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 사고의 지형을 바꾸는 지금, 리더십의 의미도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카리스마와 결단력으로 대표되던 리더십은 힘을 잃고, AI가 리더의 직관을 데이터로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과 기능의 통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연구와 개발은 제품을 만들지만 마케팅과 영업은 다른 언어로 말한다. 고객 서비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지만 경영관리부서는 숫자로만 판단한다. 기술 부서는 완벽한 시스템을 원하고, 사업 부서는 빠른 출시를 원한다. 각자의 논리는 옳지만 서로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면 실패한다. 실제로 IBM 조사에 따르면 AI 프로젝트의 75%가 부서 간 협업 부족으로 실패했다.
이런 시대에 안창호 선생의 리더십이 떠오른다. 그는 권력 대신 통합을, 명령 대신 신뢰를, 무엇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한 리더였다.
1919년 독립운동 진영은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상해, 노령, 한성 등 임시정부가 세 개나 존재했다. 도산께서는 '대공주의(大公主義)',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신으로 이를 통합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안한 '대통령' 자리를 단호히 거절하고 '노동국 총판', 지금으로 치면 차관 정도의 지위를 택했다. "누군가는 아래에서 일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권력보다 화합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통합의 원리는 현대 조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의 모범 사례로 알려진 싱가포르 DBS 은행의 '2-in-a-box' 모델이 좋은 예다. 33개 플랫폼마다 비즈니스 리더와 IT 리더가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여 사업과 기술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모든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Single Source of Truth' 체계를 구축했다. 이 두 가지를 적용한 결과, AI 프로젝트 개발 기간이 15개월에서 3개월 이하로 줄어들었다.
도산의 통합 저력은 '공동체의 가치'에서 나왔다. 그는 당시 한국 사회를 '무정(無情)한 사회'로 진단했다. 서로 의심하고 싸우는 무정함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본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의돈수(情誼敦修)'를 강조했다. 서로 정을 나누는 것도 지속적으로 배우고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 노력으로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물질적인 의뢰를 말라. 자유를 침범치 말라"며 일방적 희생이나 도덕적 해이를 경계했다.
오늘날 AI 시대에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기술 부서는 사업의 현실을 이해해야 하고, 사업 부서는 기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자세, 이것이 ‘정의돈수’가 던지는 메시지다.
통합 다음엔 윤리다. 도산께서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일제 심문에서 감형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어찌 일국의 지도자가 자기 편안만 구하자고 거짓말을 하겠나"라고 답했다. 편향된 데이터로 학습한 AI는 편향된 결과를 낳는다. 리더의 판단에 거짓이 섞이면 시스템 전체가 망가진다. 도산의 '죽어도 거짓 없는' 자세는 오늘날 AI 윤리의 핵심이다.
마지막은 교육이다. 도산께서는 총칼보다 책을 믿었다. "독립은 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나 하나를 건전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AI 기술이 사회를 바꾸어도, 그 기술을 바르게 쓸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면 혁신은 공허하다. 소수의 전문가만 아는 기술은 사회의 분열을 부축일 뿐이다.
도산께서는 말없이 가르친다. 리더란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람이라고. 분열된 조직을 통합하고, 그 통합을 거짓 없는 윤리로 채우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도록 교육하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기술이 자동으로 미래를 만들지 않는다. 기술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쓸지를 결정하는 리더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AI 시대의 진짜 리더는 알고리즘을 다루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모으고 윤리를 세우며 함께 배우고, 무엇보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자이다. 그 길을, 도산께서 이미 백 년 전에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