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영상 보도를 보았는데,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파트 주차장 통로를 누군가 고의로 막아 차들이 오갈 수 없게 만들었다. 차 주인들은 출근도 못 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했지만 소용없었고, 지자체에 신고해도 "사유지라 저희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법을 좀 안다는 이웃이 조언했다. "차에 침을 뱉으세요. 그럼 차주가 어쩔 수 없이 차를 이동시킬 겁니다." 침을 뱉는다고 재물손괴죄에 해당되지 않고, 주차 민폐꾼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정말로 침을 뱉었더니 민폐꾼이 부랴부랴 나타나 차를 빼더라는 이야기다.
이게 최근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법치국가에서 시민이 침을 뱉어야만 자기 차를 쓸 수 있다니. 웃기는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보도가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주차장 민폐 사건은 끊임없이 뉴스에 나왔다. 인천 송도의 캠리 사건, 각종 아파트 단지의 주차 분쟁까지. 그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댓글창은 성난 댓글들로 뒤덮였으며, 언론은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여전히 공권력은 "사유지라서요"라고 말하며 손을 놓는다.
문제는 민폐꾼 개인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이 나쁜 건 맞지만, 한두 명의 몰상식한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여기서는 뭘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다. 공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아니면 하기 싫은 걸까?
법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고, 재물손괴죄도 가능하며, 일반교통방해죄라는 것도 있다고. 실제로 몇몇 사건에서는 이런 죄목으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그런데 왜 현장의 경찰이나 공무원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할까?
귀찮기 때문일 것이다. 민폐꾼과 실랑이를 벌이고, 고소 고발 절차를 밟은 후에 혹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까봐 겁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적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일에 시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유지"라는 방패막이를 내세운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서이다.
공무원 규정에는 '적극 행정'이라는 원칙이 있다. 법령이 불분명해도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거다. 주차장 통로를 막아 수십 명의 주민이 고통받는 상황이 공익 침해가 아니면 뭔가? 하지만 적극 행정은 그저 문서 속 글자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소극 행정'과 '책임 회피'만 난무한다.
미국에서는 사유지에 무단 주차해 다른 이용자에게 불편을 주는 차량에 대해, 관리 주체가 민간 견인 업체를 불러 차량을 이동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차주는 견인료와 보관료를 부담해야 하며, 관련 절차와 요금은 주·카운티별 법 규제를 따른다.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사유지 주차 위반 차량에 대해 민간 주차 관리 체계가 작동해,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즉각적인 이동 조치나 비용 청구가 이루어진다. 이들 나라에서는 사유지든 공공도로든 남의 권리를 침해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원칙이 명확하다.
우리는? 차 주인의 재산권만 보호한다. 견인하다가 차가 긁히면 어쩌나, 소송 걸면 어쩌나 걱정만 한다. 정작 매일 출근길이 막혀 지각하는 사람, 택시나 화물차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차를 못 쓰는 사람들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언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영상에 '주차 빌런'이라는 표현이 자막으로 나온다. 요즘 모든 기사가 그렇다. 층간소음 빌런, 배달 빌런, 온갖 빌런이 넘쳐난다. 빌런은 영화 속 악당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마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말이다."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굳이 영어로 불러야 하나? 우리말에 민폐꾼, 민폐족이라는 표현이 있다. 악당이라는 단어도 있다. 그런데 왜 '빌런'을 쓸까? 그게 더 세련돼 보여서? 더 가벼워 보여서?
문제는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다. 빌런은 어딘가 캐릭터 같고, 픽션 같고, 비현실적이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론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마치 재미있는 콘텐츠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신박한 방법으로 빌런을 혼내줬다'는 식의 기사를 쓰면서 조회수만 챙긴다. 정작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지, 시스템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렇게 언론은 문제를 가볍게 만들고, 대중은 잠깐의 통쾌함만 느끼고 지나간다.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침을 뱉어야 차를 뺄 수 있는 사회가 정상일까? 시민이 스스로 민폐꾼과 싸워야 하는 나라가 법치국가일까? 공무원들은 월급을 왜 받는 걸까?
민폐꾼 한 명을 비난하는 건 쉽다. 그런데 그렇게 해봤자 또 다른 민폐꾼이 나타난다. 진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이런 일을 방치하는 사람들이다. 법을 만들어놓고 쓰지 않는 경찰, 적극 행정을 외치면서 실천하지 않는 공무원, 문제를 가볍게 소비하는 언론 등. 이들이 바뀌지 않는 한 민폐꾼은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가 정말 바꿔야 하는 건 민폐꾼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을 방치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일 책임은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에게 있다. 시민이 침을 뱉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