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10)
풀이 자란다. 우리 집 소들 먹이인 풀이 자란다. 머지않아 소들을 풀밭으로 보낼 수 있다.
소를 방목사육한 지도 어언 5년이 흘렀다. 여름에는 방목하고 겨울에는 축사에 가둔다. 약 7개월 동안은 생풀을 먹고 자란다. 겨우내 소들은 축사 안에서 갑갑한 시간을 보냈다. 방목장에 나가서 뛰놀 소들의 행복한 모습이 상상된다.
소들은 초원을 누비며 평화를 만끽할 것이다. 나는 그 풍경을 늘 그리워했다. 그 꿈을 이루었다. 그것은 경도된 인식의 타파에서 가능했다. 사람들은 내가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것을 비웃었다. 그들의 인식 속에는 소는 방목해서는 안되며 특히나 소에게 생풀을 먹이는 행위는 거의 범죄시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의 먹이가 산천에 지천으로 널린 풀에서 미국에서 들여온 옥수수로 바뀐 것은 대략 30여 년 정도이다. 소는 생풀대신 축사에 갇혀 옥수수를 먹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근내지방도라 불리는 마블링이다. 그것을 고급육으로 단정 짓고 지방이 많을수록 좋은 고기? 취급을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생풀은 먹여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자연과의 분리이며 공존의 파괴였다. 사람들은 스스로 미국이 파놓은 함정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견고한 울타리 밖 즉 풀밭으로 소가 나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네 가치체계 안에는 이처럼 그릇되게 세뇌된 허구인식이 가득하다. 스스로 생각을 버린 대가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지식만 외울 뿐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암기는 줄 세우기와 통치를 위한 것이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 교육은 사유를 막아 자유를 근본적으로 말살하고 있다.
풀이 자라야 소가 자란다. 그것은 자연의 공존이며 순환이다. 이것은 외울 사항이 아니며 자연을 통해 수용할 가치다.
나는 풀이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농약과 회학비료중심의 일명 관행농법이 그릇된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밭을 트랙터로 갈지 않아도, 화학비료로 뿌리지 않아도, 농약이 없어도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풀이 자라며 소가 자라고 나는 비로소 그릇된 생각과 농업으로부터 해방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