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줄 서는 날은 오지 않았다
C는 장담했다. 식당을 열고 6개월 안에 줄을 설 것이라고. B는 그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C가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직접 식당을 운영해본 경험도 있었다. 근거 없는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다.
A는 집에서 식당까지 거리가 멀었다. 오가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A는 새벽에 일어나 식당으로 출근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 잠깐만 일을 도와달라는 C의 부탁을 받고 식당에 출근한 B도 마찬가지였다. 한두 달이면 될 줄 알았다. 기존 사업을 마무리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담당하던 시간도 C가 커버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두 달은 오지 않았다. C는 점점 보이지 않았다. 핑계는 매번 달랐다. 자리를 지킨 건 A와 B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 서는 식당도 실현되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나자 매출이 비용을 겨우 커버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A와 B가 처음 만난 건 식당 문을 열기 얼마 전이었다.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달랐다. 그러나 좁은 주방과 홀을 함께 누비며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서 나란히 서서 일하다 보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생긴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사람은 가까워진다.
C가 완전히 빠진 뒤에도 식당은 이럭저럭 돌아갔다. A와 B가 버텼다. 그러나 몸은 솔직했다. 두 사람 모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A가 그랬다.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다리가 지속적으로 붓기 시작했다. B는 그것을 보고 결정을 내렸다. 더 끌고 가지 않기로. 식당을 헐값에 최대한 빠르게 정리했다.
줄 서는 식당은 끝내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들이 왔다. 쌓인 피로, 줄어든 통장,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체력의 한계.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하나. 처음 보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일.
꿈이 아니라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그게 이 식당이 서둘러 문을 닫은 이유였다.
5편 결국 둘이 남았다
식당을 접고 나서 A와 B는 가끔 만나 술을 한 잔 한다. 그 자리에 잃은 것들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그 무게는 늘 테이블 위에 함께 놓여 있다.
어느 날 A가 말했다. 미안하다고. B에게. 자기가 C를 소개한 것도 아니고, 식당을 제안한 것도 아닌데.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아마도 C와 오래된 친구라는 것 자체가, A에게는 일종의 책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B가 답했다. "잃은 시간과 돈보다 당신을 얻은 게 훨씬 커".
술자리에서 C 이야기가 나오면 두 사람의 온도는 달라진다. A는 C가 불쌍하다고 한다. 사업이 무너지고, 빚이 쌓이고, 아내가 다리를 다쳤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절뚝거리며 아르바이트를 다닌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쓰인다고. A는 그런 사람이다.
B는 다르게 말한다. C에게 고통 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C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C의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돈을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A는 캐피탈 빚으로 개인회생 신청까지 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측은지심에도 한계가 있다고. B는 그렇게 말한다.
누가 맞는가? 아마도 둘 다 맞을 것이다. A는 C라는 사람을 보고, B는 C가 한 일을 본다. 같은 사람을 두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는 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셋이 식당을 차렸고, 둘이 자리를 지켰고, 둘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둘이 남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남이었던 두 사람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이 무거울까? B는 이미 답을 냈다. A는 아직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 간극이, 어쩌면 두 사람의 차이이자 닮은 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