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승을 dis할 수 있는가?

by 시온

17세기 이전까지 지식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지 않다. 동양도, 서양도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17세기를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서양에서는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으로 이어지는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의 폭발이 일어났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양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주자학의 주석과 해석이 학문의 중심이었다. 새로운 이론 체계가 탄생하지 않았다. "왜 중국에는 뉴턴이 없었는가?" 이 질문은 100년 넘게 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지능의 차이가 아니었다. 진짜 차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사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11세기 기욤은 자기 스승 로스켈리누스의 유명론을 반박했고, 다시 12세기 아벨라르는 그 기욤을 공격했다. 스승을 반박했지만 학문 공동체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박이 새로운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런 반박의 전통이 수백 년 축적되면서 서양에는 독특한 지식 생산 방식이 자리 잡았다. A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하면 B 이론이 탄생하는 구조였다. 17세기 과학혁명은 이 전통이 자연 탐구와 만나 폭발한 결과였다.

동양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공자, 노자, 석가는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었다. 주자는 공자를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더 깊이 이해하려 했을 뿐이다. 성인을 부정하는 것은 학문적 진전이 아니라 도덕적 타락으로 여겨졌다. 조선에서 성리학의 근본을 흔드는 주장을 펼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학문 공동체에서 매장당했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성인의 뜻을 더 깊이 해석하면 더 높은 학자가 되었다. 주석을 통한 깊이는 있었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17세기 서양이 치고 나간 이유는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수백 년간 쌓인 반박의 전통이 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폭발적 결과를 낸 것이었다.


문제는 반대의 비용이었다. 서양에서는 스승이나 권위자를 반박하면 비난받을 수 있었지만 박해 받지는 않았다. 동양에서는 성인을 부정하면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 비판이 제도적으로 보호되는가, 윤리적으로 금지되는가. 이 작은 차이가 과학과 철학의 운명을 갈랐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누군가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평가와 평판이 중요해질수록, 데이터와 성과가 강조될수록, 다른 목소리는 리스크가 된다.


AI는 이 경향을 더 강화한다. AI는 평균값, 다수 의견, 과거 데이터에 맞는 답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만 보고, 수치가 말하는 것만 듣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부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다. 그를 죽이지 않는 학문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벨라르가 스승을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를 파문하지 않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을 전진시키는 것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반대해도 살아남는 구조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네 말이 틀려도 일단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박할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도 새로운 개념을 던지지 않는다. 동양의 고전이 그랬듯 지혜는 쌓을지 몰라도 새로운 세계는 만들지 못한다. 때로는 불편한 말이 기존 질서를 흔들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우리 조직은, 우리 사회는, 반박할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가? 이것이 AI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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