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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Jan 02. 2023

새해 벽두, 버틸 동력을 줍다

  또 맞이하는 새해라니 얄궂다. 내 삶과 무관치 않은 격동 속에 갇힌 앞서간 날들을 보낸 것이 바로 엊그제일 뿐인데. 속수무책 임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허탈했다. 버거운 시류를 만났으니 있는 그대로 그 흐름을 바라봐야 했고 따라온 무기력감이 내 일상을 점령했다. 새해라고 한들 머물렀던 일들이 지워내고 생겨난 여백에 또 다른 희망을 담아낼 수 있을런가. 벽에 걸린 묵직한 새 달력이 빛을 발하며 나를 응시하려 든다. 시효 말소된 달력은 구겨진 채 서둘러 용도 폐기해 버렸다. 숨을 고르고 있던 어느 날, 가슴이 열리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의외의 반전이었다. 바깥으로 향한 화살을 이제부터는 내 안으로 돌릴 때라고. 이 탁한 시류에서도 살아갈 명제는 분명하니, 한 자연인으로서의 기운을 잃지 않도록 내 안을 더 공고히 할 때가 바로 ‘지금’ 아닌가하는 울림이 내 안에서 퍼져 나왔다. 비로소 본래 내 일상의 숨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안도하면서 문득 손녀뻘 되는 세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떠올렸다. 


  안녕하신가요, 툰베리님. 이즈음 불쑥 당신이 떠올랐을까요. 기후위기에 내몰린 지구를 살리기 위한 당신의 헌신적인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절망감에 빠져있을지 모를 당신을 생각합니다. 희망을 걸만한 새해가 아니란 점에서 동병상련을 느낀 까닭입니다. 2022년 11월 22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는 지난 26차 총회에서 합의한 수준에서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고 합니다. 최근 미 국립해양대기청에서 발표한 전지구 측정치를 들여다보더라도 한 달도 못된 사이에 0.14ppm(11월20일, 418.01ppm -> 12월 12일, 418.15ppm)이 증가했어요.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은 다시 화석에너지로 회귀하고 있고요. 이런 이슈에 상대적으로 묻힌 까닭일까요, 당신의 활동을 도통 뉴스에서 만날 수 없군요. 2021년에 마주한 영화, ‘그레타 툰베리’. 솔직히 영화를 보러가기 전까지 환경운동의 무게감을 가늠치 못했습니다. 소녀인 당신이 여느 기후전문가를 제치고 지구의 위기를 그토록 갈파하고 있을 줄은. 웬만한 정치인을 뺨칠 정도로 논리 정연한 지식을 체득하고 있더군요. 작은 체구의 소녀가 말잔치뿐인 기성세대를 향해 지르는 일갈은 그 우렁차기가 포효처럼 들렸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갈 때마다 어느새 흐르는 눈물은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감동스런 당신의 활동장면이 겹쳐왔기 때문입니다. 올해 20대 초반이 된 당신에게 빚진 마음을 작은 실천으로나마 청산하려 합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을 응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겠습니다. 당신도 그 곳에서 온전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환경 위기를 접하는 것보다 나는 사람들의 불감증이 더 두렵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환경파괴를 TV를 통해 목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면 쉽게 잊힌다는 그 점을. 그렇지 않고서야 오래 정착되어 온 재활용쓰레기 처리에 저리 미온적일 수 있을까. 먹방은 아직 성시중이며,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가지 수 많은 음식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 보인다. 언제까지 우리가 풍성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을런가. 방영이 끝난 후 남겨진 음식은 곧 쓰레기로 직행할 것이 분명한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했지만 이에 꿈적 않는다. 욕망을 부추기는 이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그 어떤 실천의 행동의지를 찾을 수 없다. 위기에 밀착된 생활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매체가 지금이라도 나설 때가 아닌가. 아직 먼 나라의 얘기라고 믿고 싶은 걸까, 몇 년 남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껏 유연한 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으로 살아왔다. 혼자서는 고기를 섭취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머문 공식석상에서의 육식은 부방비로 섭취했던 채식주의자. 평소에 나는 동물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심해왔다. 같은 생명체인 우리가 무슨 권리로 태어나는 족족 그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갈 수 있는지. 인간의 먹을거리 대상으로 전락된 그들은 대량생산을 위해 여러 영양제와 성장촉진제 그리고 항생제로 범벅이 된 채 길러진다. 한 달여 목숨에 그친 병아리, 6개월 정도 살았을 뿐인데 죽음을 당해야 하는 돼지와 소. 무엇보다 도살장의 비위생과 혐오스런 기구가 난무하는 현장을 우리가 목격했더라면 과연 그 사체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을까. 이마저도 공급이 딸릴 것을 대비해 대체육의 생산으로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니. 육식을 대체할만한 것을 식물에서 구하면 될 터인데 그에 대한 대안은 펼치려 들지 않는다. 채식위주의 섭생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들과 공생하려는 의지의 천명이며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는 지금길이기도 하다. 올해를 기점으로 나는 채식주의의 단계를 더 높이기로 결심한다. 두 단계 위인 ‘페스코 베지테리언’. 역시 육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 달걀 생선을 먹는 채식주의자다. 향후 어울리는 모임에서 따라 나오는 육류식재는 과감하게 거절할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키는 일은 귀찮고 때론 성가시다. 잔손이 많이 가고 불편함도 따른다. 무엇보다 산업혁명 이후에 사회통념이 되어버린 경제발전의 속도를 줄여야 지구를 살릴 길이 열리는데. 고비 풀린 망아지의 제어가 어렵듯이 속도전의 경제이념에 갇힌 정치권과 자본력이 팽배하니 실로 넘사벽을 느낀다. 이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한 번으로 되돌려질 생활리듬은 아니겠지만, 불편한 삶으로 회귀하려는 나의 작은 행동부터 실천하기로. 삶의 단초를 이런 가치에서 줍노라면 혼자이되 혼자이지 않다. 가려진 곳에서도 꿋꿋이 함께하는 적은 수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 곁을 내어주니, 버틸 동력을 줍기만 하면 된다. 몇 단계 높인 채식의 실천으로 일단 새해를 열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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