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넓게 보는 법
작년에 한창 독서에 빠져서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었을 때에도 베스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히 흥미로워서 몇 번씩 목차를 간간히 읽었지만 그때마다 다음에 읽자는 생각으로 내려놓았다. 그러던 중에 학교도서관에서 즉흥적으로 눈에 띈 책을 고른 것이 지대넓얕이었다.
자본주의 → 후기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 공산주의
신자유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 보수(우파) 신자유주의의 입장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 진보(좌파)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흔히 듣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몰랐다. 단지 내 유추 상으로 보수는 말 그대로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느낌의 경제체제였고 진보는 발전하는 삶을 추구하는 느낌이었기에 직관적으로 진보가 당연히 좋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의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경제체제로서 무엇이 더 바람직할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경제체제에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더 양보를 하고 누가 이익을 더 얻을지에 대한 절충안만이 존재할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나는 자본주의의 대표 국가 미국 와 거의 흡사할 정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낮은 세금과 낮은 복지 수준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서구의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복지제도가 좋다면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정부가 거두어가는 세금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복지는 결국 세금으로부터 나오고 그 세금은 정부가 걷어간다. 즉 정부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나라들이 공산주의를 띄고 있느냐. 당연히 아니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후기 자본주의의 시작을 생각해 보면 전 세계가 대공황을 겪던 시기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세금을 거두어간다. 후기 자본주의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될 경우, 비교적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고 안정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반대로 정부의 정책의 성공에 경제가 좌우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오늘날 대다수가 희망하는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 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하고 실제로 미국에서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함으로 인해 폐기 후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게 되었다.
나는 선거에 대해서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고 반성하게 되었다. 무지로 인해 투표를 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알게 되었으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노동자이다. 지금은 학생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본가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과 자본가보다는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당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진보를 주장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진보라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의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공산주의는 자본가에 있어서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게 되고 경기 침체로 인해서 노동자에게 있어서 그 일자리 부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의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서 투표해야겠다.
‘보수’가 안정을 지향해야 한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좌파 : 후기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환경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한국의 보수 성향의 원인
역사적 경험
교육의 문제
대중의 비합리적 선택 : 중우정치
어느 국가의 사회에서든 자본가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부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보수 성향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위와 같다. 우선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진보(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서민들을 생각하는 진보 세력을 틈만 나면 빨갱이로 몰아가게 된 것이다. 뭐, 반대로 생각하면 독재자가 될 수도 있었던 존재들일 수도 있긴 하다. 정부의 교육은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정하게 된다. 한국의 기득권자들은 자본가들이고 그들 자신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하게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은 알게 모르게 교육을 받게 된다. 미디어는 누구의 편이라고 묻는다면 기업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공짜로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광고 덕분이다. 광고는 결국 기업을 통해서 받게 되고 미디어의 입장에서 그러한 광고를 하게 해주는 대상은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송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에 미디어 역시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여기서 중우정치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멍청이들이 세상을 다스린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다수가 모인다면 멍청한 정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머리를 모아보자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러한 중우정치로 피해를 본 것이 소크라테스고 외람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잘 담은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이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엘리트 정치를 옹호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선동과 궤변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고 소크라테스이 입장에서 정말로 사회를 위하는 인물일 수 있다면 엘리트 정치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러한 흔히 ‘무지성의 대중’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노동자인 대중에게 있어서 진보의 선택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로 보수를 선택하게 되고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수의 장점도 명확하기에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는 없지만 정말로 제 앞가림을 한다고 한다면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가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결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개인주의 극단화 → 이기주의 집단주의 극단화 → 전체주의 이기주의는 사회가 한 개인을 통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전체주의가 개인을 희생시키고자 한다면 막을 수 없다.
특히,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 위기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괴물의 등장에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내가 한 게 아니라 독재자가 한 것이고, 경제 회복을 위해서 전체가 함께 동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없다. 전체주의는 개인을 사회 안의 작은 일부분으로 가치 절하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부채를 대신 해결해 준다.
거대한 전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절하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위안받는다.
전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행동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 매력적인 체제가 전체주의다. 개인이 전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해 준다.
바로 위에 글은 내 만약 집단의 구성원이라면 정말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라면 나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준다고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들을 시행한 것이 나치즘과 파시즘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나치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위기 속에서 옳지 않다고 나서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치즘은 누구가 한 개인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나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 윤리적일 수 없을 수는 있지만 나의 이익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듯하다. 성악설은 옳다!!
다수의 노동자가 한 표씩 행사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왜 사회는 보수화되는가? 미디어가 생존하기 위한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화용론 : 대화를 하는 맥락(상황)에 초점이 되어 최적화되어 문장을 이해하는 소통방법.
의무론적 윤리관(칸트-정언명법:보편적 윤리적 의무) vs목적론적 윤리(벤담/밀-양적/질적 공리주의)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책이었다. 세상이 어떤 체제로 돌아가고 있고 왜 자본주의가 생겨났고 공산주의가 붕괴했고 자본주의의 한계점이 무엇이며 그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쉽게 설명해 주어서 잘 이해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정말 부자를 위한 나라이고 기득권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임을 알았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특성이니 나도 그들의 무리에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기득권자가 되어야 한다. 기득권자가 되어서 남을 베풀기도 해야 하지만 내 몫을 단단히 챙겨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한국이고 그것이 자본주의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자본주의를 통해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로 사회전체를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공산주의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미래에 있어서는 경제 침체로 인해서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본주의도 빈부격차로 인해 결국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자본주의가 옳다는 생각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대공황시기에 공산주의로 체제변경을 한 소련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영웅이자 독재자였던 히틀러와 나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들도 본인의 국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또한, 과거에 교수의 의견으로 공산주의는 정말로 매력적인 체제라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체제를 운영하는 사회도 결국 사람에 의한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에 의한 공산주의는 결국 독재를 낳게 되고 그렇게 공산주의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신이, 창조물들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신이 공산주의의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곳이 정말 파라다이스고 유토피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티브이에 나오는 당 간의 싸움을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당간의 견제와 감시가 있어야 어느 한 당이 지배하지 않고 그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당간의 싸움은 유치하긴 하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싸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