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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Oct 24. 2022

늘그니 가슴에 떠오른 별, BTS

  짙푸른 가을 창공에 구름과 바람 ‘방탄소년단’의 별이 떴다. 10월 15일, 부산콘서트에 가보고 싶은 소망으로 한동안 들끓었다. 이번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기원 콘서트’는 무료공연이었다. 게다가 부산에 지인이 있어 숙박해결도 가능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늙은 몸을 배려해 이내 마음을 접었다. 소녀 못지않은 감성으로 방구석에 틀어 박혀 반짝이는 눈으로 영상을 본 것도 괜찮았다. 2018년에 사둔 BTS 음반을 만지작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나는 ‘아미’가 된 듯 착각에 빠졌다. 나이 70대 중반의 황혼기에.


  지난여름,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의 인문학강좌. BTS의 음악세계를 대면하고 나서 내 눈에 강한 지진이 일었다. 그들 음악의 천재성과 인간성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는 탄성을 질렀다. 평소 늦은 시간대의 대면수업은 몸에 무리를 준 까닭에 피해왔었는데 그때 수업만은 완전 예외였다. 전 세계 아미들이 왜 환호하는지 비밀을 들춰낸 호기로 꼿꼿한 자세를 줄곧 지킬 수 있었다. 세계 10대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의 대변인이 되어주고 세상의 거친 질감에서 그들을 막아주겠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 방탄소년단. 연이은 빌보드 수상과 다채로운 상을 인정받았다는 배경만으로 우뚝 선 BTS가 아니었다. 그 활약의 이면에는 세계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안긴 응원의 노래 가사 말들이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나아가 BTS의 타고난 음악성 외에 공동체를 향한 그들의 감응력을 추가하고 싶다.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난센스를 노래로서 고발하고 따뜻한 메시지의 화답으로 촉촉하게 적셔 주었으니까. 그 대표 곡이 세월호 얘기를 담은 <봄날>이다.    


  올해 방탄소년단의 데뷔가 어느새 10년에 이르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경규와 강호동이 진행했던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를 소환한다. 방탄소년단 중 한 멤버가 이곳에 출연한 적이 있다. 얼굴도 생생한 지금의 제이홉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당시 그들 대중의  인지도는 지금에 비해 엄청 낮은 편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제이홉의 고향인 광주를 자랑하는 <마 시티(Ma city)>가 소개됐다. ‘날 볼라면 시간을 7시에 모여 집합’이란 가사가 나온다. 극우사이트 일베에서 은어로 사용하는, ⌜광주는 7시⌟는 광주사태를 비하하려고 만든 말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제이홉이 역으로 이용해 만든 노래임을 그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경상도 태생인 멤버 슈는 고교시절에 광주사태를 기억하게 하는 랩, <518-062>을 만들어 데뷔 이전에 발표했다고 한다. 숫자 062는 광주의 우편번호로서 5•18민주화항쟁을 되새기고자 만든 곡이었음을. 새로운 사실로 인해 고무된 나는 탄력을 받아 그들에 관한 여러 자료탐색에 나섰다. 놀라운 점은 세계 아미들이 비극의 현장인 광주를 직접 밟고 있는 영상을 마주한 사실이다. 부끄러웠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자비를 들여 광주를 찾아든 아미들이라니. 오래전부터 마음만 있고 미루기만 하다가 실행 못한 518망월동묘지의 참배. 뒤늦었지만 광주행을 결심한다.  


  그렇다면 세계 아미들의 열정에 비해 국내 사정은 어떨까. 아쉽지만 결성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 움직임은 미미하다. 공부와 성적에 민감한 우리 10대들의 현실이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부모들조차 공부에 방해되는 BTS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뒷담화가 있다. 제이홉은 앨범 발간 인사말에서 “나를 이 세상에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나게 해주신 우리 엄마 아빠 늘 힘이 되어주는 누나, 웃게 만들어주는 미키까지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장식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감’을 심어주는 일이 자식들에게 잘 되길 바라는 그 어떤 강압된 공부 보다 확실한 실체로 작용하지 않을까. 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독립적인 인격체로 커왔다. 그리고 이 세상에 끼친 영향과 파급력 또한 엄청나서 멈추지 않는 에너지원을 이루었다. 숲의 천이를 순리대로 겪어온 자연의 생태처럼 새로운 지식형성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다수의 부모들로 인해 청소년의 문제는 파생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BTS의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대중음악이라고 하나 빠른 템포에 읊조리는 내용은 내 귀에 낯설었다. 게다가 국내에서 그들의 활동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자주 대할 길 없으니 우리네 같은 고령자에겐 그나마 익숙해질 기회마저 앗아간 셈이다. 차츰  그들의 뛰어난 활약상이 뉴스에 자주 비춰지면서 지금 내 눈엔 꿀단지가 달렸다. 준수한 외모에 노래는 말할 것 없고 종횡무진 광폭의 현란한 댄서로서 보컬 래퍼 등 다재다능한 실력을 골고루 갖췄다. 나아가 슈가는 어린나이에 일찍이 프로듀싱까지 했다니 혀를 내두를 만하다. 뒤늦게 깨달은 건 그들의 노랫말인데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성실한 가사를 만나 뭉클해진다. 그들의 명성이 어쩌다 마주친 행운이 아니었음을 직감한다.

  뉘 집 자식들일까 자못 궁금하다. 반듯하게 잘 자라준 손주가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흐뭇하다. 어린 나이에 남들이 미처 이르지 못한 분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후회 없이 쏟아내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 고급 진 청소년의 문화를 이끌어 낸 주역이 될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법. 또한 이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발굴하고 세상 밖으로 내어 놓은 기획관계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도 한 몫을 했으리라. 자 이제 얼마간 BTS의 멤버 전체 공연무대는 없다. 멤버 중의 맏형, 진이 입대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2025년의 활동재개를 약속했으니 말이다. BTS가 이 사회에 끼친 시너지의 파급 효과가 이 늙은이까지 행복으로 젖게 하다니. 아마 이런 감성은 내 생애에 처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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