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한 일을 홀로 겪을 때에는 대략 난감합니다. 어떤 대처를 취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어요. 가족을 이루지 않아 긴박한 사태에서도 홀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몸에 밴 까닭에, 타인에게 구원의 손을 벌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황 조율의 필요성을 느껴 한 친구와 접속을 했습니다. 대응책을 취합하고 황망한 걸음으로 집을 나섰지요. 혼자 사는 이가 넘어져 전이된 통증이 마음에서 만져질 때, 보조 역할자라도 곁에 있다면 얼마만큼 불안 요인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혼자 대응할 수 없는 일을 ‘우렁이 각시’ 같은 존재가 나서준다면 참 좋겠다는 비현실적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사회적 서비스가 상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서울시 ‘1인가구 병원동행서비스’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1인가구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죠. 이용료도 시간당 5천 원으로 저렴해서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이 서비스정보를 접속하기 얼마 전의 이야기입니다. 새것으로 교체한 커튼레일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나무의자 다리 하나가 꺾이며 곤두박질 당해 손목골절을 입었습니다. 어이없는 실수로 세 곳의 병원을 전전했죠. 동네 병원에서는 수술해야 할 정도라 큰 병원으로 가라했고, 대학병원에서는 예약이 꽉 차 수술을 받아줄 수 없노라 거절당했죠. 어렵사리 연결된 개인전문병원에서 한밤중 11시에 수술을 마칠 동안까지 길 위에서 헤맨 나는 온전히 혼자였습니다.
그 날은 얄궂게도 거리의 혼잡이 극심한 금요일이어서 내 생애에 길고도 힘든 시간으로 기록되었지요. 입원수속을 마치고 간병인의 손을 빌리면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은 얼마를 버티지 못했습니다. 입원기간이 일주일 이상의 조건이어야 간병인파견이 용이하다는 단서 앞에 맥이 풀렸죠. 수술 다음 날로 이어진 불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어요. 속옷을 갈아입는 건 물론 용변 또한 한 손으로 해결하는 데에 번거롭기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세수는 눈곱 뗄 정도여서 토끼세수에 그쳐야 했고, 머리도 감을 수 없어 찝찝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퇴원에서 수개월에 걸친 재활치료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평소 혼자 살면서 일상 문제해결 능력이 야생초처럼 마구 자라난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었지요. 기댈만한 가족의 부재가 웬만한 일이 아니면 타인에게 의존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자립성을 키운다는 그 사실이었죠. 그런데 이 당당함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마다 보호자 대동 요구가 늘 따라붙는 이 불편함이란. “보호자는 누구시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요.” 레코더처럼 반복되는 성가신 요청에 “제 자신이 보호자인데요.”라며 응수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병에 대한 대응판단은 물론 의료행위 채택 유무에 관한 결정은 주인공인 내 몫이 아닌가요?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릴 만큼 큰일이 아닌 까닭에 애꿎은 친구 이름을 적는 것으로서 서둘러 타협을 했습니다.
2021년 12월인가, 처음으로 ‘병원동행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위내시경 검사였는데 수면 내시경의 요건은 보호자를 동반 요구합니다. 지금은 단순 동행에 그친 병원동행서비스이지만 가뭄의 단비처럼 고마울 수 없더군요. 그에 그치지 않고 내친김에 다양한 서비스로 거듭나길 바라는 바람을 추가로 날려봅니다.
세 집 중 한 가구가 1인가구라는 상징적인 통계가 복지다변화의 욕구를 유발시키는 요즘입니다. 가족의 개념 또한 혈연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지 않나요? 어느새 신개념의 가족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유연한 가족구성과 함께 ‘가족의 넓이’가 팽창해가는 중입니다. 이런 시대 흐름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국가행정이 이 같은 세태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시대감각이 이에 따르지 못하는 행정의 혼재가 사각지대를 낳고 그로써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뜻이 맞아 동거해 온 두 여성이 법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 여성이 다른 쪽을 딸로 입양했습니다. 제도권 안에 들어갈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회고를 했죠. 통상 상식을 뛰어넘는 모녀간의 나이 차의 근소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재독간호사인 두 여성은 동성 간 결혼을 통해 부부로서 인정받았고요. 더 늙고 병들기 전에 안정적인 돌봄을 합헌적으로 보장받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돌봄 행정이 가족구성원의 다변화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희망마저 물릴 순 없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삶은, 독신 • 혼외 동거 • 동성애가족 • 입양가족 • 국제결혼가족 • 새터민가족 등으로 열거할 수 있습니다. 달라져 가는 가족의 개념은 이제 과거 닫힌 세계로부터 미래 열린 세계로 압박을 받는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이에 걸맞은 의료 돌봄 체계도 요구되는데, 그 예로서 총괄 의료통합서비스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방문간호사제도’입니다. 지금 함께 실행 중에 있습니다만 혜택 가능한 곳이 손꼽을 정도여서,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입니다. 바라건데 이 모두를 망라한 원스톱복지시스템으로 확장시켜 누구든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멀지않기를 희망해 봅니다.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을 비추어 봐도 복지수준은 늘 진화해 왔습니다. 따라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기다림이 지나쳐 우리와 같은 고령자들에게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