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은 영수증을 정리한다

by 시온

그 회사는 지금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회사가 되었다. 그가 초급 간부로 일하던 시절, 처음으로 채용 실무를 맡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조직은 단출했고, 신사업을 키우겠다는 분위기가 막 달아오르던 때였다. 그 신사업을 이끌고 갈 사람을, 그의 직속 상관이 될 임원을, 외부에서 뽑는 일이 그에게 떨어졌다고 한다.


공고에는 해당 분야 경력자라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는 서류를 검토하고 기준에 맞는 후보들 중 몇 분을 선별하여 보고했다. 업계에서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상급자가 느닷없이 한 이름을 꺼냈다. 명단에 없는 이름, A였다.


"자격 요건이 맞지 않습니다." 그 대답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급자는 A를 명단에 올리라고 했다. 최종 결정은 CEO가 하는 것이니, 자격 요건과 관련한 부분은 자신이 직접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절차는 남아 있었지만 결과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업계 실력자는 탈락했고, A가 뽑혔다. 이력서에는 눈에 띄는 학벌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더 분명히 드러났지만, 당시에도 이미 여러 생각이 들었다.


A가 부임하고 나서 회의마다 비판은 넘쳤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말은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보고를 가져가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한 경우가 반복되었다고 한다. "당신이 위에 직접 올려서 결심을 받아오라." 처음에는 신중함인가 싶었다. 두 번째도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A가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산하 직원 전원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하자고 했고, 진행은 그에게 맡겨졌다. 워크숍 과정 중 리더십에 대한 외부 전문가의 강의 시간이 있었는데, 강의에는 역할극도 포함되어 있었다. A도 역할극에 참여했다. 강의가 끝난 뒤 그 전문가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 "직속 상사분, 리더십 측면에서 유의해서 보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외부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었다. 그는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A의 방에 들어가면 자주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고 한다. 법인카드 영수증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모임과 만남이 이어졌고, 그와 관련된 일정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식사, 모임, 안부. 그쪽으로 시간과 카드가 흘렀다.


A는 오래 그 자리에 머물지는 못했다. 그대로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비교적 한 발 비켜선 자리로 이동했다. CEO를 핑계로 A를 밀었던 임원은 그 뒤로 그를 만날 때마다 A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에 새긴 문장이 있다. “다시 보자 학벌, 속지 말자 스펙”. 학벌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스펙이 쓸모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실력의 증거인 것처럼 사용될 때, 검증을 건너뛰게 만드는 통행증이 될 때, 그 조직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다.


조직의 위로 올라갈수록 업무에 치중하는 사람보다 관계를 관리하는 사람의 비중이 커진다. 자리는 줄고 경쟁은 치열해질수록, 성과보다 연결이 더 중요해 보이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사를 결정하는 사람들 역시 대체로 그 논리 안에서 움직인다. 조직의 문화는 누가 승진하느냐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정확한 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였다. 회사에서 CEO 공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외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A가 그를 찾아와 뜻밖의 말을 꺼냈다. CEO 선발에 관여하는 임원 가운데 그와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신을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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