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은 생존을 위해 ‘붙잡도록’ 진화되었다
마음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은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야.
생존을 위해서는
• 위험 신호
• 고통
• 상처
• 충격
이런 경험을 강하게 기억해야 다음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래서 마음은 좋았던 경험보다
나빴던 경험을 훨씬 강하게 붙잡도록 설계되었어.
즉,
“붙잡음 = 생존 전략”
이게 마음의 기본 구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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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험을 붙잡아야 ‘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마음은 늘 이렇게 말하고 있어:
“내가 붙잡고 있는 이야기들이 바로 나야.”
“이것을 놓치면 나는 사라져.”
그래서 마음은
• 상처
• 감정
• 과거
• 성공
• 실패
• 관계
이 모든 것을 “나의 역사”라고 부르며
붙잡아서 자아를 만들고 유지해.
즉,
경험을 붙잡아 ‘나라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어.
마하무드라는 이것을 “자아의 습성(ego habit)”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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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험이 사라지면 마음은 불안해진다
경험이 사라지는 순간은
‘나와 세계의 경계’도 희미해지는 순간이야.
마음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낯설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다시 무언가를 붙잡아.
• 생각
• 감정
• 기억
• 걱정
• 이야기
이런 것들이 다시 올라와.
그래야 마음이 익숙한 ‘나’의 형태를 회복하니까.
즉,
마음은 비워진 상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 상태에서는 “자아의 중심”이 약해지니까.
하지만 수행자는 그 두려움을 지나가면
비로소 진짜 자유를 느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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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음은 ‘미완료된 것’을 계속 재생산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반추(rumination)**라고 해.
마음 안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감정이나 경험이 있으면
마음은 그것을 계속 끄집어내.
그 이유는 단순해.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내기 위해서.
하지만 끝내는 방식이 문제야.
경험을 ‘있게 두고 흘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 붙잡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끝내려고 하니
고통이 반복되는 거지.
마하무드라는 이걸 이렇게 표현해:
“생각은 스스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그것을 다시 잡아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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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감정과 경험을 붙잡을 때, 뇌는 보상을 준다
신경과학에서 보면
마음이 경험을 붙잡을 때
뇌는 작은 보상 신호(도파민)를 준다.
왜냐하면
‘생존과 관련된 정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특히
• 걱정
• 불안
• 분노
• 상처
• 비교
이런 내용일수록 마음이 더 강하게 붙잡아.
마음은 건강보다 생존을 우선시해.
그러니 안전과 위협에 관계된 경험은 더 오래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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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익숙함을 유지하려는 ‘관성’ 때문에
우리 마음은 기본적으로
익숙한 패턴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 늘 걱정하던 사람은 계속 걱정을 만들고
• 늘 분노하던 사람은 분노할 이유를 찾고
• 늘 슬픔이 익숙한 사람은 슬픔의 패턴을 재창조해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적 에너지(karma)**의 흐름 때문이야.
경험을 붙잡는 것도
이 관성에서 나온 행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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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장 깊은 이유 — 마음은 ‘바탕’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하무드라의 핵심 설명은 아주 명확해.
마음은 본래의 광명한 바탕을 모르기에
경험을 붙잡아 신분증처럼 사용한다.
경험은 바다 위의 파도일 뿐인데,
마음은 그 파도를 자기 존재의 근거라고 착각하는 거야.
본성(마음의 바탕)을 본 사람은
더 이상 파도에 의존하지 않아.
그러면 붙잡음이 차츰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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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마음이 경험을 붙잡는 이유는 단 하나다
본래의 자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파도를 나라고 믿고
흐름을 나라고 착각하고
경험을 자기의 역사라 붙잡는 거야.
본래 자리(알아차림의 바탕)를 단 한 번이라도 깊이 보면
붙잡음이 자연히 약해진다.
그러면 마음은 더 이상
경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