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기 전 어린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에서 재벌가 자제 7명이 모여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언론은 이들을 '7공자'라고 불렀다. 고급 술집을 드나들고 외화를 유출하며 해외에서 흥청망청 놀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시절이었으니 그 충격은 컸다. 하지만 그때 내가 받은 교훈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많아도 제대로 놀 줄 모르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이상했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사람들이 왜 하필 그런 식으로 노는 걸까? 세상에는 배울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데 말이다.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잘 노는 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키케로가 말한 'Otium cum dignitate', 품격 있는 여가라는 문구를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아하, 이거구나!’라고 생각했다.
키케로가 말한 여가는 그냥 쉬면서 육체적 피로를 푸는 것도 포함되지만,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가꾸고 채우는 시간도 있었다. 반면 7공자들의 여가는 어떠했는가? 그들의 시간은 스스로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으로 공허함을 메우는 것이었다. 술, 도박과 유흥. 이런 것들은 뇌에 강한 자극을 주지만 정작 그 사람의 내면은 텅 비어 있게 만든다.
최근에도 최상류층 젊은이들의 마약 투약 소식이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당시 학생들이 외쳤던 "지루함은 반혁명이다(L’ennui est contre-révolutionnaire)"라는 구호가 떠오르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지루함은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한 상태가 아니다. 체제가 정해준 대로 살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삶을 의미한다. 자본이 만들어준 상품을 소비하기만 하고,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콘텐츠를 받아먹기만 하는 상태 말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 7공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탈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부모가 육아에 지쳐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순간, 그 아이는 수동적 쾌락의 세계로 빠져든다. 유튜브 쇼츠를 끊임없이 넘기고, 게임 속에서 즉각적인 보상을 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아이가 조용히 잘 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놀이 능력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진짜 놀이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블록으로 집을 짓고, 친구들과 규칙을 정해가며 술래잡기를 하고, 공을 차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를 입는 것. 이런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창조성을 배우고, 절제를 익히며, 좌절을 견디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린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재벌가 자제들이 일탈에 빠지는 것과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것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 외부의 강한 자극 없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결국엔 법과 윤리의 선을 넘게 된다.
유럽의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 자녀들에게 악기 하나, 운동 하나를 반드시 가르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법,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법, 절제와 몰입을 통해 기쁨을 얻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외부의 자극적인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무조건 뺏는 것이 답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고, 악기로 서툰 소리를 내보고, 친구들과 뛰어놀다 땀을 흘려보는 것. 이런 경험들이 쌓여야 비로소 그 아이는 품격 있는 여가를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
7공자 사건을 접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 돈과 시간이 있어도 제대로 쓸 줄 모르면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잘 노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중 하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