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by 시온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때였다. 시험을 위하여 '베이컨의 경험론, 데카르트의 합리론'을 그 차이가 뭔지도 모른 채 밑줄을 그으며 외웠다. 그러다 언젠가 서점에서 우연히 『새로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라는 얇은 책을 발견했다. 베이컨이 철학 논문만 쓴 게 아니라 소설도 남겼다는 게 신기해서 집어 들었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다 멈칫했다. 이건 철학책이 아니었다. 400년 전에 쓰인 기술 문명의 설계도였다.


1627년에 출간된 이 짧은 소설에는 '벤살렘(Bensalem)'이라는 섬나라가 등장한다. 표류하던 선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채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 문명의 중심에 '솔로몬의 집(Salomon’s House)'이라는 국가 연구기관이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체계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베이컨이 묘사한 내용을 읽다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수중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치(잠수함), 공중을 나는 기계(비행기), 소리를 멀리 전달하는 도구(통신장비), 동식물의 형질을 개량하는 기술(유전자 편집), 날씨를 예측하고 조절하는 방법(기상 기술). 17세기 초에 쓰인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기술들이 그대로 나열되어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기술 개발이 천재 한 명의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철저히 조직화된 시스템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솔로몬의 집에는 외국을 돌며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 실험을 설계하는 사람,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사람이 각각 역할을 나눠 일한다. 현대의 국책연구소나 대기업 R&D 센터의 조직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플라톤도 『국가』에서 이상향을 그렸지만, 그의 유토피아는 철학자 왕이 지혜롭게 다스리는 도덕적 완성의 세계였다. 반면 베이컨의 벤살렘은 실용적이다. 여기서 국가의 목적은 명확하다. 자연을 정복하고, 그 지식을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통치자의 덕목보다 과학자의 발견이, 철학적 사유보다 실험 데이터가 중요한 세계다.


요즘 AI 전환 시대를 맞아 각국이 기술 패권 경쟁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베이컨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들도 감당하기 벅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분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양자컴퓨팅, 송전 시설 업그레이드, 국가 차원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럴 때 베이컨이 제시한 모델이 유효해진다. 민간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때, 국가가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다만 여기서 국가는 관료적이고 느린 조직이 아니라, 빠르게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영리한 정부'여야 한다.


베이컨의 통찰이 지금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미래를 막연히 꿈꾼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어떤 조직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축적해야 하는지, 누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상세히 그렸다. 그리고 그 설계도대로 인류는 지난 400년을 걸어왔다. 영국 왕립학회가 그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고, 오늘날 전 세계 국책연구소들이 그의 청사진 위에 서 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AI 혁명도 마찬가지다. 개별 기업의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한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AI 고속도로, 전력 인프라, 인재 양성 시스템. 이런 것들은 한 기업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시장에만 맡기기엔 너무 중요하다. 베이컨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식과 기술은 인류 전체의 삶을 향상시키는 도구이며, 그것을 만드는 일에는 사회 전체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철학자로 나오는 그 이름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들린다. 베이컨은 미래를 예측한 게 아니라, 미래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설계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가 그린 도면의 다음 장을 펼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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