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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

우적동 봄을 그리다(3)

by 정영호

현대사회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 어느 때나 음식을 취할 수 있지만 음식을 취함에 있어서 그 음식을 취할 시기가 있다. 그것을 제철음식이라고 한다.

보리밥 열무된장지 풋고추양파 감자된장국 제철밥상


자연과 공존을 지켜감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의 하나가 제철음식 즉 제철밥상이라고 여긴다. 제철밥상은 농사와 깊게 연관되어 있고 농사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보리밥은 빼놓을 수 없는 제철음식 중 하나다.

보리밥은 6월 말에서 시작되는 더운 여름철이 제철이다. 보리는 추위를 견디고 자라는 따듯한 성질의 음식이다. 지금 현대인들은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보리고개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역사에서 존재했다. 식량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봄이 되면 쌀을 비롯한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배고픔에 보리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그 시기가 보리고개다. 배고픈 봄을 견디고 나면 6월 보리수확이 이루어지고 보리밥을 해 먹었다.

보리밥에 어울리는 음식에는 감자된장국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감자라 하여 감자 수확시기는 6월 20일경이었다. 보리 수확시기보다 조금 늦다. 갓 수확한 감자로 된장국을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보리밥과 어울리는 음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무 된장지를 비롯한 각종 된장지다. 된장지는 열무 고구마 순 메밀순 상추 산야채를 된장에 버무리린 음식으로 비빔밥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어린 열무을 속아 된장지를 만들고 거기에 보리밥을 넣어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넣여 슥슥 비비면 황홀한 맛은 행복감을 주는 마법과 같다.

보리밥 비빔밥이 쌀밥 비빔밥보다 좋은 점은 보리쌀은 잘 뭉개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보리의 톡톡 터지는 식감이 그대로 보리밥으로 전달된다. 쌀밥은 비비면서 많이 뭉개져 보리쌀의 톡톡 터지는 식감에 떨어진다. 여기에 처음 열린 초벌 풋고추와 갓 수확한 양파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 최고의 보리밥 제철 밥상이 된다. 토하젓을 곁들여 비벼 먹는 것도 제대로 된 제철밥상의 품위를 높여준다. 보리밥 제철밥상에 들어가는 모든 식재료가 텃밭농사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배고팠지만 어머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보리밥!

우리가 농사를 하대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는 보리고개를 극복했지만 보리밥을 잃었고 하지감자 된장국을 잃었고 한여름 열무된장지를 잃었다. 그리고 우리들 삶의 터전이었던 소중한 흙과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농사를 잃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이제 가정의 손을 떠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풍요로운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행복한가를 반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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