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은 한국을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사회로 분류했다. 이 진단의 핵심은 부패가 무질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치·관료·재벌·법조·언론으로 이어지는 상층 엘리트 집단 안에서 부패는 하나의 질서로 작동한다.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관계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 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관리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자에게 그어진 선을 넘지 않도록.
이 구조가 선택한 가장 세련된 도구는 시험이다. 동일한 시험지, 동일한 시간, 동일한 채점 기준. 형식은 더없이 공평해 보인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은 곧 패자의 변명이 된다. 그러나 시험 자체의 공정성과 시험에 도달하는 경로의 공정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준비에 필요한 시간과 정보,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 방향을 잡아줄 누군가의 존재. 이것들은 이미 계층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카르텔은 이 장치를 사랑한다. 폭력 없이 배제할 수 있고, 결과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돌릴 수 있으며, 탈락자들이 구조가 아니라 서로를 탓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패는 신분제가 된다. 카르텔 안에 있어야만 그 논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정직이 비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지는 사회, 내부 고발자가 도덕적 용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신자로 규정되는 사회. 이것이 질서화된 부패의 얼굴이다.
그런데 지금 이 엘리트 카르텔을 흔드는 거대한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지식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식은 오랫동안 희소한 것이었다. 특정 기관에 속하거나, 오랜 수련을 거치거나, 특정 시험을 통과해야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 희소성이 권위의 근거였고, 엘리트 카르텔은 바로 이 구조 위에 세워진 건물이다. 지식을 독점하는 자가 권력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이 그 독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인공지능은 그 붕괴를 완성하고 있다. AI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복잡한 법률 문서를 읽고, 의학 논문을 요약하고, 방대한 판례를 분석하는 일을 AI는 순식간에 해낸다.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암기하고 얼마나 빠르게 재현하는가, 즉 시험이 오랫동안 측정해온 바로 그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여기서 엘리트 카르텔의 시대착오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신성시하는 관문, 즉 한 번의 시험, 한 장의 자격증, 한 줄의 출신이 증명하려는 능력은 AI가 가장 손쉽게 대체하는 능력과 상당 부분 겹쳐 있다. 지식의 독점으로 권위를 유지해온 집단이, 지식의 독점이 불가능해진 시대에도 같은 방식으로 서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패의 문제이기 이전에 시대착오적 퇴행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거대한 네모는 모서리가 없다'고 했다.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거대한 변화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엘리트 카르텔은 한 번도 물러서 본 적이 없다. 자신들이 설계한 기준 안에서만 사고하다 보니, 그 기준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그들이 시대착오적인 이유다. 부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는데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환의 시대에 누가 나서야 하는가? 답은 지식인이다.
엘리트가 선발된 사람이라면, 지식인은 응답하는 사람이다.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아직 언어가 없을 때 그 방향을 말로 만들며, 권한이 없어도 설득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람.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능력이다. 공감하는 능력,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묻는 능력. 지식인은 AI가 가장 못하는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지식인에게는 이전 시대의 지식인이 갖지 못했던 디지털과 AI라는 무기가 있다. 카르텔이 지식의 희소성으로 권력을 유지했다면, 지식인은 지식의 개방성으로 그 권력에 맞설 수 있다. 감춰진 정보를 드러내고, 복잡한 구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며, 카르텔이 밀실에서 관리하던 것들을 광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디지털과 AI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연대를 가능하게 하며, 시대착오적인 구조의 민낯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다.
지식인의 소명은 여기에 있다. 시대착오적인 질서를 향해 침묵하지 않는 것. 카르텔의 언어가 아니라 다음 시대의 언어로 말하는 것. 디지털과 AI를 무기로 삼아,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여는 것. 엘리트 카르텔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다. 자신들의 방식이 더 이상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반복적으로, 설득력 있게 증명되는 것이다. 그 증명을 해내는 것이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