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국극 공연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아싸! 이 늙은 나이에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요. 그립던 이산가족을 찾은 것마냥 몸이 후끈 달아올랐지요. 여성국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적 기억의 딱지가 내 몸에 찰싹 들러붙은 존재들입니다. 단숨에 그 추억을 사들였습니다. 공연을 앞둔 여러 날, 기다림도 지루해 예매 알림 통지문만 여러 차례 만지작거렸습니다. 웬만해선 저녁 일정을 잡지 않는 편인데 그 공연만은 예외였어요.
지금처럼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없던 당시. 어릴 적 동네엔 소녀에게 진한 감성을 질러준 문화의 산실, ‘동양극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선 여성국극단 공연이 늘 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멀다 않고 내다 걸린 극장 간판에는 눈에 익은 배우들의 모습이 그려진 화려한 모습들이 찬란했었죠. 안산시 공연장으로 달리는 전철 안에서 나는 아스라한 추억에 빠져들었습니다.
드디어 ‘레전드 춘향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숨죽여 기다려온 아이처럼 내 얼굴도 환하게 피어올랐습니다. 93년생부터 93세 최고령에 이른 배우들이 총망라된 공연입니다. 생존의 공연, 마지막일지 모르는 1세대부터 3세대에 이른 명인들이 함께한 세대통합의 무대고요. 그 감동을 어찌 표현할까요. 증조부와 부모세대 그리고 손주세대로 잇는 극적인 무대가 종횡무진 거침없어 콧날을 시큰케 했습니다.
이런 무대를 언제 다시 만날까 싶은 조급함이 배우들 동작 하나하나에 시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주역 1세대인 이소자 93세, 조영숙 90세. 2세대인 이미자 79세, 이옥천 78세, 김성예 70세. 그리고 신세대 박수빈 38세, 황지영 93년생인 30세. 이 같은 합동무대는 앞으로도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친김에 추억의 뒤안길을 돌아봤습니다. 여성국극 창시자이자 걸출한 남장연기 전담배우인 임춘앵(1923~1975)씨를 어찌 빼놓을 수 있겠나요. 1950년대부터 쇠퇴기인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그녀였습니다. 천연덕스런 그녀의 남장연기에 반해 극장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50대 이른 나이에 사망해 어떤 무대서든 만날 수 없게 된 임춘앵. 무대에서 사라진 그녀지만 생전에 얼굴 볼 기회를 영영 잃었다는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때마침 그녀의 탄생 100주년인 2023년, 여성국극의 부활공연과 겹친점은 꽤 의미심장했습니다. 짙은 분장과 화려한 의상의 조명 아래 더 반짝였던 건 전통의 우리 소리와 연기가 조합을 이룬 여성국극의 역사입니다. 사이사이 절묘한 동작과 전통 춤사위가 곁들여진 우리 종합예술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뮤지컬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우리 고유의 장르를 정부는 왜 지원할 생각을 하지 않아 사양길을 걷게 했을까요.
그런 최악의 상황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들꽃처럼 견디며 자생적 힘으로 버텨왔죠. 바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하며 부활의 동력을 키워낸 것입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안산시가 이에 주목해 기틀을 마련해 준 일로, 기사회생의 길이 열렸음은 그나마 안심할 일입니다.
이번 일로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활동 나이’ 90대에 비한다면 70대에 불과한 내 나이가 아닌가요. 그래서 80대 이후의 활동에 제동을 건 일은 이로써 철회했습니다. 건강을 미리 짐작해 활동 전선에 선을 그어놨던 겁니다. 아직 닥친 일도 아니면서 건강염려에 민감해진 나를 발견한 일입니다. 이젠 사회활동을 허락할 만큼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될 때까지, 해야 할 일에서 손을 놓지 않으리라 각오했습니다.
나이가 더해가는 노년기이지만 사유의 세계를 더 넓혀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배움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쌓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내겐 인문학 공부입니다. 내 비록 체력이 달리는 노년이라 해도 글이 주는 힘을 믿기에 당당히 나서렵니다. 향후 내 나이가 몇이 되던,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접히지 않도록, 지금부터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되돌아보건대 인문학은 내게 아주 흥미롭고도 단단한 세계로 안착시켜 주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더 여물어졌고,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도 커졌습니다. 자신을 향해 던진 여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표를 포기하지 않아, 마음의 근육을 키워낸 전력이 공고해진, 자신의 돌봄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건강에 앞질러, 주체적 삶의 세계를 키운 일이 건강지킴의 단초임을 체화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주인공들이 존재감을 내보이며 손짓합니다. 90세인 이순재씨도 최근 연극공연에서 놀라운 활동으로 건재하고 있지요. 70 80대에도 시도 가능한 일을 나이 탓으로 돌려 주저앉아 버린 꽤 많은 노인들과 대비되는 일입니다. 주변 공원에서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거나 애꿎은 술과 담배로 달래면서 남은 에너지를 속절없이 날려버리고 있지않나요.
한 송이의 꽃도 활짝 피워내기까지 긴긴 세월 허구한 날 인내하며 견뎌낸 시간들로 채워내는 법. 때를 만나 만개를 이룰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이 만개의 시기를, 늙음을 핑계 삼아 지레 접는 일은 비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노랫말에서 자주 인용되는 눈물의 씨앗은 인생의 덤일 뿐, 자기 안에 깊숙이 내장된 희망의 씨앗을 꺼내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발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든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했노라 죽음으로 알리는 날까지 그 당당한 자취를 남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