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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Jun 30. 2023

반할 수밖에 없는 ‘수라’ 갯벌

  무더위의 질감이 뒤로 더해질수록 두터워진다. 장마철에 들자 기온이 잠시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지금부턴 심술을 부리는 습기가 등장했다. 잠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이 늙은이에게 올 여름 들어서 더위로 부대끼는 일이 보태졌다. 해가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는 나이에 든 탓일까, 사뭇 다른 느낌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간다. 더위면역이 떨어진 이유로 홑이불마저 덥지 않고 자다가 새벽녘엔 추워 깨는 일이 종종 생겨나면서 건강 전선에 이상이 왔다. 자주 피곤한 증세에다 기운이 없고, 3주째로 머문 감기증상이 몸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견딜 만 하여 지난 월요일 인문학강좌를 듣고자 만반의 채비를 하고 나섰다. 준비해간 보온 덧감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강의실에서 줄곧 뿜어대는 에어컨 바람과 맞설 수 있었다. 안도하는 한편 이어질 영화 관람 기대로 들뜸이 일어났다. 평소 독립영화를 즐겨보는데 바쁜 일정 탓에 밀어놓았던 일이다. 간만의 여유를 되찾은 내게 맞아 떨어진 영화 한 편을 마침내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걸 본 것도 죄가 될까.’ 영화, ‘수라’ 갯벌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수년간 이어온 새만금 간척사업에 한 가닥 남겨진 희망의 갯벌, 적막과 고요에 싸인 미지의 깊은 세계를 조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마치 우리 몸 안에 촘촘하게 이은 생명의 핏줄이 거대한 바닷길과 맞닿아 있는 것만 같고 건강하게 자란 나무가 힘찬 뿌리를 바다로 쭉쭉 뻗어가는 장엄한 모습과도 같다. 비단으로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그 곳, ‘수라’. 하지만 예쁜 이름과는 달리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는 중이다. ‘수라’가 육지화 되었기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고 보존을 포기하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수라’의 향후 존망 생사의 영향을 끼칠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흙으로 매몰돼 사라지게 될 날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그 아름다움을 대면한 대가로 말도 안 되는 언어로 포장된 어처구니없는 일을 속수무책 겪으라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수라’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과 드러난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나는 몸서리를 쳤다.

  ‘수라’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수상을 거머쥔 황윤 감독의 생태다큐다. 그녀 역시 갯벌의 존재를 모르고 지내다 군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신기한 인물 오동필씨를 만나 시민 활동가로 시작된 일이었다. 한 개인이 청춘을 바쳐 20여 년간의 갯벌 생태계를 기록해 놓았다니 그저 놀랍다는 표현으로는 가당치 않다. 누가 시켜서 될 일인가. 지역가치 보존을 위해 지켜온 자발적인 활동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무려 7년간의 촬영을 해 낸 감독 자신도 생태다큐라기 보다 자신의 성장다큐였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그들의 활동무대는 어마무시하다.


  과연 ‘수라’를 일컬어 대한민국 고유의 갯벌이라 천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철새들에겐 국경이 없고, 길을 터줄 의무가 머물게 되는 국가에 있다. 철새들은 호주를 떠나 알래스카 러시아 툰드라 지역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 서해안 갯벌이다. 일주일간 먹지도 못하고 쉬지 않고 망망대해를 거쳐 온 철새들이 서해안 갯벌에서 배를 채우고 번식과정을 거친다. 날아오는 과정에서 철새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이제 남은 ‘수라’갯벌마저 사라진다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테고 전 지구적 철새들의 상실로 이어질 게 빤하다. 전세계에 걸친 생명의 보존 장소로서 ‘수라’를 지켜야 할 이유가 바로 이거다.

  군산 갯벌이 메워지기 전, 찾아든 도요새는 10만 마리에 이르렀다고 동필씨는 말한다. 보관해 두었던 철새들의 군무가 담긴 영상이 펼쳐지는데 그때의 감동을 다신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멸종위기에 놓인 현실 때문이다. 굶어죽은 도요새의 사체들이 매립된 땅 위에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나뒹굴고 있다. 애써 날아와 먹이가 있는 이곳을 기억하고 내려앉았을 때, 갯벌이 사라진 맨땅을 보고 얼마나 황당해 했을까. 화면이 바뀌면서 맛조개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죽은 또 다른 모습도 조개 무덤의 파노라마로서 대변해주고 있다. 조개들은 늘 그랬듯이 바닷물이 들어올 때를 끈기 있게 기다렸을 것이다. 언제 짠 바닷물이 들어와 그들을 적셔줄지 한 달 두 달 기다리다가 속절없이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갔을 것이다. 이 같이 잔인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 바로 경제논리만 내세워 개발에 눈이 먼 위정자다. 

  매립된 바다와 실제의 바다 색깔이 대조를 이룬다. 가둔 곳의 물색은 어둡고 칙칙하다. 정부는 급기야 2022년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유입하기 시작했다. 해수유통량이 늘어나면서 다행이 기사상태에 있던 갯벌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생명이 움트는 영상이 이를 뒷받침하듯 앙증맞은 생명들의 모습을 담아 쏟아내 주었다. 국제적 멸종위기의 저어새 몇 마리가 포착되었다. 그리고 검은머리 갈매기와 검은머리 물대새가 옹기종기 걸음마로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라’만이라도 보존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오동필씨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랜 세월 같이해온 ‘수라’여서 이젠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넋두리마저 흘러나왔다. 감독은 동필씨에게 ‘수라’를 불러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얹혀 나 역시 복창으로 응원을 날렸다.


  ‘수라’에게 지금까지 모질게 했던 일이 아직도 부족했나. 현재 군산공항이 있는데 또 ‘수라’ 가까이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다니. 철새들이 걸음마로 자리를 잡아가는 그 곳 가까이서 미군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정중앙을 내지르는 비행기 소음에 새들 무리가 화들짝 놀라 질서를 잃고 혼란스럽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졌다.  

  이제 새만금 간척 땅은 그들의 바람대로 농사짓기에는 적합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실패작이다. 자연만 훼손한 허탈한 결과다. ‘수라’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터전이다. 법정보호종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그 생명의 터전인지 실제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의도된 목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수라’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감독의 추가된 사항이다. 제발 현장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책상 위의 정책 결정에 나서지 않기를 바라면서. 언젠가 잘 보존된 ‘수라’가 살아남는 날, 나는 그 곳을 망설임 없이 찾아가련다.


  이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간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실은 그때 영화관람을 마치고 귀가한 시간이 저녁 7시 반경. 돌아보니 그 날 찬바람 에어컨에 노출된 시간은 무려 8시간을 거쳤던 것이다. 긴 시간 찬 기운에 몸을 담가 무리했음을 시인한다. 며칠간 내 몸을 다독여주었다. 다음엔 주의하겠노라 내심 약속하면서. 하지만 이런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무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 몸에게 허락을 받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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