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사고의 70%는 착륙 때 일어난다고 한다. 등산 사고 역시 하산길에 집중된다. 올라갈 때는 긴장하고 집중하지만, 내려올 때는 안도감에 방심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을 찍은 순간 등산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때부터 진짜 등산이 시작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등산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입사와 승진에는 모두가 축하를 보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은 그 자리를 내려놓을 때다. 은퇴, 퇴사, 사직.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품격을 드러낸다. 오르막의 화려함보다 내리막의 담담함이 훨씬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귀한 덕목이다.
그런데 이 내려옴의 덕목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봐왔다. 인사 발령이 났는데도 방을 비우지 않겠다고 버티는 임원, 퇴직 날짜를 받아놓고는 일은 하지 않은 채 전국을 유람하는 사람, 마지막 날까지 법인카드를 평상시보다 훨씬 더 쓰는 사람. 이들의 모습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 못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올라갈 때 쌓았던 신뢰와 존경이 마지막 며칠의 추태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내려오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는 기술만 배웠지, 적절한 때에 품위 있게 물러나는 지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은퇴 이후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맨다. 30년, 40년을 일에 몰두하다가 갑자기 텅 빈 시간과 마주하면 막막함이 밀려온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고, 전화기는 조용하며, 익숙했던 회의실 대신 덜 익숙한 거실이 기다린다.
하지만 내려온다는 것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무대의 시작이다. 올라갈 때는 오로지 정상만 바라보느라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발 밑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산 아래 펼쳐진 마을의 풍경.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올라갈 적에는 보지 못한 그 꽃"이 내려올 때 비로소 눈에 담긴다.
은퇴 후의 삶도 그렇다. 직함과 명함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회사를 위해 쓰던 시간을 이제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취미, 소홀했던 가족과의 시간, 관심만 있었던 공부와 봉사. 직장에서의 내려옴은 인생에서의 또 다른 오름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에 집중할 때 새로운 길이 보인다.
노자는 "功成身退 天之道(공성신퇴 천지도)"라고 했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는 뜻이다. 적절한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이라는 가르침이다. 만개한 꽃이 때가 되면 지는 것처럼,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것처럼, 채워지면 비우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슬퍼하지 않듯, 인생의 계절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단순히 물러남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물러난 선배가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고, 바쁘게 살던 사람이 이웃의 아픔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 내려옴은 곧 타인을 향한 눈높이를 낮추는 일이기도 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시선이 옆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뀔 때, 비로소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내려오느냐다. 조직을 떠날 때, 관계를 정리할 때, 계약을 마무리할 때 보여주는 태도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원망과 미련을 남기지 않고,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료의 미학이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품격 있는 마무리가 더 오래 기억된다.
등산을 하려면 반드시 하산을 해야 한다. 정상에서 사는 사람은 없다. 오르는 즐거움도 좋지만, 내려오는 품격은 더욱 빛난다. 오르樂은 좋다, 내리樂은 더욱 좋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