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 CEO가 될 때

by 시온

직장 생활을 하며 여러 분의 CEO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다. 지근거리라는 말은 단순히 보고를 자주 했다는 뜻이 아니다. 회의실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현장 방문의 짧은 이동 시간 속에서 그분들의 말투와 시선, 침묵의 길이까지 지켜보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분들은 모두 달랐다. 인성도 달랐고, 능력도 달랐으며, 리더십의 스타일 또한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조직의 경쟁력이 무너진 자리를 돌아보면, 그 중심에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공통된 기운이 느껴졌다.


냄새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운. 자신의 주제를 모른다는 냄새였다.


그분들은 자신이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라고 믿었다. 본인의 판단력은 탁월하고, 결정은 언제나 옳으며, 조직이 잘 굴러가는 이유 역시 자신의 통찰 덕분이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곧 아부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졌다. 회의실에서는 점점 질문이 사라지고 동조의 문장들이 늘어났다. "그 방향이 맞습니다." "역시 대표님이 보시는 관점은 다릅니다." 좋지 못한 성과를 가리키는 지표는 보고서에서 슬그머니 사라졌고, 임원회의는 늘 환호와 박수로 마무리되었다.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팀 플레이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되옵니다"라는 말은 어느새 금기어가 되었고,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었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기술은 생존 전략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능력이 부족하고 결단이 느린 CEO가 이런 유형의 리더보다 조직을 덜 망쳤다는 점이다. 우유부단한 리더 아래에서 구성원들은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런 조직에는 스스로 굴러갈 틈이 남아 있다. 현장이 알아서 판단하고, 중간 관리자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반면 주제를 모르고 확신에 찬 리더는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그것도 전속력으로 몰아붙인다. 방향이 틀렸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속도다. 속도는 문제를 빠르게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더 깊고 회복 불가능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한 CEO가 떠오른다. 그분은 현장 방문 때 직원들의 환대 수준으로 기관장을 평가했다. 방문 일정이 잡히면 현장은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TFT가 꾸려졌고, 사람들은 밤을 새워 환대 행사를 기획했다. 무엇을 보여줄지, 어떻게 감동을 줄지, 동선 하나, 손짓 하나까지 설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작 현장의 문제를 논의할 시간은 사라졌다.


결국 그 광경이 도를 넘었다. 언론에 보도되었고, 여론이 움직이자 그제야 "앞으로 그런 환대 이벤트는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반성이 아니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 방어에 가까웠다.


그분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러 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서 박수 소리가 충분한지를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밤을 새워 환대 이벤트를 준비하던 직원들의 충혈된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눈빛에는 존경심도 충성심도 없었다. 오직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애절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리더의 오만이 조직에 새긴 상흔이었다.


반대로 오래 기억에 남는 다른 CEO도 계신다. 그분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는 거침없이 결정했다. 그러나 모르는 분야에서는 달랐다. 섣불리 나서지 않았고, 판단을 유보할 줄 알았다. 문제의 본질이 드러날 때까지 질문을 던졌고, 전문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분이 자주 쓰던 단어들이 있다. 핵심. 본질. 왜. 무엇. 화려한 수식어 대신 실체를 겨누는 언어들이었다. 아부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말들이었다.


한 번은 그분께 "아니되옵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분은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내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 순간 생각했다. 일할 맛이 나는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거창한 동기부여 강연은 필요 없었다. 반론을 말했을 때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경험 하나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남보다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수천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어 있는 그릇은 채울 수 있지만, 오만으로 가득 찬 그릇에는 어떤 진실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오랜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화려한 성공담보다 이런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밤새워 환대 행사를 준비하던 직원들의 충혈된 눈, 반론을 말했을 때 고개를 끄덕여 주던 리더의 표정. 리더의 그릇은 연설문이 아니라 이런 순간들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때, 조직은 가차 없이 병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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