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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소

우적동 봄을 그리다.(39)

by 정영호

나는 소띠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가 좋다.

73년 7월 17일 태어났다. 오후 세 시경에 태어났으니 소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쉴 시간이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쉼이란 것을 찾기 어렵다. 늘 치열했다. 무언가 이루어보겠다고 성실하나로 버텨왔다. 소는 실험정신이나 도전정신이 없는데 반해 나는 실험정신 아니 조금 많이 무모하다. 대책 없이 밀어붙이고 그 어리석음을 반성할 때가 많다. 아마도 소처럼 말이다.


소는 내 인생에 수도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태어난 곳이 우적동이고 아버지가 살림을 일으키신 것이 소였다. 나 또한 소를 소답게 기르고 요즘에 이놈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소를 개보다 쉬이 다룬다고 한다. 우리 소들은 너무도 순하고 나의 지시를 잘 따른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 생각한다.

소 방목의 꿈을 실현한 것은 서울로 대학 간 큰 놈의 학비를 벌기 위함이었다. 의도가 좋아서였는지 어렵지 않게 소 방목 사업은 안정을 찾았다. 소들은 방목에 최적화되었고 소고기 판매는 서서히 안정되고 인정받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먼저 간 큰 놈과 연관되어 있다. 소도 돼지도 닭도 우리 큰 놈과 연결되어 있다. 아비와 딸로 만나 영원한 사랑을 염원했지만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나의 영원한 별이다.


초원을 누비는 우직한 소를 보니 큰 놈에 대한 그리움이 한없이 밀려온다. 나는 살아있기에 이별은 죽음 보다 더한 고통이다.

나는 또 우직하게 소처럼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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