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이제 다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세요.” 또는 “다 내려놓았더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어.” 적잖은 사람들이 건네는 말이다. 자주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클리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덕담인 건 알겠는데,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그냥 영혼 없는 인사치레인가?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다'라는 한 글자에 눈이 갔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직함에 대한 미련, 내가 걸어온 길이 옳다는 고집, 혹은 내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착각 같은 것들. 이런 건 진작 내려놓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다'의 범위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눈 감고 귀 닫는 것까지 내려놓음이라고 불러야 할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 "이제 내 일이 아니야"라며 돌아서는 것이, 과연 원숙함인가? 아니면 그냥 외면인가?
나는 솔직히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자기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도 않고, 국가니 국민이니 회사니 하는 말을 앞세워 자리와 명예를 챙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대의를 말하는 입과 실속을 챙기는 손이 따로 노는 경우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장면은 반복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 했다. 그 자리에 합당한 능력도 공로도 없이 앉아서 제 몫만 챙긴다는 뜻이다. 이런 장면 앞에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태도를 내려놓음이라고 부른다면, 그건 노련함이 아니라 방관 아닐까?
단테는 지옥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고 봤다.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조금 무거운 비유이긴 하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침묵은 때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은퇴가 주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이것이다. 더 이상 눈치 볼 이유가 없다는 것.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있었고, 지켜야 할 것들도 있었다. 그게 꼭 비겁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직 안에서는 그게 현실이었다.
지금은 그 현실이 달라졌다. 가족을 위해 자리를 붙들어야 할 필요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직함이라는 갑옷을 벗었더니 오히려 몸이 가볍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상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 힘 있는 자리에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앉아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눈은 나이 든다고 꼭 흐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 살아온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경험이 쌓이면서 생기는 일종의 안목 같은 것이다.
물론 내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주관이 개입하기 쉽고, 시대가 바뀌면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편견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하고, 전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신보다는 질문을, 단정보다는 관찰을 먼저 내세우는 쪽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입을 닫아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신중한 것과 침묵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갑옷은 벗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할 생각은 없다. 직함은 내려놓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만은 계속 열어두고 싶다. "다 내려놓으라"는 말, 친절한 말이기는 하다. 다만 그 '다' 안에 분별력까지 포함시키지는 않았으면 한다. 공동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일들 앞에서 두 눈을 감는 것, 적어도 나는 그걸 내려놓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