이면 아내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우리가 농촌에 사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온실은 1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웠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말았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필리핀에 선교차 나가셨던 장인 장모님이 들어오셨고 온실 공간을 고쳐 두 분의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1년 동안 온실에서 자라며 꽃을 피우며 한창 자라던 레몬나무는 결국 노지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레몬을 키우겠다는 오랜 염원은 일차 시행착오를 거친 후 2차 시도를 예약했다. 하지만 꽃이 자라던 공간이 부모님의 생활공간으로 변신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
다시 해가 지나고 뒤뜰에 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가족들이 먹을 야채를 자급할 목적으로 지었는데 비닐하우스에서 야채재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문사에 출근하면서 부모님이 야채재배를 맡으셨는데 농사에 경험이 없는 두분은 별 성과를 못 내고 비닐하우스의 용도를 새롭게 찾아야 했다. 고심 끝에 귤나무를 비롯한 오렌지류와 레몬나무를 심었다. 비닐하우스를 보강해 이중 비닐을 설치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지난해 레몬나무가 자라고 첫 열매를 수확했다.
열대지방에서 레몬은 여섯 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기온만 맞으면 끊임없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게 레몬이다. 비닐하우스에서도 영하의 기온을 뚫고 꽃이 피었다. 그 모양이 너무도 신기하고 이쁘다. 레몬나무 상큼한 향이 비닐하우스에 가득하다.
시행착오를 거쳐 레몬재배에 성과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나의 의지라기보다 레몬나무 의지가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만날 운명은 어떤 경로를 거치든 만나게 되는것 같다. 레몬나무와 나는 언젠가는 만날 운명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 우연이 없고 필연임을 깨닫고 있다. 우적동 정원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필연들이 곳곳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