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즐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주제에 끌리거나 사회이슈가 될 만한 영화를 챙겨보는 일입니다. 마침 산책하기에도 알맞은 2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어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짬을 내어 문화초대석에 앉는 것이지요. 게다가 경로우대의 혜택도 받습니다. 코로나 제재가 심할 때를 제외하고는 틈틈이 그 영화관을 찾곤 했습니다. 극소수 입장객의 운영 때문에 영화관이 닫힐까 걱정하였으나, 고맙게도 나 홀로 관객일 때도 영사 기사는 어김없이 영화를 돌려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사회적 조명을 받은 영화, ‘다음 소희’를 봤습니다.
화면이 뒤로 갈수록 한탄이 배어나옵니다. 실습장이 그토록 험지였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기업의 사무직에 뽑혔다고 한껏 들떠있던 소희. 그녀에게도 대기업은 선망의 자리였을 테니까요. 그것도 잠시, 하청업체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콜센터에서 배정받은 자리는 온갖 화살이 날아드는 ‘욕받이’ 부서였습니다. 인터넷 가입해지를 막기 위한 별도의 조직, 최전선 총알받이 부대였던 겁니다. 계약해지가 통과되지 않도록 준비된 지침서, 단계별 멘트로 대응하며 저지하는 일이 그들의 업무였습니다.
그녀는 정규직도 아닌 실습생이었음에도 센터 내 상품을 고객에게 추가로 판매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목표실적의 압박에 못 이겨 야근을 밥 먹듯 했습니다. 말이 좋아 상담원이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고객의 험한 말씨름에 휘둘리고 내칩니다. 그런 그녀가 겪은 고통의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어린 나이의 사회초년생에겐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야근도 불사하며 받은 임금은 첫 달에 85만원, 그 다음 달은 125만원, 100만원 초반에 머물렀다니요. 알바생의 손에 쥔 것도 그 정도는 넘겼을 것입니다. 실습생이라지만 최저임금에 기준한 시급의 적용도 챙겨주지 않은 업체였습니다. 소희가 겪은 아픔은 당시 우리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몇 중고의 고통이었던 것이죠.
설렘의 첫 직장에서, 배려의 손길 대신 예기치 않은 진상을 만나 겪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실습장의 지옥체험으로 자립의 의지는 여지없이 꺾였을 것이고. 무력감의 나락으로 떨어진 소희의 마지막 길은 죽음이었을 테지요. 잔혹한 현실 앞에 죽음으로서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조차 부질없는 사치였을지 모릅니다. 그 배후의 인물들은 눈을 감은 채 모르쇠로 일관해, 구조적 부조리를 파헤치고 시정해줘야 할 과제가 관객들의 몫이라고 질러준 영화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1967년, 나는 실업계 상업고교를 졸업했습니다. 사회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던 내 모교의 취업률은 100%에 이를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졸업하기 이전에 실습현장에 파견 나간 일이 생각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영화에 더 관심이 갔던 겁니다. 고3 여름방학 한 달간 단행된 실습은 별도의 ‘보수’를 받는다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실력을 현장에서 파트너로 인정받는 체험의 장이란 비중에 두었으니까요. 당시 우리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격적 차별을 받은 바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차별인식은 입법부의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불평등진화에 나섰지만, 이 같은 현실 아래에서는 눈 녹듯 소멸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기득권 세력이 그들의 노동을 하찮게 여긴 탓입니다. 관리 엘리트들은 자본논리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듯, 노력하지 않은 무리의 결과적 상황으로 일축시킵니다. 시건방진 차별적 발상입니다. 엘리트층만 그런 생각을 지닌 게 아닙니다.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의외의 일반 대중조차 불평등을 선호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즉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의 차이가 클수록 좋다(한국리서치 2018<한국사회 공정성 인식조사 보고서>)라는 입장이 66%라는 점을. 허탈하지 않습니까.
우리 노동사회를 들여다보면 희망이 선뜻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 흐름에 대항할 개개인의 약자들은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쉽게 꺾이고 쉽게 주저앉아 죽음으로 투항하고 있어요. 그렇게 관리자에게 지는 순간 헤어날 길 없는 안타까운 현상만 그들 주변에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죠.
그에 반동 활동으로서 이 같은 영화제작에 적극 가담한다든가, 저항하는 공유의 글을 서로 나누거나, 초라하지만 알찬 공동체에서 여러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작은 실천의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이 이어질 때라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활동 하나로 무마될 일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언젠가 그 수치가 뒤바뀌는 날도 다가오지 않을까요.
누구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놓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힘은 나약하나 연대의 힘은 강합니다. 여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실을 수 있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죠. 고도의 경제혜택을 누린 노인세대로서 예전보다 못한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며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빚진 마음이 더 커집니다. 차별의 현안문제가 풀리지 않아 막막한 순간을 맞더라도 따뜻한 손길로 잡아 줄 이웃의 관심이 많아진다면, ‘소희 다음’을 저지시킬 첫 단초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