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은 다음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화창한 아침 햇살에도 괜히 일어나고 싶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제이콥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일어나도 제이콥을 만날 수 없고 영상통화나 이메일, 인스타 같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방식으로만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방학 동안 유원은 제이콥과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매일매일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은 무엇보다도 영상통화를 하기로 한, '월, 수, 금'이 될 때마다 평소와 비슷한 나른한 오후여도 활기찬 느낌이 들었다. 유원은 방학 동안에도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 습관적으로 많이 걸어 다녔다. 친구를 만나는 날에는 만 보는 기본으로 넘겼고 그렇게 걷고 오면 하루가 뿌듯하게 느껴져서 서울을 많이 돌아다녔다. 하루는 영상 통화를 하면서 유원이 영어로 대화해 보자고 했다.
"Hi, how are you today?"
"I'm same as always, I think you already know!"
"Then, why you suggested to talk with me in English?"
"That's because I want to communicate with you in a language that you are familiar with."
"Oh, I didn't think of that. Thank you for thinking of me."
"I forgot to ask about your day! How was it?"
"Hmm... today I did off-season training, and did part-time work!"
"You must be very busy. How was the part-time work?" 유원은 눈을 빛내며 물어봤다.(사실 유원은 알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제이콥의 경험이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Our cafe has too many menu recipes to remember, so it makes my head hurt a little, but it made me feel some pride that I made money by myself." 역시 제이콥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기에 알바도 조금씩 즐기고 있는 듯했다.
"Oh, that sounds good. I was just reading some books. Actually, my one wish when I was in my third year of high school was to go to the library just to read books that I wanted."
"You made that wish come true. You wouldn’t know how much I want to see you today."
"I like every moment I spend looking at your face and talking. It feels more romantic."
"I agree, but that doesn’t mean that I like it better than when we met one-on-one."
"Of course. I just can’t wait for the moment we meet again."
"Me neither. Let’s wait until destiny makes us meet again."
영상 통화 내내 제이콥과 유원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세상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사소한 일상 얘기조차도 함께할 수 있어서 더욱 소중했다. 둘은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이렇게 영상통화와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지냈다. 물론 학기 중에는 둘 다 바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연락하고 결코 소원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대학생활의 가장 큰 낙이 서로였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났던 것이 결국에는 운명으로까지 이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원의 1학년 2학기 일정 또한 마무리되었다. 전공 과제에 팀플,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공대 1학년 유원은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학업에 임했고 틈틈이 학점도 채울 겸 사회봉사도 했다.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다 보니 유원은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학점이 나오는 날 기대 없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유원이 1등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허하게 느껴졌다. '학교 수업하고 실제 직무에서 일하는 것하고 같은 것이 맞을까? 요즘 AI가 인간이 설 곳을 점점 줄인다고 그러던데.... 내가 전공한 데이터사이언스 분야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사라질 직업은 아니지만...'이라고 유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뭔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했다. 문득 유원은 자신이 영어를 조금 할 수 있긴 하지만, 나중에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거나 자신의 직무 관련해서 여러 경험을 쌓아보기 위해서 겨울방학에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원은 그 길로 캐나다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었고 학교에 있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성공적으로 어학연수를 계획할 수 있었다.
유원은 일정을 정하게 되자 그 길로 재빨리 제이콥에게 연락했다. 제이콥은 침대에 누워 잠깐 쉬고 있다가 갑자기 벨이 울려서 폰을 봤는데, 유원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제이콥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제이콥, 나 12월 23일쯤에 캐나다 도착할 거 같아!" 유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근래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이 소식을 전했다.
"진짜? 나도 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올 줄이야!" 제이콥은 두 눈을 믿을 수 없어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살짝 꼬집었는데도 볼이 아팠다.
"잘 됐지! 겨울방학에 딱 타이밍도 좋고!"
"근데, 어학연수 어쩌다 오게 됐어?"
"뭔가 한국에서만 경험을 하는 게 근시안적인 것 같기도 하고, 캐나다에 가서 데이터사이언스 관련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 보고 싶어!"
"역시 유원이는 항상 자신의 꿈을 위해 머뭇거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 멋있어! 우리 그럼 캐나다에서 자주 볼 수 있겠다."
"그러게. 혼자가 아니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라 외롭지도 않고 힘이 많이 될 것 같아!"
"이번엔 캐나다에 오는 거니까 내가 가볼 곳도 많이 소개해주고 많이 도와줄게! 그때 보자!"
"고마워! 제이콥, 나도 캐나다에 대해서 알아보고 갈게! 설렌다. "
영상 통화를 끊고도 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드디어 다시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기대가 됐다. 유원은 그녀 나름대로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고 제이콥은 유원을 데려갈 만한 곳들을 찾아보는데 집중하느라 의자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