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예정하는 신주발행과 법적 근거의 문제
초기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인 지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초기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의 가치로 투자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도 자금조달이 매우 시급함에도 가치평가의 지연으로 인하여 투자가 지연되어 성장에 방해를 받는 점이 문제된다.
이러한 기업 가치평가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투자자들은 주식의 수익성과 채권의 안정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기업에 투자하였지만 이 방법 또한 어느 정도 기업분석이 가능해야 투자 조건을 확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가치평가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컨버터블 노트(Convertible Note, CN)이 사용되었다. 컨버터블 노트는 전환사채와 유사하나 투자 당시 전환가격을 정하지 않고 후속투자가 이루어질 때 전환가격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전환사채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컨버터블 노트에는 만기와 이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만기상환 및 법률비용이라는 부담을 스타트업에게 남기는 한계가 존재한다.
미국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Y Combinator는 2013년 컨버터블 노트를 개선하여 조건부지분인수계약(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SAFE)을 고안하게 된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후속투자 등 사전에 약정한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주식인수 조건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컨버터블 노트와 동일하나, 만기와 이자 지급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투자자가 기업에 투자하면 그 대가로 기업이 투자자에게 미래에 지분을 제공하겠다는 계약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에는 2020년 8월 12일 시행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촉진법’)을 통해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도입되었다. 도입 당시 벤처투자촉진법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계약으로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지분 인수”이라고 정의했으나, 2023. 12. 21. 시행된 벤처투자촉진법에서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정의를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계약으로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체결”라고 수정하였다.
벤처투자촉진법은 ‘투자’에 해당하는 사항의 열거규정 중 하나로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고, 벤처투자의 주체들은 투자에 해당하는 자금조달을 통해 벤처투자촉진법에서 정하는 투자의무비율을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와 같이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지분 인수’라고 정의할 경우 계약을 체결한 자체만으로 투자에 해당하지 않아 벤처투자 주체가 실질적으로 스타트업에 자금조달을 하였음에도 그만큼 투자의무비율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체결’로 정의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벤처투자촉진법 및 동법 시행규칙에 따른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요건은 ① 상환기일이 없을 것 ② 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 ③ 후속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 평가와 연동하여 지분이 확정될 것 ④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⑤ 후속투자 등 회사 자본 변동을 가져오는 계약을 체결할 경우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중 ⑤번은 실체적 요건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절차적 요건 내지 제약을 가한 것으로 이해된다. ①~④요건을 모두 갖춰 계약을 체결하고 자금조달이 되었다면 일단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⑤번 요건은 후속투자자에게 명확히 지분 희석 요인이 있음을 인지시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절차적 장치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위의 요건 중 ④요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체결하면 투자자는 벤처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주지만 당장 기업으로부터 지분을 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투자자는 미래의 잠재적 지분을 발행받을 것을 약속받게 된다. 기존 주주 전원 동의를 통해 미래에 결정될 기업가치 평가와 연동되어 기존 주주의 권리가 희석된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시켜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환사채 발행 시 정관에 규정이 없으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하도록 규정하는 상법과 달리 주주 전원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것은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에 따른 신주의 발행이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유가증권법정주의란 재산적 가치를 갖고 자유롭게 유통되는 유가증권은 법령에 근거 없이 발행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현행법령에서 유가증권법정주의를 포괄하여 다루는 법률은 없어 이를 인정할 것인지 다소 논란은 있으나, 금융당국은 법령에 근거 없는 유가증권의 발행을 규제하고 있는 태도를 보여 실무상 법적 근거 없는 유가증권 발행을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소비대차에 전환권이 부가된 약정을 전환사채 발행과 동일하게 보고 신주발행에 대한 상법상 절차 위반으로 위 약정을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5다73020 판결). 위 판례에서 대법원은 “신주의 발행과 관련하여 특별법에서 달리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주의 발행은 앞서 본 상법이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의하여만 가능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전환권 부여조항은 상법이 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하지 아니한 신주발행 내지는 주식으로의 전환을 예정하는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상법상 신주발행 규정을 우회하는 계약은 무효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상법이 아닌 벤처투자촉진법에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내용을 정하고 있는 것을 두고 발행의 근거규정을 마련한 것(위 판례에서 말하는 ‘특별법에서 달리 정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으로 볼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 판례에서 문제된 소비대차와 전환권이 결합된 형태의 약정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형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벤처투자촉진법에서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투자’의 형태 중 하나로 열거되어 있는 구조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체결하면 그만큼 벤처투자촉진법에 요구하는 투자의무비율에 포함시키기 위한 목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발행 절차와 효력에 관한 상세 규정이 없다는 점(정의 규정 및 시행규칙에서 요건을 정하고 있지만 상법상 신주나 전환사채 발행 규정과 비교하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에서 벤처투자촉진법이 새로운 형태의 유가증권 발행의 근거를 창설했다고 해석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된다. 게다가 벤처투자촉진법은 벤처투자를 장려하고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취지의 법률이지 회사의 신주발행의 근거법으로서 성격을 갖지도 않는다.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필자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기관에서 정책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감독기관에서 문제삼지 않고 있는 것이 실무이고, 나아가 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에서도 조건부지분인수계약 형태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무상 그 유효성에 논란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모든 주주의 동의를 요건으로 함으로써 추후의 법적 분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하였기에 문제가 되더라도 앞선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5다73020 판결)의 결론과 달리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상법상 근거를 명시하게 된다면 앞서 논의한 유가증권법정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위 대법원 판례에서 문제된 소비대차와 전환권이 결합된 약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워런트와 유사한 형태인데 상법이 포괄적으로 워런트를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어 주식매수선택권(상법 제340조의2 이하)과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신주인수권(상법 제515조의2 이하)과 같이 예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워런트 발행이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입법의 필요성이 있다.
나아가 상법에 근거규정을 마련할 경우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해 투자를 할 수 있는 주체가 명시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벤처투자촉진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투자주체들(전문개인투자자, 개인투자조합, 창업기획자, 벤처투자회사, 벤처투자조합 등)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투자가 가능함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이나, 일반 기업이나 기타 사모펀드 등도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다소 해석의 여지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실무상 벤처투자촉진법상 투자주체가 아닌 다른 주체들이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투자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런 투자 선례가 없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상법에서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근거를 제공한다면 다른 투자주체들도 벤처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생태계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무상 유효성에 관한 강력한 문제제기가 없다면 사실상 문제가 안될 수도 있다(그렇다고 변호사로서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법상 근거의 마련 등을 통한 해결은 법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벤처투자촉진법상 투자주체가 아닌 다른 투자주체의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벤처투자를 유도하고 이를 통한 생태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관하여 앞서 언급했다. 그러나 벤처투자촉진법은 주주 전원의 동의 이외에 이사회 결의(자본금 10억 미만이고 이사가 3명 미만이어서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을 경우에는 주주총회 결의. 상법 제383조 제4항)를 절차적 요건으로 별도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조건부지분인수계약도 신주발행을 예정하는 계약에 해당하기에 상법상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상법상 발행근거가 불명확한 현상태에서 그 유효성을 근거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따라서 벤처투자촉진법에서 이사회결의나 주주총회 결의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실무적으로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고, 신주인수를 통한 투자계약 체결시 이사회 결의도 거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