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은 울창한 밀림이었다. 나무 위에는 과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조상들에게 이웃은 그리 절박한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숨을 곳이 많은 환경에서 협력은 필수라기보다 선택에 가까웠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동아프리카를 기점으로 기후가 건조해지고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울창했던 밀림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낮은 키의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사바나 대초원이 채웠다. 인류는 강제로 땅 위에 내려앉았다. 익숙했던 과일은 귀해졌고, 몸을 피할 수 있던 거대한 나무들도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인간의 근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포식자들이 득실거렸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똑바로 서서 걷기 시작했다. 직립보행은 세 가지 이점을 주었다. 첫째, 시야가 넓어졌다. 대초원의 풀 위로 고개를 내민 덕분에 멀리서 다가오는 포식자를 미리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원숭이 시절의 너클 보행보다 에너지를 최대 35%나 절약했다. 더 적게 먹고도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체온 조절이 용이해졌다. 지열에서 몸이 떨어지고 햇빛을 받는 면적이 줄어들면서 장거리 이동을 견디기 수월해졌다.
하지만 이 신체적 변화만으로는 부족했다. 들소나 매머드, 굶주린 맹수들 앞에서 인간의 육체는 여전히 유약했다. 직립보행으로 얻은 효율도 맹수의 이빨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인류가 찾은 최후의 생존 전략은 '관계 맺기'였다.
혼자서는 사냥할 수 없고, 혼자서는 잠든 사이 습격하는 맹수를 막을 수 없었다. 인간은 무리를 지었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회적 지능 가설'은 인류의 뇌가 비약적으로 커진 이유를 도구 제작 능력이 아닌, 공동체 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조율하기 위함으로 본다. 인간의 지능은 개인의 영리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협력하고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조직력은 수만 년간 우리 종을 지탱해온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끈이 위태롭게 풀리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가장 비극적인 지표가 고독사다. 고독사는 단순히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만이 아니다. 인류가 수백만 년간 지켜온 사회적 지능이 작동을 멈췄다는 증거다. 사바나 시절, 무리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인간의 뇌는 타인과 연결되지 못할 때 신체적 고통에 준하는 심리적 통증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현대 사회의 고독사는 이 본능적 연결의 망이 끊어졌음을 보여준다.
고독사의 이면에는 양극화와 사회적 파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 결핍은 사람을 수치심의 골방으로 밀어 넣고, 관계 맺기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사회적 관계가 자산이 되고 권력이 된 세상에서, 그 자산이 없는 이들은 공동체의 보호막 밖으로 밀려난다. 사바나의 조상들이 사냥감을 공평하게 나눈 것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동료의 부재가 곧 나의 위기로 이어짐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옆집의 적막이 나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디지털 고립은 이러한 단절을 심화시킨다. 성공을 개인의 덕으로,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하는 문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지운다. 타인을 잠재적 동료가 아닌 경쟁자나 무관심한 타자로 인식하는 순간, 인류가 수만 년간 쌓아온 조직력은 허물어진다. 고독사는 그 자리에서 피어난 현대판 사바나의 비극이다.
현대 문명이 인간의 개별적 능력으로 이룩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문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항상 관계 맺기에 성공한 약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사바나에서 우리를 구원한 것은 날카로운 창이 아니라 옆 사람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지금의 사회적 위기는 누가 더 갖고 덜 갖고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 생존의 필수 요건인 공동체성이 해체되고 있다는 본질적 위험이다. 공동체가 느슨해진 사회에서 개인은 다시 사바나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유약한 존재로 돌아간다. 고독사라는 현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적 지능을 서로를 밀어내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다시 생존의 끈을 단단히 묶는 데 쓸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증명한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함께여서 살아남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