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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건희 Aug 18. 2024

코뿔소

선동당한 코뿔소, 현명한 코뿔소

배경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고전 문학인 알베르 카뮈 작가의 이방인을 읽은 경험이 있어서 어느정도 그 난이도를 예상하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방인이라는 책도 전에 읽던 책 종류와 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 문학의 경우는 그 시대상 등 책을 읽으면서도 고려해야할 부분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번에 한번더 고전 문학을 통해서 그 이해도와 읽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추천을 들었을 때, 전체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내용이라고 들었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정치체제, 경제체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체제에 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책으로 선정되는데 있어서 동의했다.


생각

장 : 도덕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해. 그러나 그걸 뛰어넘어야해. 
베랑제 : 그럼 도덕의 자리에 무얼 놓을 셈인가? 
장 : 자연! 자연엔 자연의 법칙이 있어. 근데 도덕은 반자연적이란 말이야. 우리 삶의 뿌리를 다시 구축해야 해. 순수한 원시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내용]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을 스크랩해놔야할지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도 정확히 이러한 부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인지 전혀 유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내가 느낀 부분들과 작가의 말을 참고하여 그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처음에 나타난 코뿔소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그리고 기피 대상으로 여기진다. 코뿔소는 낯선 존재고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가져다준다. 누군가는 코뿔소의 존재에 의문을 가진다. 그정도로 코뿔소는 그 자체로 이방인이였다. 하지만 점차 과연 무엇이 의문이고 무엇이 낯선 존재인지에 대하여 희미해져간다. 오히려 코뿔소가 옳은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들리고 하나둘씩 코뿔소가 되어간다. 깔끔하고 신사적인 베랑제의 친구, 장도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점차 코뿔소의 울음소리, 검푸른 피부를 가지면서 코뿔소로 변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점점 코뿔소로 변하는 모습에 점차 사람들은 그게 무슨 대수인양 생각하면서 코뿔소가 된 것에는 코뿔소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한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담담해한다. 결국 인간으로 남은 베랑제와 베랑제가 사랑하는 데이지만이 남게 되지만 데이지조차 무엇도 믿을 수 없으며 그와의 사랑조차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함께 코뿔소가 되기를 베랑제에 설득한다. 하지만 베랑제는 거부하고 데이지만 코뿔소가 되며 세상에 유일한 인간은 베랑제만 남게된다.

이 책이 쓰여지는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시기였다. 당시에는 여러 선동이 난무했고 이러한 선동에 빠져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되는 것을 코뿔소로 변하게 되는 것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인물 즉, 다양한 유형의 시민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동에 휘말렸다. 그 선동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했다고는 하지만 집단의 선동은 그러한 고민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소수였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수가 되고 그것이 파시즘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하였다.

[누가 죄인인가]

하지만 나는 데이지의 상황을 통해서 유추해보았을 때,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존재이고 절대적인 유혹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랑을 버리고 코뿔소가 될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피치못할 상황이였다고 생각이 된다. 따라서 단순히 선동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그 사람을 비난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지킬 정부와 그러한 선동에 있어서 벗어나게해줄 외부의 힘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선동이 부적절하다면 그 선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것이 정부이고 정부는 이러한 선동을 막아야만 선동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다. 혹여나 그러한 선동이 정부라면 그것은 바람직한 정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동에 빠지는 것이 개인의 몫이자 자유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내가 틀렸다]

데이지는 끊임없이 베랑제와 본인에게 묻는다. 코뿔소가 비정상이 아니라 우리가 비정상이 아닐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정말로 선동당하게 된다면 스스로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코뿔소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혼란일 것이다. 평생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제와보니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방향을 다수의 방향에 합류할 것이다. 그것이 분명히 옳은 일이라면 후에 영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영웅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베랑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압박을 끊임없이 들어야할 것이다. 또한, 다수에 합류한 후에 그 일이 정말로 원래의 내가 생각했던대로 비정상이였다고 하더라도 내 주위 다른 사람들도 같은 선택을 했고 같은 상황임에 조금이나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정도를 고려해보았을 때, 차라리 다수에 합류해서 같은 바보가 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나는 소크라테스나 현자가 아니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다분하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많다. 다수가 그러한 코뿔소가 되는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적어도 다수를 따라가다보면 평균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얻을 수 있기에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한다. 책에서도 베랑제는 항상 취한 듯한 눈을 가지고 돌아다니지만 신사적이고 교양있어 보이는 장은 빠르게 다수에 합류한다. 외적인 요인만을 중시해서는 아니지만 그 요인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무엇이 옳고 틀렸는지 분명히 구분하고 현실과 주위를 볼 줄 알아야한다.

[벗어나라]

수많은 선동으로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만들어 코뿔소가 되어간다. 나는 어떤 선동에 살고 있고 어떤 선동에 빠져 코뿔소가 되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자유를 억압받고 있을까.혹은 너무도 당연해져버려 내 자유를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행하다면 무지로 인해서 그 자유를 찾을 시도조차 내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끊임없이 주위의 부조리를 찾아내고 이를 극복할려고 노력해야한다.


정리

고전문학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다른 일반적인 책은 글자를 따라 읽고 뇌에 저장하면 끝이다. 그걸로 독서를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코뿔소를 읽으면서 더 느낀 것은 고전문학은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 많고 그 시대상을 따르기 때문에 풍자, 비유 등을 잘 캐치해내야한다. 이것을 위해서 읽는 동시에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해야한다는 점에서 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수동적인 독서를 했음에 반해 고전문학을 통해서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하면서 읽는 독서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코뿔소가 파시즘, 나치즘을 다루며 전체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사실상 직접적으로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 역사를 모르기에 효과적으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책 ‘심판’을 통해서 겪었지만 극 느낌의 대본 형식의 책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다수의 인물들이 그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니 흐름을 잡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1막의 코뿔소가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지는 장면에 있어서는 여러 사람들의 비명과 반응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다보니 주된 흐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장과 베랑제의 대화에 노인과 논리학자의 대화가 번갈아가며 나오다보니 주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분명히 작가의 의도로서 그렇게 대화를 배치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연극으로 보았을 때에 느낄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읽는데 불편했다.

읽는 내내 느낀 한 줄 평으로는 책을 읽는 와중에도 정신없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글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독서능력을 가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을 몇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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