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곧 국력이라는 말은 이제 수사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한 소식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미·중 양국이 얼마나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틈바구니에서 성장의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경고음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이들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현재 데이터를 토지나 자본과 같은 실질적인 '생산요소'로 선포하고, 이를 기업의 자산으로 공식화하는 실험에 한창이다. 2024년부터 중국 기업들은 데이터를 재무상태표상 무형자산으로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차이나유니콤 같은 대기업은 약 430억 원에 달하는 데이터 자산을 신고하기도 했다. 중국이 이토록 서둘러 데이터를 장부 안에 숫자로 써넣는 이면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막대한 부채라는 구렁텅이를 안고 있는 지방정부와 기업들이 이 데이터 자산을 담보로 활용해 자금 흐름을 개선하려는 시도다. 국가가 나서서 보이지 않던 정보에 값을 매기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자본 유동성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반면 미국은 겉보기에 이 문제에 무심해 보인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이 시청 습관을 묻는 설문지에 단돈 2달러를 동봉하는 사례가 보여주듯, 일상 속에서 개인의 데이터는 여전히 소소한 사례금 정도의 가치로 인식되곤 한다. 미국 회계기준 아래에서도 데이터 취득을 위한 지출은 대개 자산이 아닌 당기의 비용으로 계상된다. 하지만 이는 가치를 몰라서라기보다 그 가치를 장부 밖 그늘 속에 둠으로써 얻는 실리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들은 데이터를 비용으로 처리함으로써 법인세 부담을 줄이고, 외형적 자산 규모 확장에 따른 반독점 규제의 명분을 약화시키며 독점적인 수익 구조를 공고히 하는 노림수를 가동하고 있다. 중국이 데이터를 내세워 부채를 가리려 한다면, 미국은 데이터를 숨겨 독점적 이익을 보호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양국의 스탠스는 최근 대두된 '데이터 고갈'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더욱 교묘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된다. AI 학습에 쓰일 고품질의 인간 데이터가 바닥을 드러내고, AI가 만든 데이터를 다시 학습시켜 지능이 퇴화하는 '모델 붕괴'의 위험이 커질수록, 이미 확보된 데이터의 희소성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양국은 이 위기를 본인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는 방책으로 삼는다. 중국은 데이터의 품귀 현상을 근거로 자국 내 데이터 자산 가치를 부풀려 부채 위기 돌파의 지렛대로 정당화하려 할 것이고, 미국 빅테크들은 신규 진입자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고품질 데이터의 성벽을 더욱 높이 쌓아 장부 밖 독점적 권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은 AI를 국가 재도약을 위한 유력한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구가 줄고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상황에서, 1인당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AI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특수 데이터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은 유효한 전략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미·중이 벌이는 범용 데이터의 물량 공세에 휘말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만이 독보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버티컬 데이터의 심도와 밀도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축적된 우리의 자산은 도처에 널려 있다. 전 생애주기를 관통하는 의료 데이터의 정밀함과 제조 현장의 숙련된 노하우가 녹아든 공정 데이터는 물론이고, 특히 세계가 경탄하는 전자정부 시스템이 길어 올린 방대한 공공·행정 데이터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원군이다. 주민등록부터 토지, 세무, 사법에 이르기까지 국가 행정 전반이 유기적으로 디지털화된 한국의 데이터 생태계는, 인위적인 학습용 데이터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농축 리얼 데이터의 보고다.
이러한 원석들을 단순히 서버 속에 잠자게 두거나 개별 기관의 파편화된 정보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회계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데이터가 장부상의 숫자로 증명되어야 비로소 혁신을 위한 자본이 움직이고, 기술은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생산성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가치를 정교하게 읽어내어 이를 인구 절벽의 타격을 상쇄할 지능형 엔진의 동력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피크 코리아라는 거대한 중력을 이겨내고 한국 경제를 다시 한번 밀어 올리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장부 밖의 푼돈으로 방치되었던 우리의 기록들이 대한민국 재도약의 거대한 마중물이 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상승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