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차린 덤앤더머 (2/5와 3/5)

by 시온

2편 천사는 왜 통장을 내주었을까?


그를 아는 사람들은 A를 천사라고 부른다. 빈말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A와 C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A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고, C는 형편이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A는 C에게 베풀었다. 그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사회에 나온 뒤 A는 월급쟁이 생활도 하고 자기 사업도 하면서 나름의 여유를 갖추게 됐다. 노후를 대비한 자금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이미 짐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C의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C는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 명목으로 손을 벌렸다. 가족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고, 지인도 있었다. 받은 돈은 돌려주지 못했다. A에게도 왔다. A는 거절하지 못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C가 올 때마다 A는 내주었다. 노후 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C가 또 왔다. 이번에 A는 캐피탈 회사 문을 두드렸다. 고금리로 몇 천만 원을 빌려 C에게 건넸다. 차용증도, 계약서도 없었다. 그냥 주었다.


B가 나중에 A에게 물었다. 왜 그랬느냐고. 통장을 다 비우고, 그것도 모자라 고금리 대출까지 받아서 줬느냐고.


A의 답은 짧았다. "제가 손을 놓으면 그 친구는 끝이에요."


C의 마지막 보루가 자신이라고 했다. 자기가 버텨줘야 C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B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A는 결국 캐피탈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노후 자금은 이미 없다. 그런데도 A는 식당이 문을 열자 집에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출근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몸이 버텨주는 한.


선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A의 경우를 보면 그것은 논리가 아니다. C가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계산이 아니다. 그냥, 내 친구가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본능이다. 그 본능이 자신의 통장을 비우게 하고, 고금리 대출을 받게 하고, 새벽 출근을 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선의의 본능이 C에게 면죄부가 됐다는 것이다. A가 버텨주는 한, C는 책임을 미룰 수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 누군가 자기를 붙잡고 있으니까.


천사는 왜 통장을 내주었을까? 착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친구가 쓰러지는 것을 자신의 실패로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 곁에는, 언제나 그 마음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




3편 잃을 것이 없는 사람


B가 C를 처음 소개받은 건 지인을 통해서였다. 2∼3년 정도 지켜본 C는 성실했다. 겸손했다. 긍정적이었고, 주변을 배려할 줄 알았다. 충분히 지켜봤다고 판단했을 때, B는 비로소 C를 신뢰하기로 했다. 그리고 열심히 C를 도와줬다. B 앞에서의 C는 그런 사람이었다.


A 앞에서의 C는 달랐다. A는 C를 어릴 때부터 알았다. 천성이 게으르다는 것도,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것도, 자기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어릴 때부터 봐온 C의 민낯이었다. B는 식당을 시작하고 나서야 A를 처음 만났다. A는 식당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C에게 B를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몇 차례 부탁했었다. 그때마다 C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미뤘다. 바쁘다고, 때가 아니라고, 나중에 자리를 만들겠다고. 그 나중은 끝내 오지 않았고, A와 B가 처음 마주한 건 결국 식당 카운터 앞이었다. 함께 일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A를 통해 C의 민낯을 뒤늦게 전해 들은 B는 C가 왜 그토록 두 사람의 만남을 미뤄왔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C의 언어에는 특징이 있었다. '곧', '지금은', '정리만 되면', '큰 그림'. 이 네 가지 표현이 C의 문장 안에서 반복됐다. 투자금 20퍼센트를 못 내겠다고 했을 때도, 식당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 때도, A가 단돈 얼마라도 캐피탈 빚을 갚는 데 보태달라고 했을 때도, 답은 늘 네 가지 표현 안에서 맴돌았다. 성인이 된 이후로 A가 C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였다고 한다.


식당 문을 열고 나서 C는 원래 사업계획에 없던 시설 투자를 B에게 요구했다. B는 그중 상당 부분을 받아들여 2,000만 원이 넘는 장비를 구입했다. 또한 C는 급격한 수요 증가에 대비해 인력도 늘리자고 했다. 그러나 계획을 벗어난 지출을 이미 한 B로서는 더 이상 여력이 없었다. B는 그 제안만큼은 거절했다.


C는 식당 문을 연 직후에는 나오는 척이라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나오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날 즈음, C는 오랜 친구인 A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몇 월 며칠부터는 나오지 않겠다고.

C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다. 투자한 돈도, 담보로 잡힌 것도 없었다. 그러니 떠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C는 식당을 떠나면서 이런 명분을 이야기했다. 시설 투자도 하지 않고 사람도 뽑지 않는 등 전문가인 자신의 의견을 B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식당을 떠난다고. 이 말을 전해 들은 B는 황망했다. 더 이상 어떻게 투자를 더 하라는 말인가! C를 누구보다 잘 아는 A는 C가 식당을 떠난 진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C의 생각만큼 짧은 시간에 손님이 늘지 않자, C는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고.


C를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쉽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C는 아마도 언제나 진심이었을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도, 곧 정리된다고 했을 때도. 문제는 그 진심이 현실과 맞닿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운 건, 늘 다른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51퍼센트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돈도 없고, 끝까지 버틸 생각도 없으면서. 어쩌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해도 된다고 느끼는 감각. 오랫동안 아무도 그 감각에 제동을 걸지 않았을 때 만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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