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맞이할 임종,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 같은 야무진 꿈을 꾸고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한동네에 내걸린 조등이 어둑어둑한 골목 안을 은은한 빛으로 채워줬던 한때. 상갓집임을 알리는 잔잔한 시그널이 마을 전체로 번져나갔던 시대였죠. 생뚱맞게 그때의 감성이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꿰어 나오더군요.
요 근래 생의 마지막은, 차갑고 복잡한 병원에서 맞는 것이 보편적 흐름으로 굳혀졌습니다. 그 이면에는 유행가에서 조차 널리 불려질 정도로 아파트주거 문화의 찬양일색에 센 불을 집힌 원인제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독주택과 달리 아파트의 구조적 문제는 산자를 위한 편리함에 매몰될 뿐,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전혀 고려치 않은 공간으로 추락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친근한 죽음은 이젠 만나기 어렵게 되었지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던 아름다운 공동체의 손길은 사라지고 자본시장의 상업화 물결에 내몰린 죽음의 현실이 그래서 좀 씁쓸합니다.
위 현상에 덧칠할 배경이 따로 있습니다. 현대 물질만능과 기능주의는 ‘사람 중심’의 가치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까? 당시 돌봄의 주역들이 그 한가운데서 상처투성이가 되었죠. 그렇게 약화되어 간 가정 내 부모의 부양기능을 이젠 가족에게만 짐 지울 게 아니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그러면서 가정 내 돌봄 문제를 사회적 돌봄 체계로 전환하게 되었지요. 우리 복지도 선진화되는구나 하고 신선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공공시설만으로는 돌봄의 수용한계가 왔고, 민간자본의 시장화로써 그 공백을 메워야 했습니다. 그런데요, 좋은 취지의 제도도 바람직한 결과로 정착되기까지 부작용을 겪게 되는 법입니다. 주판알을 튕길 수밖에 없는 민간시장의 상업성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입소자를 탄생시키기도 했고, 민간운영의 파행을 낳기도 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민간운영권자가 겪는 어려움도 없지 않았으리라 헤아리게 됩니다.
이런 사회적 잡음에도 요양시설로 모셔가는 기세는 꺾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방안(아래, 제시할 대안 소개)이 없을 것으로 단정할 테니 어떤 망설임도 머물지 않겠지요. 그 마음을 이해하겠어요. 그러나 우선 하나, 시설탐색의 과정 없이 외향만 둘러보고 스리슬쩍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입소 당사자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어요. 아무리 건물 외향이 좋고 준비 잘 된 시설이라 한들, 허울 좋은 감방에 지나지 않음을 입소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될 테니까요. 집단적인 돌봄 속에 한 개인의 성향은 묻힐 테고 그 속에서 누리고 싶은 자유는 사치로 전락하겠지요. 1 : 1 보살핌으로 이뤄질 수 없는 한계가 그 중심에 떡 버티고 있어서죠. 어느 입소자가 시설 내 뜨락을 잠시라도 걷고 싶다는 절실한 소망조차 보장받기 힘든 곳, 그런 데를 그리 서둘러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임종을 맞으려면 그 외 따르는 대외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역 내 의료지원, 그리고 간호 간병 지원서비스가 필수사항인 것이죠.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긴박한 의료문제가 생기면 바로 처치해 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지원에 대해 희망자에게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조금씩 그 타개책이 열리고 있으니,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져 나올 때도 머지않습니다.
모 지자체에서는 의료전문가를 원팀으로 구성하고 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에서는 초고령사회에 의료중심의 관리보다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지역사회 및 재택중심의 의료 돌봄 서비스임을 갈파하였습니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나, 원격모니터링과, 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확대한다면 집에서도 관리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희망찬 연구보고도 나왔고요. 그 외, 일본에서는 전기포트 제품에 내장된 AI를 통해 노모의 사용상황을 가족에게 발신해주는 서비스가 효자상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답니다.
자 이젠 내 꿈의 실현에 바짝 다가선 실질적인 대안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보다 복지환경이 앞선 이웃 나라 일본의 가정 내 ‘임종서비스’입니다. 소규모 그룹의 사설 돌봄 업소이지요. 기존 규모가 있는 요양시설과 달리, 그룹형 돌봄은 돌봄 전문가가 지역 내 일반 가정집을 구해 노인들에게 숙박과 간병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돌봄을 받는 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유사한 환경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살던 집처럼 느껴져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반 가정집의 가족 수가 5명 전후임을 감안해 수용인원을 같은 수로 제한했고, 말기 암 환자나 연명치료거부 고령자들이 그 대상입니다. 1 : 1 간병 대면이 가능하고 방문의료 간호서비스를 받으며 24시간을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의 마지막 거처라면 분명 품위 있는 죽음을 거둘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국내에서는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한 소그룹이 있으나 위와 같은 돌봄 업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갈망이 극에 다다르면 반드시 현실 속에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2011년 지방에서 서울로 회귀할 때, 죽는 날까지 살 집을 찾던 일이었습니다. 아파트 주거형태라는 비자발적 선택은 어쩔 도리 없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 내 주검의 관이 빠져나올 구조를 살피는 일이었죠. 새삼스럽지만 왜 아파트에서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죽음이 왠지 모르게 칙칙하고 어둡게 보여 공동주택 설계 당시 일부러 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충돌하며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승강기에는 관이 드나들 수 없겠지만, 이에 보충할만한 꽤 넓은 공간을 이룬 계단이 있어 그나마 안심했습니다. 3층에 위치한 집과 연계된 계단을 이용하면 관의 이동엔 별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바로 구매를 확정했죠.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내게 노후의 보금자리이자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확고해진 내 각오가 굳혀진 현시점이고요.
무엇보다 비혼으로서의 내 삶이 정착되기까지 묵직한 대가를 치러낸 내 ‘고유한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고려한 점이 남다르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