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을 산 할머니가 모르는 것

by 시온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고 절대 다투지 않는다."

최근 116번째 생일을 맞은 세계 최고령자, 영국의 에델 캐터햄 할머니가 밝힌 장수의 비결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는 가슴 아픈 순간들에서도 그녀가 지켜온 삶의 철칙. 그것은 놀랍게도 슈퍼 푸드도, 요가도, 명상도 아닌 '싸우지 않기'였다.

이 단순한 비결은 분명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 속 논쟁에 시달리고, 회사에서는 동료와 갈등하며, 집에서는 가족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현대인들에게 賢者의 金言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질문도 던진다.

정말 다투지 않고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직장에서 후배가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을 때, 버스에서 노인이 모욕을 당할 때,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가 악성 댓글에 시달릴 때. 이런 순간에도 '다투지 않기'를 실천해야 할까?

갈등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자존심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를 위한 싸움이다.

첫 번째는 분명 피해야 한다. "네가 먼저 그랬잖아", "내 말이 맞다니까"로 시작되는 감정의 소모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터햄 할머니가 피하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갈등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불의 앞에서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공범이다.

역사 속 많은 사상가들도 이 딜레마를 고민해왔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감옥에 갇힌 채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되,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용기를 내라"고 가르쳤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며 옳은 일 앞에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가장 충격적인 통찰은 한나 아렌트가 남겼다. 그녀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정에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그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갈등을 피하며,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었다. 아렌트의 메시지는 단순한 순응이나 무사안일이 오히려 악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캐터햄 할머니의 '다투지 않기'와 아렌트의 '생각하며 맞서기' 사이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균형이다. 무조건적인 회피도, 무작정한 대립도 아닌, 지혜로운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 기준점이 바로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다. 이는 단순히 소음이 없는 고요가 아니라, 정의가 숨 쉬는 평화를 의미한다. 개인의 내적 평안과 사회적 책임이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선 사소한 일들은 흘려 보낼 필요가 있다. 커피숍에서 직원이 주문을 잘못 받았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온라인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은 결국 내 에너지만 축내는 일이다. 이런 갈등들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진짜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회사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가 내려왔을 때, 아이가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할 때, 이웃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떨까? 이런 순간에 침묵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방관이고, 때로는 공범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맞서는 방식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먹다짐보다는 법적 절차를, 감정적 폭발보다는 차분한 대화를, 혼자만의 분노보다는 동료들과의 연대를 택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어떨까?"라고 접근한다면 갈등이 건설적인 대화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때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캐터햄 할머니의 철칙은 개인의 평안을 위해서는 분명 유효하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내적 평화를 지키는 데는 탁월한 전략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적 평온함이 사회적 책임을 면제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소란 없는 적막이 아니다. 정의가 살아 숨 쉬는 평화, 바로 그것이다. 개인의 평안과 사회의 정의가 잘 어우러지는 삶.

진정한 지혜로운 삶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다툼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정의로운 일에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삶. 그런 삶을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평화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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