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기업에서 새 CEO 취임을 앞두고 임원 인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실상 '몇 년생까지는 탈락'이라는 원칙이 제1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과도, 역량도, 앞으로의 기여 가능성도 아닌, 오직 태어난 해가 기준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이미 본 장면이라는, 기시감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 회사가 공기업이었던 수십 년 전에도 동일한 기준이 작동하였는데, 강과 산이 몇 번 바뀐 지금도 그 관행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씁쓸했다. "올해는 몇 년생까지는 나가야 한다"는 문장이, 세대만 바뀌어 여전히 어딘가의 은밀한 회의실에서 오가고 있는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 회사가 AI와 디지털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회사가,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에서는 가장 낡은 기준을 꺼내 들고 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 조직이 원래 그런 곳이라는 뜻이다.
人事는 흔히 제도나 절차의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사는 그 조직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언어에 가깝다.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내보내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면 조직의 철학과 지적 수준, 그리고 미래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읽힌다.
연령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의사결정의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리더십을 측정하는 일은 더 어렵고, 변화 적응력을 수치화하는 것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결국 조직은 가장 쉬운 변수를 고른다. 나이는 논쟁이 없다. 측정도 상당히 쉽다. 그리고 기준을 정하면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쉬운 기준이 가장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변수 하나로 해결하려는 충동은 효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판단을 포기한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포기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여기서 한 가지 냉정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올해 X년생이 기준이라면, 내년에는 X+1년생이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에 간신히 살아남은 X+1년생 임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까?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질까?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퇴장이 유예된 것이지 면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라면, 남은 시간을 전력으로 달릴 이유가 없다. 연령 컷은 탈락자만 잃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까지 함께 꺼트린다. 이것이 이 방식이 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구조적 모순이다.
AI 시대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맥락을 읽는 감각, 오랜 경험에서 쌓인 판단력이다. 이 세 가지는 젊음만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연령 기준으로 일괄 배제되는 인력 중에는 바로 이런 자산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스스로 지식의 저수지를 비워버리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사가 발신하는 메시지다. 인사는 내부 구성원에게 묻지 않아도 이렇게 말한다. "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가?" 연령 컷이 원칙으로 작동하는 순간, 그 메시지는 이렇게 읽힌다. 성과보다 나이가 중요하다고. 기여보다 세대가 우선한다고.
이 메시지가 조직 안에 스며드는 순간, 사람들은 학습을 멈추고 도전을 줄이기 시작한다. 어차피 결정적인 기준은 따로 있다는 무력감이, 혁신을 자처하는 조직의 내부를 조용히 잠식한다.
어떤 조직은 퇴행하고 어떤 조직은 진화한다. 그 차이는 기술의 보유 여부나 사업 구조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결국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그 철학이 인사라는 형태로 표출될 때 두 조직의 경로는 갈린다.
진화하는 조직은 사람을 가능성의 존재로 본다. 퇴행하는 조직은 사람을 관리해야 할 비용으로 본다. 전자는 인사를 복잡하고 어렵게 다루고, 후자는 인사를 빠르고 단순하게 처리한다. 그 차이가 당장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체질로 굳어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장이 한때 광고 카피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문장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문장의 주인과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이가 가장 강력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아이러니를 넘어 하나의 경고처럼 들린다.
인사는 철학이다. 허접한 철학의 조직은, 아무리 앞선 기술을 자랑해도 결국 낡은 방식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