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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Oct 06. 2021

친애하는 나의 선생님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다.  

우리 학교가 두 번째 부임지로  그녀는 젊음으로 빛이 났으며 당차고 의욕이 넘쳤다.

 그녀는 아이들을 늘 미소로 맞이했다. 그녀는 40여 명 우리 반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인상을 쓰지도 않았으며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존경했다. 아이들에게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전달되어 우리 반은 늘 생기가 넘쳐났다.

 그녀의 사랑으로 우리 반 촌놈들은 점점 빛이 났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은 삶의 빛나는 한 구간으로 소중하게 남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했다. 불안했던 가정사로 우울했던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나에게 그녀에게 받은 사랑은 더없이 그리웠다.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5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로부터 그녀가 면 초등학교의 교감으로 부임한 것을 전해 들었다. 그리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5학년 같은 반 친구들 몇이  함께 그녀와 조촐한 식사자리를 준비했다.


 20여 년 만이었다.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곱고 단아했다. 옛 시절의 밝은 추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각자가 살아온 삶을 나누며 즐거운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그녀의 눈에도 내게서 세월의 때가 느껴졌을 것이다.

'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듬직하네'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나를 또다시 위로해 주셨다.


 얘기가 오가면서 과거에서 현실로 연결되었다.

 그녀는 성실과 열정으로 교감선생님이 되었고 나는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농민운동에 빠져서 정작 삶은 궁색하고 초라했다.

 그러면서 옛날 그녀보다 현실의 교감선생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낯설었다. 옛날 그녀와 지금 교감선생님이 오버랩되었다.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옛날 우리 선생님이 자꾸 그리워졌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그녀의 퇴직이 다가왔고 5학년 동기들이 다시 뭉쳤다. 식사자리를 준비하고 돈을 모아 소박한 선물도 준비했다.

 또다시 과거의 추억들이 소환되었고 옛 시절로 돌아간 우리는 행복했다.

 술자리가 이어지고 이야기의 주제가 현실로 넘어오면서 그 옛날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도시 큰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라는 현실만이 남겨졌다. 사랑과 배려보다 출세와 승승장구가 현실을 지배했다.

 난 여전히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청춘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친애하는 나의 선생님을 위해 당분간 교장선생님을 뵙지 않기로 다짐했다. 여전히 나는 교장선생님보다 35년 전 젊은 그녀 '친애하는 나의 선생님'을 고이 간직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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