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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Oct 05. 2021

밤골의 추억

1회


 올해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과일인 밤이 우리 집에 돌아왔다. 장인 장모님이 집으로 옮기시면서 생긴 변화다.

 매일 오전 산으로 운동을 가시면서 돌아오시는 길에 한 봉지씩 주워 오신다. 어른들이 주워오신 밤을 저녁이면 맛나게 까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우적동은 어릴 적 밤골로 유명했다.

산골짜기 마을이라 그랬던지 골짜기를 타고 산자락에는 밤나무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80년대 초의 일이다.

 먼 기억부터 쫓아가자면,

 횃불을 밝히고 가족들이 밤을 까던 기억이 먼저다.    아버지께서는 낮에 밤송이를 모아지게로 집으로 가져오셨고 그것을 까고 손질하는 것은 나머지 가족들 몫이었다.

 밤을 손질하다 벌레가 먹지 않은 좋은 밤을 먹다 들키면 아버지께 혼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레가 먹지 않은 좋은 밤은 크기별로 분류해서 놓으면 일요일에 목포 큰 시장의 상인이 오 톤 차를 고 와 사갔다. 우정동에서 일주일 모아지는 밤만 오 톤 차로 가득했으니 얼마나 밤이 많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밤 싣으러 오는 차가 오는 날은 마을이 떠들썩했다. 집집마다 온 가족이 일주일 동안 모은 밤을 수레에 싣고 나와 계근 했다. 현장에서 값이 정해지고 대금이 바로 지급되었다.

 밤 값을 받아 든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고 그날은 마을에 조촐한 술잔이 돌았다.


 어머니들은 밤이 늦도록 벌레가 먹은 밤을 깎아서 다음날 새벽 삶아서 목포 시장에서 내다 팔았다.

 우적동에서 몽탄역까지 3.5킬로 몽탄역에서 목포로 가는 학생 차로 불리던 비둘기호 통학열차를 타기 위해 고등학생 자녀들과 새벽길을 나섰다.


 목포역 앞에는 새벽마다 통학차로 농산물을 싣고 나오는 농민들을 맞는 도깨비 시장이 섰다. 어머니는 마을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삶은 밤이며 호박잎이며 깻잎을 내다 파시고 돌아오시는 길에는 전어 갈치 등 다른 반찬거리를 사 오셨다.


 새벽길에 나선 어머니가 점심이 되기 전 돌아오시고 아버지는 그사이 다시 밤을 산에서 주워 오셨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단하셨을 부모님의 삶 뒤로 세월이 흘러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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