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일장을 순례하는 이유

by 시온

1980년대 말, 홍성유 소설가가 조선일보에 일주일에 한 번 소개하는 식당 코너를 스크랩해 노트에 붙여 놓고 다녔다. 주말이나 출장, 여행을 갈 때면 그 노트를 펼쳐보고 스크랩해둔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유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보았는데, 요즘은 식당 소개에 대한 글, 사진, 영상이 주류 컨텐츠가 되었고, 평점과 소개 글의 숫자가 식당의 가치를 대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유명하신 한 요리 선생님과의 오래된 인연이 떠오른다. 그분은 요리 솜씨로만 보자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을 진짜 인상 깊게 만든 것은 칼질이나 불 조절이 아니라, 요리 이전의 시간이었다. 그분은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재료를 찾는 데 쓴다. 전국의 5일장을 다니며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제철이 지난 재료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처음 뵀을 때 5일장에서 구입한 밤과 호두를 맛 보라고 나눠 주셨는데, 그냥 밤이나 호두가 아니었다. 그분은 이 밤은 어느 해에 왜 작아지는지, 이 호두는 어느 지역에서 어느 시기에 맛이 급격히 떨어지는지, 그런 미묘한 차이를 몸으로 아는 분이었다. 좋은 재료를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해 그 재료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분의 제자가 말했다. "요리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어떤 식재료를 어디서, 누구한테 구입해야 최상급을 살 수 있는지 배우는 게 더 좋아요." 단순히 좋은 재료를 고르는 법이 아니라, 재료 자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더 흥미롭다. 누가 먼저 묻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예전에 외국인 접대로 유명한 고급 식당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릇과 분위기는 근사했지만 음식은 어딘가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의견을 묻자, 그분은 웃으며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라고만 하셨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짜 전문가는 비교하거나 평가하는 부분에서 말을 아낀다.


이 태도가 나에게는 요리의 본질처럼 느껴졌다. 좋은 재료를 비싼 값에 써서 만든 음식이 맛이 없으면, 그건 실수라기보다 반칙에 가깝다. 반대로 대중적인 재료로 꾸준히 맛을 유지하는 음식은, 그 자체로 실력이다. 호텔 요리사 출신이 한다고 자랑하는 대중 식당이 꽤 있는데, 내 경험으로는 한두 번 예외를 빼고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대중적인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든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짜 실력은 비싼 재료가 아닌 제대로 된 재료를 찾아내고, 이것으로 깊이를 만들어낼 때 드러난다. 재료에 집요한 사람일수록 평범하게 보이는 재료로도 깊은 맛을 낸다. 비싼 재료 쓰는 데 익숙한 게 아니라, 재료 자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5일장을 순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맛집'이라는 말이 고급 음식점보다는 대중 음식점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건이 제한된 상황에서 맛으로 승부를 보는 곳, 그곳에서야 비로소 평가가 의미를 갖는다.


요리는 결국 기본기의 문제다. 기본기란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 그리고 불필요한 말을 삼키는 절제가 모두 포함된다. 재료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요리에 대해 말이 적다.


그래서 어떤 음식 앞에서는 "더 이상의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설명도, 비교도 필요 없는 순간이다. 요리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자기 역할을 다하고, 먹는 사람은 말이 줄어든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요리는 바로 그런 상태일 것이다. 맛을 자랑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이력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않는 풍경.


쉐프라는 명함을 내밀려면 식재료 공부부터 해야 한다. 화려한 그릇과 비싼 재료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것. 그게 진짜 요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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