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코와 알토스 랩스의 더딘 걸음이 허락한 시간

by 시온

칼리코(Calico)는 2013년 알파벳 산하에 설립된 노화 연구 기업이다. 노화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관련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였다. 알토스 랩스(Altos Labs)는 2022년 설립된 바이오텍으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리프로그래밍 연구에 3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두 회사 모두 장수 기술의 최전선에 있다고 평가받았다.


최근 두 회사의 근황을 찾아보다가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칼리코는 2025년 말에 11년간 이어온 제약사 애브비(AbbVie)와의 협력이 종료되며 연구진을 대거 정리했고, 알토스 랩스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아직 임상 단계에도 제대로 진입하지 못했다. 원래 기대했던 노화 극복의 비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순수하게 과학의 관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기술이 성공하는 순간, 그것은 의학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희귀병 치료제는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같은 병에 같은 치료제가 있어도 누구는 완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기부 계좌를 만든다. 장수 기술이 상용화되면 초기 적용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권력층일 가능성이 높다. 보험 적용은 늦어질 것이고, 가격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문제는 장수 기술이 희귀병 치료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희귀병은 특정 환자가 대상이지만 노화는 모든 사람의 일이다. 대상은 전 인류인데 실제 수혜자는 극소수가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빈부 격차는 이미 존재하는 문제다. 소득, 학력, 직업, 거주 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다르고, 건강수명의 차이는 더 크다. 여기에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초고가의 장수 기술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은 90세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어떤 사람은 60세에 병으로 밀려나는데,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처럼 보이게 될 수 있다. 부의 격차에 수명 격차까지 겹치면,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선다. 시간 자체가 불평등해지는 것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새로운 시작’에는 목숨을 걸고 공룡 DNA를 얻은 후 제약사에 넘길지 무료로 공개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제약사에 넘기면 거액을 받지만 부자들만 혜택을 볼 초고가 심장병 치료제가 나온다. 그 딜레마는 극적 장치지만 우리가 곧 마주할 수도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 기술에 대한 접근권은 중립적이지 않다.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 재벌기업의 오너가 경제적 약자 지원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를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선의보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빈부격차가 계속 커지면 체계가 붕괴되고 자신의 부도 위험해진다는 판단.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현실을 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역사를 보면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때 사회는 혁명이든 반란이든 폭력을 수반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고,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많은 대가를 치르게 했다.


賤民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있고 善民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천민자본주의는 단기 이익만 좇다가 결국 시장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선민자본주의는 체계 유지를 위해 재분배를 일종의 안정화 비용으로 본다. 시장이 자원을 배분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효율적인 도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주의’와 ‘시장만능주의’는 다르다. 시장은 공공재나 외부효과, 독점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칼리코와 알토스 랩스가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역설적으로 사회가 숙고할 여유를 준 셈일 수도 있다. 기술이 완성되기 전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누가 먼저 이 기술에 접근하게 될까? 공공의료 체계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수명 연장은 권리인가 특권인가? 수명이 늘어난 사회의 공정함은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성과가 나온 후가 아니라 그 전에 논의되면 좋겠지만, 지금까지는 늘 반대였다.


이 문제를 기술에 대한 거부나 반자본주의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시장과 기술이 건강하게 작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고민이다. 장수 기술의 진짜 위험은 불멸 그 자체가 아니라 불균형일 것이다. 평균 수명이 골고루 늘어나는 게 아니라 수명의 편차가 크게 벌어지는 사회.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연대의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술의 발전은 바람직하다. 다만 그 발전이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무너뜨리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조정할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던져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국 5일장을 순례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