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시장 분석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블랙록 같은 초대형 자산운용사의 움직임을 꼽는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월가의 거대 자본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고, 이제 이들의 리밸런싱 한 번에 시장 전체가 요동친다. 가격이 오르면 성공이라 환호하지만, 이 풍경 앞에서 묘한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애초에 가상화폐는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은행이 필요 없는 화폐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08년 금융위기의 폐허 위에서였다. 거대 자본과 중앙은행의 오만이 평범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렸던 그때, 블록체인은 '중앙 없는 신뢰'라는 약속을 내걸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자유, 자산의 민주화, 투명한 네트워크, 우리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모순을 해결할 열쇠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떤가? 탈중앙화를 기치로 내건 가상화폐가 오히려 거대 자본의 논리에 완벽하게 포섭되어, 이제는 그들의 포트폴리오 한 줄을 장식하는 고수익 상품이 되었다. 기관의 자금이 유입되어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분석들이 쏟아지지만, 본래의 철학은 어디로 갔는가? 해방의 도구가 지배의 도구로 뒤바뀐 이 기묘한 순간,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이 떠오른다.
계몽주의는 중세의 미신과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려 했다. 하지만 이성은 곧 도구적 합리성으로 변질되었고,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대신 스스로가 만든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이 되었다. 사슬을 끊기 위해 휘두른 이성이 다시 인간을 묶는 더 정교한 쇠사슬이 된 것이다.
가상화폐의 운명도 이와 닮아 있다. 수학적 알고리즘이라는 이성은 중앙은행의 전횡을 타파하려 했으나, 그 알고리즘이 닿은 종착지는 결국 자본의 초집중이었다. 분산된 장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현실의 힘은 다시 소수에게로 수렴되었다. 블록체인(Block-chain)이라는 명칭 자체가 아이러니다. 사슬을 끊기 위해 만든 사슬이, 우리를 묶는 더 강력한 쇠사슬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 안타까운 변증법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혹자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자본의 중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혁명적 기술도 결국 자본주의의 하위 체계로 흡수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방관은, 기술이 가진 윤리적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꿈꿨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이 비감은, 아직 포기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통째로 부정하는 방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내부에 자본의 논리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드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먼저, 가상화폐의 성격을 투기적 자산과 사회적 권리로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가격이 오르내리는 코인은 시장의 논리에 두더라도, 지역 공동체나 복지를 위해 발행되는 디지털 토큰은 투기판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세워야 한다. 참여가 곧 투기가 되는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공공의 선의는 언제나 거대 자본의 유동성에 잡아 먹힌다.
또한 자본의 속도에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 알고리즘과 초단타 매매로 무장한 거대 자본이 찰나의 순간에 시장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에는 시간의 지연이나 보유 기간의 강제 같은 제도적 재갈을 물려야 한다. 이것은 반자본주의가 아니다.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속도의 독점을 규제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개입이다.
마지막으로, 돈이 권력을 낳는 지분주의 구조를 깨야 한다. 코인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시스템의 규칙까지 정하게 두는 것은 디지털 봉건주의로의 퇴보일 뿐이다. 블록체인의 투명한 기록을 활용해 실제 사회적 기여를 한 이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는 방식, 즉 자본이 아닌 인간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가상화폐의 변증법은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낙관도, 자본에 먹혔으니 끝났다는 비관도 모두 방관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다시금 질문해야 한다. 이 사슬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슬 끝에 묶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의 탐욕인가?
계몽이 다시 억압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만든 디지털 사슬이 다시는 우리를 억압하는 쇠사슬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술의 심장에 윤리라는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치려던 순수한 열망이 다시 자본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오늘, 우리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첫 번째 밧줄을 다시 꼬아야 한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협력이라는 이름의 밧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