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인들 사이에는 씁쓸한 농담이 있다. "일 잘하는 사람보다 윗사람 눈치 잘 보는 사람이 오래간다." 웃어넘기기엔 이 말이 현실을 너무 정확히 찌른다. 우리는 '성과 중심 사회'를 표방하지만, 실제 승진과 평가의 기준은 여전히 '관계 관리 능력'에 좌우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경제적 재앙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3년 조사는 충격적인 숫자를 보여준다. 직장인들은 업무 외 시간의 24%를 '비핵심 관계 관리'—보고서 치장하기, 불필요한 회식, 상사 감정 읽기—에 소모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115조 원의 생산성 손실이다. 맥킨지코리아는 더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조직 내 정치적 의사결정이 혁신 속도를 평균 27% 지연시키고, 직원 몰입도를 30% 이상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OECD도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비공식적 관계 중심 조직문화가 GDP의 최대 7%를 잠식한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은 최상위권인데 시간당 생산성은 하위권에 머무르는 이유다. 우리는 오래 일하지만,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실제 가치 창출이 아닌 '보여주기'와 '관계 관리'에 쏟아붓고 있다.
이런 문화가 지속되는 핵심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 내 보상 체계가 여전히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상사의 판단이 절대적일 때, 사람들은 능력 개발보다 '평판 관리'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서튼은 저서 《당신 회사에 나쁜 놈은 없는가》에서 이를 "조직 내 독성"이라 불렀다. 무능한 상사를 피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 정치적 발언을 피하려 침묵하는 회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이메일 CC의 증식—이 모든 것이 누적되면 조직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더 위험한 것은 '말만 잘하는 약장수'가 실력자로 둔갑하는 현상이다. 프레젠테이션은 화려하지만 실행은 엉망인 사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포장하는 데 능한 사람이 승진한다. 이들은 실패를 숨기는 기술, 성과를 과장하는 화법, 책임을 분산시키는 전략에 탁월하다. 결과적으로 조직 내에서는 '보고 잘하기'가 '일 잘하기'를 압도한다. 실제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보다, 회의실에서 말 잘하는 사람이 주목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진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인지적 낭비(cognitive waste)"라 명명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에 뇌를 소진하는 사회, 바로 그것이 아부 사회의 본질이다. 그 결과 '문제 해결형 인재'보다 '문제 회피형 인재'가 살아남는다.
대조적으로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철저히 '무엇을 했는가'에 집중한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문화 덱(Culture Deck)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뛰어난 동료들과 일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치가 아닌 성과로 말하라." 구글의 OKR(목표와 핵심 결과) 시스템은 누구나 동료의 목표와 달성도를 볼 수 있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상사의 주관이 아닌, 데이터와 결과가 평가의 중심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말만 잘하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 실제 성과가 모두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성과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평가받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평가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누가, 무엇을, 왜 평가받는지가 명확할 때 정치는 설 자리를 잃는다. 동시에 데이터 기반 인사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 지표를 우선할 수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적 안전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몰입한다. 그리고 그 몰입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동력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조직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부 문화는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니 보신이 우선이 되고, 보신을 위해서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아부 사회'는 단지 불편한 도덕적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창의력과 경제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질병이다. 그리고 그 치료제는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공정한 룰의 회복이다.
누가 더 잘 보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했느냐가 중요한 사회. 상사의 눈치를 보는 대신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조직. 그 단순한 상식이 경제를 살리고, 사람을 살릴 것이다. 아부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실력이 경쟁력이 되는 사회로. 그 전환의 시작은 바로 지금, 각자의 조직에서 "이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