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피는 꽃은 없다

by 시온

성공을 다룬 책 중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Outliers)』만큼 널리 읽힌 책도 드물다. 행복을 다룬 책 중에는 하버드대 연구팀이 80년 넘게 사람들의 생애를 추적해 펴낸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The Good Life)』가 그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진다. 하나는 어떻게 세상의 정점에 서는가를 묻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살아야 마지막까지 괜찮은가를 묻는다. 다른 질문처럼 보이지만, 두 책을 나란히 읽다 보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웃라이어』는 성공한 사람들의 뒷면을 들춰낸다. 비틀즈가 세계적인 밴드가 되기 전, 그들은 독일 함부르크의 허름한 클럽에서 하루 여덟 시간 넘게 연주했다. 1,200회가 넘는 공연이 그들을 단련시켰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글래드웰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 그 연습량 자체가 아니다. 그런 기회를 그들이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 즉 함부르크라는 장소가 그 혹독한 무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재능과 노력은 분명 그들의 것이었지만, 그 재능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처한 환경 덕분이었다.


빌 게이츠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다. 1968년, 대학에도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에 중학생이었던 그는 자기 학교에 설치된 단말기를 마음껏 두드릴 수 있었다. 학교 어머니회가 기부금으로 마련한 단말기 하나가 세상을 바꾼 기업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랐다면, 그 시절이 아닌 다른 때에 태어났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글래드웰은 묻는다. 우리가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의 성공에서 개인의 몫은 얼마이고, 그를 둘러싼 환경과 기회의 몫은 얼마인가?


한편 하버드의 연구는 1938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상자들의 자녀 세대까지 추적 범위를 넓히며 90년 가까이 계속되는 이 연구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한 세대의 연구자들이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기며 단 하나의 질문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2010년경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가 이 연구를 바탕으로 『행복의 조건(Aging Well)』을 펴내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와 마크 슐츠(Marc Schulz)가 그 후속 결과를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로 정리했다. 한 세기에 가까운 데이터가 가리키는 답은 예상 외로 단순하다. 끝까지 건강하고 행복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산도, 지위도, 유전자도 아니었다. 곁에 따뜻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삶은 이 연구 결과를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서른 살에 보장된 안락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가봉(Gabon)으로 떠난 그는 평생을 타인의 고통 곁에서 살았다. 그가 90세까지 맑은 정신으로 현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단순한 체력 덕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평생 맺어온 깊은 인간적 유대가 역설적으로 그 자신을 지탱했다고 보는 것이 하버드 연구팀의 시각과 맞닿아 있다. 타인을 돌보는 삶이 결국 자신을 돌보는 삶이기도 했던 셈이다.


두 책이 말하는 것을 겹쳐 보면 하나의 그림이 나온다.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그를 밀어올린 환경과 기회가 있었고, 행복한 사람의 곁에는 그를 지탱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줄탁동기(啐啄同機)’라 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끼 새의 힘과 밖에서 쪼아주는 어미 새의 손길이 같은 순간에 만날 때 비로소 생명이 탄생한다. 안의 노력만으로도, 밖의 도움만으로도 부족하다. 둘이 맞물려야 한다.


두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우선 자신이 이룬 것을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취를 순전히 개인의 노력과 재능으로 귀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글래드웰이 보여주었듯,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 어떤 가정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더 두꺼운 출발선 위에 서 있고, 누군가는 아무리 달려도 그 간격을 좁히기 어려운 곳에서 시작한다. 내 성공을 온전히 내 것으로만 여기는 순간, 그 불균형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자각은 자연스럽게 책임으로 이어진다. 좋은 기회를 먼저 얻은 사람에게는 그 기회를 다음 사람에게 연결해줄 이유가 생긴다. 사회는 혼자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가 쌓여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구조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노력을 보태고 있다. 내가 딛고 오른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도 내어주는 것이 기회를 먼저 얻은 자의 도리일 것이다.


관계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연구가 증명했듯 행복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온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성과를 쫓느라 관계를 뒤로 미룬다. 덜 바빠지면, 더 여유가 생기면, 더 성공하고 나면 그때 주변을 돌아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추적 조사는 그 순서가 틀렸음을 조용히 지적한다. 관계는 성공 이후에 챙기는 보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토대다. 슈바이처가 밀림에서도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람들과 맺어온 유대가 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배려, 희생이라는 말이 낡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두 권의 두꺼운 책이 수십 년의 연구와 수백 명의 사례를 동원해 우회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과연 내 힘으로만 여기까지 왔는가? 가끔 그 질문을 꺼내 드는 것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달라진 태도가 다음 누군가에게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혼자 피는 꽃은 없다. 모든 꽃의 뒤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토양과 햇빛과 누군가의 손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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