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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의 내 가족을 소개합니다

by 정미영

우리 세대의 다수가 ‘장학금 기부’에 꽂혀있을 때 나는 일찌감치 시민단체의 기부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개인적 나의 시대감각에 의미를 더해 준 배경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말씀에 고무되어 더 굳힌 계기가 되었지요. 시민단체가 내게 직접적으로 안길 성과물을 의식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지만 긍정적인 결과로써 잘된 나의 선택이었죠.

하지만 진실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마음 한구석이 지긋이 눌리는 무게감도 솔직히 없진 않았습니다. 바른 생각을 내는 소수로 살아가려면 묵상과 친숙해져야 하니까요.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 사회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이룰 시기는 반드시 온다는 희망 하나로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비록 내 세대에서 변화의 시간을 마주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때가 언제이든 기다림의 미덕을 생성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같은 기다림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똑같이 흐를 마음이지 않겠어요.


자식인 양 보듬은 시민단체가 몇몇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내 가슴에 자식으로서 정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 사회에 선한 동력을 일으킨 그들의 뒤를 전폭적인 관심을 몰아준 결과였죠. 10년 혹은 20여 년 전부터 이들 외에 독립시민단체와 독립 언론 등등에 후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다양한 세계로 시야를 터준 일은 그간 지녀왔던 내 의식에 불을 지펴준 불쏘시개였으며, 진일보한 사람으로 성장시켜준 일입니다.

단순 사고에 갇히지 않고 사회구심점을 구축하는 다양한 기회를 얻었음은 분명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정을 꾸리지 않아 피붙이를 잉태하지 않았다 한들, 그들을 서슴없이 품은 결과는 신개념의 ‘가족’을 이룬 것과 진배없는 일입니다.


그중 독보적인 존재, 한 시민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1박 2일간 회원워크샵의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 단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회원끼리 모여 숙의 토론하는 장이었죠. 그에 앞서 단체에서 보내준 자료의 분량은 어마어마했어요. 미리 읽고 오라는 주문을 덧붙였죠.

부담되었으나 개최 장소가 워낙 아름다운 파주 출판도시란 점에 마음이 팔렸지요. 여행길에 나선 것처럼 들뜬 마음이 그 부담을 가볍게 내치는 게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출판도시 입구부터 펼쳐지는 푸름의 향연 그리고 독특한 건축양식과 어울린 외부 설치미술. 눈의 감각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요,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설정한 그 이면에 빡센 일정이 깔려 있을 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밤 10시까지 토론하고 나서야 취침을 할 수 있었죠. 고단했지만 촘촘히 짜인 일정이 되레 그 단체에 대한 강한 신뢰로 자라났습니다. 잘 먹여주고 편안한 잠자리 제공과 더불어 회원 간 의견수렴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이끌어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참 가상하더라고요. 잘 키운 자식을 바라보는 흐뭇한 체험의 장이 되었습니다.

각각 분임토의 자리가 배정되었고, 테이블마다 12명의 회원들이 마주보고 앉았는데요. 구성이 흥미롭더라고요. 20대에서 70대까지 골고른 세대 간 통합을 보는 듯했으니까요. 그런 그들과 꼬박 24시간의 일정을 소화해 냈습니다. 그날의 참여자 모두 그 단체에 대한 애정 깊은 정예부대로 느껴지더군요. 처음 대하는 사이였음에도, 쉬는 간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에서 허물없는 친지처럼 느껴졌지요.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같은 동행 장소였기에 가능했던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안정되게 편안한 자리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나는 깜박하고 소매 긴 옷을 준비해가지 못했는데요. 주구장창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에 무방비로 내몰려 힘들어하는 내게, 어느 중년의 남성 회원이 자신의 겉옷을 흔쾌히 내어 주는 게 아닌가요. 하등 거절할 이유가 없는 나로선 그의 친절을 덥석 받을 수밖에요.


위 단체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가슴으로 낳은 두 번째 자식입니다. 실제 큰 녀석의 존재감이 따로 있지만, 왠지 이 둘째에게 밀리는 감은 어쩔 수 없더군요. 큰놈보다 작은놈이 잘 풀리는 경우가 왕왕 여느 집에서나 통용되는 이치처럼, 내게도 엄지 검지 그리고 약지로 지칭할 후원단체들인 겁니다. 때론 의외의 실망을 안긴 일도 발생하지만, 정부지원 없이 후원만으로 독자적으로 꾸려가는 운영단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일리 있는 어떤 잡음이 기사화된 경우도 있었는데, 정치적 음해로 판명돼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규명될 때가 많죠. 열악한 사회조건하에서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 20~30년 이상의 명맥을 유지한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한편, 후원단체에서 주선한 행사는 보고 듣기에 유익한 내용이 많습니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참여할 기회가 활짝 열려있지요. 다채로운 행사에 초대돼 다양한 세대와 어울릴 세계로의 진입은 이 늙은이에게 얼마나 설레는 일입니까. 이렇게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 판단 내릴 수 있음은 이로써 안도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어려움의 과정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옳은 판단인지 아닌지, 헷갈릴 순간이 많죠. 더욱이 자신을 홀로 책임져 살아갈 사람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시켜 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판단의 결과로, 한 사람의 삶의 질이 송두리째 바뀔 테니까요. 특히 귀가 얇아지는 노년기에는 더욱 유념해야 할 부분이 될 겁니다. 시민단체가 그 판단에 힘을 실어줄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은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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