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거대한 실험의 시대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과 계획의 싸움이었고, 결과는 명확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시장경제는 계획경제보다 효율적이고, 자유는 통제보다 우월하다는 명제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보였다.
사회주의는 고상한 大義를 표방했다. 문제는 그 구현을 인간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현장은 성과를 부풀렸고, 관리자는 보고를 왜곡했으며, 권력자는 자기 이익에 맞게 개입했다. 계획경제의 실패는 컴퓨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중간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에크는 이 문제를 정교하게 포착했다. 그의 출발점은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한계였다. 완벽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지역 차원의 지식(local knowledge)'으로 흩어져 있다. 사회 곳곳에 분산된 이 지식은 어느 한 기관에도 모일 수 없다. 중앙의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모아 판단하려 들면 반드시 왜곡이 일어난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가격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판단이 압축된 집단적 신호다. 시장은 도덕 체계가 아니라 분산된 연산 구조에 가깝다. 그는 시장을 이상화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1965년, 폴란드 경제학자 오스카르 랑게가 반격했다. 그는 ‘컴퓨터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연산 장치’라고 주장했다. 가격은 전자 시대 이전의 계산 방식일 뿐이다. 소련 경제학자 칸토르비치는 완전 정보 하에서 시장과 계획은 수학적으로 동일함을 증명하여 197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에는 결정적인 빈틈이 있었다.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랑게와 칸토르비치는 충분한 연산 능력만 확보되면 중앙계획이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두 겹이었다. 첫째, 1960년대 컴퓨터는 경제 전체를 실시간으로 계산할 만큼 빠르지 않았다. 무어의 법칙이 제시되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수십 년이 필요했다. 둘째, 더 근본적으로 데이터 수집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강력한 컴퓨터가 있어도 입력할 정보가 없으면 소용없다. 당시에는 모든 거래, 모든 선호, 모든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단순한 효용 극대화 기계가 아니다. 정보는 계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권력 추구, 회피 행동, 편법과 같은 요소는 수식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설령 데이터를 모은다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하면 왜곡이 일어났다. 랑게와 칸토르비치는 연산(computing) 능력의 가능성은 예견했지만, 수집과 자동화, 그리고 인간 본성의 개입까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바뀌고 있다. 구글은 정보를 배분하고, 우버는 수요와 공급을 매칭하며, 아마존은 소비를 예측한다. 플랫폼은 실시간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알고리즘이 판단하며, 시스템이 실행한다. 인간 개입은 최소화된다. 랑게가 상상했던 세계가 아닐까? 다만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들고 있을 뿐이다.
플랫폼은 이미 민간 중앙계획 경제다. 지역적 지식은 더 이상 지역적이지 않다. 모든 정보는 중앙 서버로 모이고, 모델이 학습하며, 추천이 내려진다. 하이에크가 불가능하다고 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국가는 실패했지만, 플랫폼은 성공했다.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편리함에 환호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시장이냐 계획이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플랫폼은 이미 둘을 결합했다. 시장의 탈을 쓴 계획이고, 자본주의 형식을 빌린 중앙 조정이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체제가 아니라 통제권이다.
누가 알고리즘을 만드는가? 지금은 소수의 엔지니어가 결정한다. 모델의 목적함수는 누가 정하는가?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정한다. 추천과 배제는 누가 감독하는가? 사실상 아무도 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공공재인가, 사유재인가? 법적으로는 애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 자산이다. 시민은 AI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
과거 중앙계획이 실패한 이유는 권력 집중과 시민 배제였다. 지금 플랫폼은 효율적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차이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 명령이 아니라 추천이라는 점뿐이다. 그래서 불편함이 덜하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계산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시장과 계획의 대립은 끝나가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계산 권력을 공동체가 통제할 수 있느냐다. 현실적인 대안은 공동체 기반의 다층적 통제다. 알고리즘 작동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공개, 데이터 사용에 대한 시민 대표 참여, 특정 플랫폼의 독점이 사회적 효율을 해칠 경우 자동으로 발동되는 분산 규칙 같은 장치들이 그것이다. 소비자 협동조합형 데이터 관리, 공공 목적 API 개방, 지역 단위 실험적 규제도 포함될 수 있다.
이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도 아니고, 완전한 자유시장도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계획 능력을 사회가 공유하되, 그 방향과 한계는 공동체가 합의하는 구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규칙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어떤 가치 아래 두느냐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