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화성 고속도로, 사고 현장]
쾅! 콰아앙! 검은색 대형 세단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뒤따르던 경호 차량들이 급제동하며 아스팔트 위에 타이어 자국을 새겼지만, 이미 세단은 전복되어 찌그러진 깡통처럼 변해 있었다.
"대표님! 대표님!"
경호원들이 달려가 찌그러진 문짝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뒷좌석에는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늘어져 있었다.
여당 대표 김진혁.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 대한민국 권력 서열 5위 안에 드는 거물이 평택 지역구 행사를 마치고 귀경하던 길이었다.
"119! 119 불렀어?" "불렀습니다! 근데 차가 밀려서 10분은 걸린답니다!" "젠장! 헬기! 닥터 헬기 띄워!"
청와대 경호처 파견 팀장이 다급하게 무전을 쳤다.
[여기는 상황실. 한국대병원 닥터 헬기 출동 불가. 현재 수원 인근 산불 진화 지원으로 이륙 금지 구역 설정됨.]
"뭐야! 그럼 어디로 가란 말이야!"
그 시각,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가슴에 박힌 차량 파편.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품 섞인 피.
"맥박이 약해집니다! 쇼크 옵니다!"
경호팀장은 떨리는 손으로 최후의 보루인 '핫라인'을 눌렀다. 한국대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이었다.
"센터장님! 김 대표님입니다! 지금 헬기가 안 떠서 구급차로 이송해야 하는데, 받아주실 수 있죠?"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당직 교수가 없습니다.]
"네? 대학병원에 교수가 없다니요!"
[어제... 흉부외과 펠로우랑 전공의들이 단체로 사표 쓰고 나갔습니다. 남아있는 건 인턴뿐이라 개흉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경호팀장은 욕설을 내뱉었다. 며칠 전 뉴스에 나왔던 '간호사 대량 이직 사태'가 의사들에게까지 번진 모양이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대한민국 여당 대표가 길바닥에서 죽게 생겼는데!"
[저...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한데...] 센터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택이면... 거기서 헬기 띄우면 10분 안에 도착하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어딥니까! 거기가!"
[천명... 천명 외상센터요.]
"천명? 그 사이비 종교 병원 말입니까?"
[사이비긴 한데... 장비랑 실력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병원에서 도망간 의사들이 다 거기로 갔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마비된 원인이 그 병원인데, 이제 살길도 그 병원뿐이라니.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결해! 당장!"
[천명 외상센터, 이사장실]
나는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보며 팝콘을 씹고 있었다. 옆에서는 김 장로가 태블릿 PC를 보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성자님! 한국대병원 주식이 폭락하고 있습니다! 의료진 공백으로 수술 취소가 잇따르자 환자들이 고소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있을 때 잘하라는 노래도 모르나."
그때, 책상 위의 붉은 전화기가 울렸다. 일반 전화가 아니었다. 내가 병원을 인수하자마자 정부 주요 기관과의 핫라인을 뚫어놓기 위해 억지로 설치해 둔, 먼지 쌓인 비상 연락망이었다.
"어? 저게 왜 울리지?" 김 장로가 놀라서 수화기를 들었다.
"네, 천명 외상센터입니다... 네? 청와대요?"
김 장로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는 입을 뻐끔거리며 나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성자님... 청와대 경호처랍니다. 여당 대표가..."
나는 팝콘을 내려놓고 수화기를 받았다.
"천이환입니다."
[닥터 천입니까? 여기 경호처입니다. 김진혁 대표가 교통사고로 위독합니다. 흉부 관통상. 지금 받아줄 병원이 귀원밖에 없습니다.]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가 남아있었다. '감히 우리가 너희 병원에 가준다'는 뉘앙스.
나는 피식 웃었다. "아, 뉴스 봤습니다. 근데 어쩌죠? 저희는 아직 정부 지정 외상센터가 아니라서요. 법적으로 중증 환자를 받을 자격이..."
[이보시오! 지금 자격 따질 때입니까!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러니까요. 살려놨더니 나중에 '무허가 의료 행위'니 뭐니 하면서 고소하실 거잖아요. 한국대병원으로 가시죠."
[거긴 의사가 없다고요!]
"아, 그렇군요." 나는 뜸을 들였다. 상대의 애간장이 다 타버릴 때까지.
"좋습니다. 받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송부터 수술까지 전권은 제가 갖습니다. 청와대에서 감놔라 배놔라 안 통합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헬기부터 띄워주십시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백강우! 헬기 시동 걸어!"
"벌써 걸어놨다. 뉴스 보고 올 줄 알았지." 무전기 너머로 백강우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혁! 수술실 1번 비워! 피(Blood) 준비하고!"
"이사장님, 환자가 누군데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놈. 아니, 이제부터 우리한테 빚질 놈."
나는 가운을 휘날리며 옥상으로 뛰었다.
[평택 사고 현장 상공]
두두두두두! 아구스타웨스트랜드 AW-139 헬기가 현장 상공에 도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구급차는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었다.
"착륙 공간이 안 나옵니다!" 파일럿 최 집사가 소리쳤다.
"도로 위에 내려! 차들 밟아도 되니까 그냥 내려앉아!"
"라져! 파손된 차들은 재단에서 물어주는 걸로 알고 내립니다!"
헬기가 곡예비행을 하듯 전복된 차량과 가드레일 사이 좁은 공간에 착륙했다. 로터 바람에 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백강우가 의료 배낭을 메고 뛰어내렸다. 나도 뒤를 따랐다.
"비켜! 의사다!"
경호원들을 밀치고 환자를 확인했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환자 상태: 심낭 압전(Cardiac Tamponade) 및 우측 폐 관통상] [혈압: 60/40, 맥박: 130] [남은 시간: 10분 미만]
심낭 압전. 심장을 싸고 있는 막에 피가 차서 심장이 뛸 공간이 없어지는 현상. 지금 당장 피를 빼주지 않으면 심정지가 온다.
"백 팀장, 니들(Needle) 줘. 여기서 심낭 천자(Pericardiocentesis) 한다."
"여기서요? 길바닥에서?" "헬기까지 갈 시간 없어. 지금 찌른다."
나는 굵은 주삿바늘을 환자의 명치 아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초음파도 없이, 오직 감각에 의존한 시술. 하지만 내게는 [신의 손(Lv.1)]이 있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저항감. 심낭막을 뚫는 감각.
"흡!" 주사기 피스톤을 당기자 검붉은 피가 쑥 올라왔다. 동시에 환자가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맥박 돌아옵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태워! 헬기로 이동하면서 개흉 준비한다!"
[헬기 내부]
이송 중인 헬기 안은 전쟁터였다. 심낭 천자로 시간을 벌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찢어진 심장 근육을 꿰매지 않으면 다시 피가 찰 것이었다.
"혈압 다시 떨어집니다! 50대!" 동승한 간호사가 비명을 질렀다.
"안 되겠어. 여기서 연다." 나는 메스를 들었다.
"이사장님 미치셨습니까? 헬기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가슴을 연다고요?" 백강우가 기겁했다.
"안 열면 죽어. 백 팀장, 너 운전... 아니, 비행 꽉 잡아. 최대한 수평 유지하라고 최 집사한테 전해!"
나는 환자의 가슴에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메스를 그었다.
지이익. 피부가 갈라지고 흉골이 드러났다. 헬기가 난기류를 만나 덜컹거렸다. 보통 의사라면 여기서 손을 멈췄겠지만, 나는 시스템의 보정을 믿었다.
[스킬 <야전 병원(Field Hospital)> 효과 발동] [흔들리는 환경에서의 시술 성공률이 보정됩니다.]
마치 내 손이 헬기의 진동과 동기화된 듯했다. 기체가 내려가면 내 손도 내려가고, 올라가면 같이 올라갔다.
"개흉기(Retractor)!" 백강우가 능숙하게 기구를 건넸다. 그는 군의관 출신은 아니었지만, 특수부대 의무 교육을 마스터한 베테랑이었다.
가슴을 벌리자 펄떡거리는 심장이 드러났다. 우심방 쪽에 2cm가량의 열상이 보였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찾았다. 손가락으로 막아!" 백강우가 손가락을 집어넣어 구멍을 막았다. 출혈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꿰맨다. 3-0 프롤린."
나는 바늘을 잡았다. 헬기의 소음, 진동, 피 냄새. 모든 것이 감각을 방해했지만, 내 집중력은 오직 바늘끝에 모여 있었다.
한 땀. 헬기가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내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땀. 세 땀. "봉합 완료. 손 떼."
백강우가 손가락을 떼자, 더 이상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며 피를 전신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살렸다." 백강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이사장, 너 진짜... 사람이냐? 흔들리는 헬기에서 심장을 꿰매?"
"비싼 몸이잖아. 손 떨면 내 인생도 떨리는데 집중해야지."
나는 피 묻은 장갑을 벗으며 창밖을 봤다. 천명 외상센터의 옥상 헬리패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수많은 기자들과 경찰차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와 있었다.
[천명 외상센터 로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는 피가 묻은 수술복 차림 그대로 로비로 내려왔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눈을 멀게 할 듯 터졌다.
"이사장님! 김 대표 상태가 어떻습니까!"
"한국대병원에서 거부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나는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준비해 둔 폭탄을 던질 차례였다.
"환자는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뜸을 들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사망했을 겁니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현실이 참담하더군요. 대학병원이라는 곳들이 인력이 없어서 환자를 거부하다니."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천명 외상센터는 약속합니다. 우리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누구든, 돈이 있든 없든, 우리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을 겁니다."
그때, 로비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비키시오! 내가 김 대표 주치의요!"
한국대병원 최태수 원장이었다. 뉴스를 보고 뒤늦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경호원들을 밀치고 들어왔다.
"천 이사장! 자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감히 검증도 안 된 시설에서 VIP를 수술해? 당장 환자 내놔! 우리 병원으로 이송할 거야!"
최 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나를 몰아세워 주도권을 뺏어오려 했다. 하지만 그건 악수(惡手)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원장님. 늦으셨네요."
"뭐?"
"아까 경호처에서 전화했을 때, '의사 없어서 못 받는다'고 하셨다면서요?"
"그, 그건..." 최 원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희는 의사가 넘쳐나서 받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원장님네 병원 의사들이 다 우리 병원에 와 있어서 그런가요?"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 원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 건방진...! 너 의사 면허 박탈당하고 싶어? 감히 선배한테!"
"선배?" 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환자 버리는 선배는 둔 적 없습니다. 그리고 면허 박탈? 해보시죠. 근데 김 대표님이 깨어나시면, 자기를 버린 병원과 살려준 병원 중 누구 편을 들까요?"
최 원장은 할 말을 잃었다. 정치적인 계산이 빠른 그가 상황 파악을 못한 리가 없었다. 여당 대표는 이제 천명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고, 한국대병원은 '무능한 병원'으로 낙인찍힐 위기였다.
"가시죠. 여기는 환자들이 쉬는 곳입니다. 잡상인 출입 금지입니다."
나는 보안팀에게 눈짓했다. 백강우가 험악한 표정으로 최 원장의 앞을 막아섰다.
"나가시죠. 험한 꼴 보시기 전에."
최 원장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제 판은 완전히 뒤집혔다.
[며칠 후, 중환자실 VIP 룸]
김진혁 대표가 의식을 찾았다. 산소호흡기를 떼자마자 그가 찾은 건 나였다.
"천... 이사장이라고 했나?" 그의 목소리는 아직 갈라져 있었다.
"네, 대표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자네가... 헬기에서 내 배를 갈랐다면서? 미친놈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진짜일 줄이야."
김 대표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악의가 없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한국대병원 놈들은 날 버렸는데... 자네가 주워줬더군."
"주운 게 아니라 모셔온 겁니다. 비싼 분이라서."
"솔직해서 좋군. 그래, 내가 뭘 해주면 되겠나?"
나는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두 가지입니다."
"말해봐."
"첫째, 천명 외상센터의 '권역외상센터' 정식 지정. 그리고 정부 지원금."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살았는데 그 정도도 못 해주겠나. 둘째는?"
나는 두 번째 서류를 내밀었다. 그것은 병원 서류가 아니었다.
[학교법인 설립 인가 신청서] [가칭: 천명 의과대학]
김 대표의 눈이 커졌다.
"의대? 자네 지금 의대를 만들겠다는 건가? 지금 의대 정원이 동결된 지가 20년인데..."
"만드는 게 아니라, 인수할 겁니다. 망해가는 지방 의대 하나를 사서, 천명대 의대로 간판을 바꿔 달 겁니다. 교육부 승인만 도와주십시오."
"왜 굳이 의대인가? 병원만 잘 운영해도 돈은 벌 텐데."
"사람이 없습니다, 대표님."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기존 의사들은 기득권에 젖어서 험한 일 안 하려고 합니다. 저는 제 손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돈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진짜 미친 의사들을요."
김 대표는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서류에 서명했다.
"좋아. 해보게. 내 목숨값으로 의대 하나라... 싸게 먹히는군."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있네." 김 대표가 내 손을 잡았다.
"나중에 내가 대통령 되면, 내 주치의는 자네가 맡게. 청와대 의무실장 자리 비워둘 테니."
"그때 가서 생각해보죠. 저는 병원 밥이 더 맛있어서."
병실을 나오자, 시스템 알림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권력의 정점 완료] [보상: '의과대학 설립 권한' 획득] [명성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됩니다: <괴물들의 학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하드웨어(병원)와 소프트웨어(권력)는 갖춰졌다. 남은 건 그 안을 채울 콘텐츠, 즉 '사람'이다.
"김 장로." 복도에서 대기하던 김 장로를 불렀다.
"예, 성자님! 아니, 총장님!" 김 장로는 이미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다산대학교. 충남에 있는 그 똥통 학교 있지? 인수 작업 들어가."
"이미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거긴 빚이 너무 많아서..."
"빚은 내가 갚아. 너는 가서 교수들하고 학생들한테 전해."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부지를 내려다봤다. 곧 저곳에 의과대학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들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닥터 천'이라고."
왕의 귀환은 끝났다. 이제 왕국을 건설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