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년, 명나라 환관 정화는 300척의 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을 건넜다. 거대한 보선에는 보물이 가득했고, 2만 7천 명이 승선했다. 그로부터 87년 후인 1492년, 콜럼버스는 고작 네 척의 배로 대서양을 건넜다. 규모로만 보면 정화의 압승이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콜럼버스 편을 들었다.
이 차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정화의 항해술이 뒤떨어져서도 아니고, 중국의 조선 기술이 열등해서도 아니다. 문제는 두 항해가 속한 시스템이 달랐다는 것이다. 정화는 황제의 명령을 받은 장군이었고, 콜럼버스는 여왕을 설득한 사업가였다. 정화는 보물을 싣고 떠났고, 콜럼버스는 보물을 찾으러 갔다. 정화의 원정이 권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콜럼버스의 원정은 부를 향한 욕망 그 자체였다. 이 차이가 이후 500년을 만들었다.
정화의 항해는 위대했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황제가 바뀌자 항해는 중단되었고, 기록은 축소되었으며, 경험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화가 환관이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환관은 혈통을 남길 수 없고, 재산을 축적할 수 없으며, 자신의 성취를 상속할 수 없다. 그의 업적은 온전히 황제의 것이었고, 황제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졌다. 반복 불가능한 展示였던 셈이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달랐다. 그는 실패해도 다시 설득할 수 있었고, 성공하면 그 이득이 자신과 투자자에게 돌아왔다. 항해는 국가 사업이면서 동시에 민간 사업이었다. 그래서 콜럼버스 이후에 '다음 콜럼버스'가 등장할 수 있었다. 탐험은 모험에서 투자로, 투자에서 약탈로, 약탈에서 제도로 이어졌다. 배에는 항상 과학자가 탔고, 미지의 세계는 측정과 분류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콜럼버스 이후의 역사는 잔혹했다. 원주민 학살, 문명 파괴, 노예 무역. 윤리적으로만 보면 정화가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정화의 항해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고, 기존 질서를 존중했으며, 약탈보다는 교류를 지향했다. 하지만 세계사는 선한 자에게 움직이지 않았다. 구조를 만든 자 편에서 움직였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구조라도 먼저 만드는 것이 옳은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더 불편한 사실을 보여준다. 도덕적 우월성만으로는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화가 윤리적으로 올바랐음에도 아무런 세계사적 대안이 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비폭력적이었지만 확장 가능한 질서를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교훈은 무엇인가? 폭력적 구조를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폭력 없이도 작동하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화를 복권시키는 일은 그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들지 못한 것을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지금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AI라는 기술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정화의 길'과 '콜럼버스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 주도의 거대한 시연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소수 기업의 약탈적 확장이 될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 있다. AI는 정화가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한다. 복잡한 협력을 실시간으로 조정하고, 공급망 전체를 투명하게 추적하며, 다양한 경제 모델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비효율적이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AI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플랫폼 경제가 소수에게만 이익을 주는 문제도 해결 가능성이 보인다. AI는 누가 어떤 데이터를 제공했는지 추적하고, 그 기여도를 측정해서, 수익을 자동으로 분배할 수 있다. 지금은 구글이 내 데이터로 돈을 벌어도 나는 한 푼도 못 받지만, AI를 사용하면 내가 올린 사진 하나하나가 모델 학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계산해서 보상을 줄 수 있다.
물론 AI 그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다. 증기기관도, 전기도, 인터넷도 처음에는 유토피아를 약속했지만 결국 기존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데 쓰였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입법이었다. AI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이다.
정화의 배는 더 컸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고, 콜럼버스의 배는 작았지만 500년의 구조를 남겼다. 이제 우리에게 정화의 윤리와 콜럼버스의 확장성을 결합할 도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문제는 그 도구가 지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로의존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AI를 어떻게 개발하고, 누가 소유하며,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정화는 항해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항해의 시작을 알렸고 약탈의 역사를 남겼다. 우리는 AI라는 배를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에는 환관도 사업가도 아닌, 제3의 항해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