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외곽, 다산대학교 캠퍼스 상공]
"두두두두두-!"
아구스타 헬기의 로터 소리가 적막한 시골 마을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헬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다산대학교의 풍경은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였다.
운동장에는 잡초가 허리까지 자라 있었고, 본관 건물의 외벽 페인트는 흉물스럽게 벗겨져 있었다. 정문 앞에는 '임금 체불 해결하라!', '비리 재단 물러가라!'라고 적힌 붉은색 플래카드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성자님... 아니, 이사장님. 진짜 저걸 사시게요? 그냥 돈 주고 쓰레기장을 사는 것 같은데요." 조수석에 앉은 김 장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쓰레기장이니까 사는 거야. 깨끗한 땅에는 건물을 짓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쓰레기장은 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땅이 되거든."
다산대학교. 과거에는 지역 명문 사학이었으나, 설립자의 손자인 황만석 이사장이 취임한 후 급격히 몰락했다. 교비 횡령 500억, 강원도 카지노 도박 빚 200억. 교수들은 1년째 월급을 못 받았고, 의대 실습 자재는 압류당해 마네킹 하나 없는 실정이었다. 교육부가 '폐교 명령'을 내리기 직전인, 그야말로 산소호흡기 떼기 직전의 환자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었다. 이 학교가 가진 유일한 가치, 바로 '의과대학 정원 40명'. 대한민국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의사 면허 발급권'이 이 쓰레기장 안에 묻혀 있었다.
"착륙해."
[다산대학교 이사장실]
"아니, 김 의원! 나 좀 살려줘! 검찰 조사 좀 막아달라니까!"
황만석 이사장은 수화기를 붙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재떨이가 엎어져 있었고, 먹다 남은 양주병이 굴러다녔다.
"내가 그동안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이제 와서 모른 척이야! 내 입 열리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쾅! 그는 수화기를 집어 던지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망했다... 다 끝났어..."
사채업자들이 학교 정문을 지키고 있고, 교수들은 총장실을 점거 중이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학교를 파는 것뿐인데, 부채 덩어리인 지방 대학을 누가 사겠는가. 그것도 2,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으면서.
그때였다. 콰앙-!
이사장실의 낡은 나무 문이 부서져라 열렸다. 황만석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누, 누구냐! 사채업자냐! 내가 돈 갚는다고 했잖아!"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좌우로 도열했다. 천명 재단 보안팀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내가 걸어 들어갔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주병을 발로 툭 차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사채업자라니. 손님한테 말버릇이 거치시네."
"너... 너는 누구야?"
"뉴스 안 보십니까?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의사. 천이환입니다."
나는 김 장로에게 손짓했다. 김 장로가 007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열었다. 황만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방 안에는 현금 대신 서류 뭉치와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황 이사장님. 죽기 일보 직전이라시길래 심폐소생술 좀 해드리러 왔습니다."
나는 수표를 황만석 앞으로 밀었다. '100억 원'. 황만석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그에게 100억은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이... 이게 뭡니까?"
"퇴직금입니다. 이거 챙겨서 강원도 빚 갚으시고, 조용히 은퇴하시죠. 나머지 학교 부채 2,000억은 우리 재단이 전액 상환 보증 섭니다. 체불 임금? 오늘 바로 입금해 드립니다."
"하, 하지만..." 황만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탐욕스러운 인간이었다.
"학교 가치가 얼만데 고작 100억으로 퉁치려고 합니까? 우리 학교 의대 프리미엄만 해도..."
"프리미엄?" 나는 차갑게 비웃으며 품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이건 어제 김진혁 여당 대표님이 교육부 장관에게 보낸 '다산대 특별 감사 요청서'입니다. 횡령, 배임, 사학 비리... 이거 터지면 이사장님은 은퇴가 아니라 '큰집'으로 가셔야 할 텐데?"
황만석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는 알았다. 눈앞의 젊은 남자가 단순히 돈만 많은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정계의 거물까지 움직이는, 진짜 포식자라는 것을.
"선택하세요. 100억 받고 나가서 여생을 즐기실지, 아니면 빈털터리로 감옥에 가실지."
나는 시계를 봤다. "3분 드립니다. 제 시간이 좀 비싸서요."
황만석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수표와 감사 요청서를 번갈아 보았다.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도장... 찍겠습니다."
[시스템 알림] [메인 퀘스트: 아스클레피오스의 영토 획득] [다산대학교 인수가 확정되었습니다.] [캠퍼스 리모델링 및 커리큘럼 개편 권한이 부여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아, 나가시는 길에 저 쓰레기(양주병) 좀 치워주시고."
[일주일 후, 다산대학교 대강당]
"천명 재단 반대한다!" "사이비 종교 물러가라!" "신성한 상아탑을 돈으로 사려 하지 마라!"
대강당은 아수라장이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불안했다. '구원교'라는 사이비 종교 재단이 학교를 인수했으니, 채플 시간에 강제 기도를 시키고 전공 필수 과목으로 '교주 찬양론'을 넣을 것이라는 괴담이 돌고 있었다.
단상 위에 내가 섰다. 옆에는 정혁과 백강우가 호위하듯 서 있었다. 마이크를 잡자 날계란 하나가 날아왔다. 백강우가 날렵하게 손으로 쳐냈다.
"우우우!!" "내려와라! 사기꾼!"
나는 개의치 않고 마이크를 톡톡 쳤다. 스피커의 하울링 소리에 좌중이 순간 멈칫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로 이 학교의 주인이 된 천이환입니다."
"누가 주인이야! 우리는 너 같은 교주 아들 인정한 적 없어!" 총학생회장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인정? 인정은 필요 없습니다. 법적으로 이미 끝났으니까." 나는 등 뒤의 스크린을 가리켰다. 화면에 거대한 PPT가 떴다. 첫 장표는 붉은색 그래프였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 '신성한 상아탑'의 재정 상태입니다. 부채비율 400%. 교수님들 월급 12개월 연체. 실습 기자재 노후화율 90%. 도서관 신간 도서 구매 0권."
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게 학교입니까? 그냥 간판만 달린 수용소지."
"돈으로 다 해결될 줄 알아? 우리에게는 자존심이 있다!" 한 늙은 교수가 외쳤다.
"자존심이 밥 먹여줍니까?" 나는 김 장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강당의 옆문이 열리고, 보안팀원들이 카트 수십 개를 밀고 들어왔다. 카트 위에는 '사과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보안팀원들이 상자를 뒤집었다. 후두둑-!
현금 다발이었다. 5만 원권 뭉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각적인 충격. 돈으로 따귀를 때린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야유를 퍼붓던 학생들과 교수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 있는 현금 50억. 오늘 바로 지급될 교수님들 체불 임금입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천명대학교 비전 선포]
전교생 등록금 전액 면제 (조건: 졸업 후 천명 그룹 계열사 취업 연계)
교수진 연봉 2배 인상 및 연구비 무제한 지원 (단, 성과 없을 시 즉시 해고)
캠퍼스 전면 리모델링 및 스타벅스, 맥도날드 입점 (전 메뉴 무료)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국내 최고 수준 장학금 지급
정적이 흘렀다. 등록금 면제? 연봉 2배? 스타벅스 무료? 가난에 찌들었던 지방대 구성원들에게 이것은 사이비 교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복음이었다.
"거짓말... 아니죠?" 맨 앞줄에 있던 여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짓말이면 내 멱살 잡으러 오세요. 총장실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까."
나는 단상 아래로 내려와 학생들 사이를 걸었다.
"나는 여러분한테 종교 강요 안 합니다. 기도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해부학 실습 한 번 더 하세요. 돈은 내가 댑니다. 여러분은 실력으로 증명하세요."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의대생들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의 눈빛은 혼란스러웠다.
"특히 의대생들.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췄다. "내 학교에서는 '공부만 잘하는 샌님'은 필요 없습니다. 사람 살리는 기계가 되세요. 못 따라오면 유급이 아니라 제적입니다."
"대신, 버티기만 하면." 나는 씨익 웃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로 만들어 주지. 돈 걱정 없이, 삭감 걱정 없이, 원 없이 수술하는 진짜 의사."
잠시의 침묵 후, 누군가 박수를 쳤다. 현금을 받은 교수였다. 이어 스타벅스 무료에 혹한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와아아아! 그 박수 소리는 삽시간에 강당 전체로 퍼져나가, 우레와 같은 함성이 되었다.
"천명! 천명!" "갓이환! 갓이환!"
자본이 이념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돈이 좋긴 좋네. 영혼도 사겠어.'
[그날 밤, 천명대 총장실 (구 이사장실)]
"이사장님... 아니, 총장님. 분위기는 반전시켰습니다만,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 임명된 의대 학장(전 한국대병원 흉부외과 과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그는 내가 한국대병원에서 스카우트해 온 인재였다.
"뭡니까?"
"정원입니다. 고작 40명입니다. 이 인원으로는 총장님이 구상하시는 '의사 군단'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지금 예과 1학년들이 전문의가 되려면 최소 10년은 걸립니다. 당장 써먹을 수가 없어요."
맞는 말이다. 10년 뒤를 보고 투자하기엔, 내 앞의 적들(아버지, 의료 카르텔)이 너무 많았다. 나는 당장 전장에 투입할 '즉시 전력감'이 필요했다.
"정원을 늘려야죠." "교육부가 절대 안 해줍니다. 의사협회도 가만히 안 있을 거고요."
"정공법으로는 안 되죠. 그러니까 샛길을 파야지."
나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겉면에는 [특별 학사 편입학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었다.
"편입생을 받습니다. 대거." "편입요? 일반 편입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파격적인 조건의 편입입니다."
나는 붉은 펜으로 화이트보드에 조건을 적어 내려갔다.
[모집 인원: 100명 (정원 외 모집 + 유급생 대체 티오 활용)] [지원 자격: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임상 경력 3년 이상 (PA 우대)
1급 응급구조사 자격 소지자 (군 의무부사관 우대)
해외 의대 졸업자 중 한국 국시 미통과자]
학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런 파격적인! 의사 사회가 뒤집어질 겁니다! 간호사를 의대 본과로 편입시킨다니요! 이건 의학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학장님." 내가 말을 끊었다.
"수술방에서 10년 구른 PA 간호사가, 갓 들어온 인턴보다 수술 잘하는 거 아시잖아요? 교수님들, 전공의 없을 때 PA들한테 봉합 시키고, 심지어 집도도 시키면서 왜 면허 줄 때는 그렇게 인색합니까?"
학장은 입을 다물었다. 불편한 진실이었다. 대한민국 대학병원의 수술방은 사실상 PA 간호사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해외 의대 출신들. 헝가리나 우즈벡 의대 나왔다고 무시하는데, 그중에는 진짜 실력 있는데 한국 의사들 텃세 때문에 국시 못 보고 떨어진 애들 많습니다. 그 억울함, 그 독기. 저는 그걸 사겠다는 겁니다."
나는 펜을 던졌다.
"우리는 '중고 신인'을 뽑는 겁니다. 이미 기본기는 갖춰져 있고, 절박함으로 무장한 사람들. 그들에게 의사 면허라는 날개를 달아주면 어떻게 될까요?"
"......미친듯이 날아오르겠죠." 학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공고 내세요. 내일부터 면접 봅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교육부 감사는 어떻게 하죠?"
"아, 그거요?" 나는 창밖을 가리켰다. 정문에는 '천명 의대 설립 축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후원: 김진혁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여당 대표님이 힘 좀 써주실 겁니다. '의료 취약지 해소를 위한 시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요. 명분 좋잖아요?"
다음 날 아침.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천명대학교의 모집 공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당신의 꿈을 삽니다. 천명 의과대학 특별 편입생 모집] [간호사, 구조대원, 해외 의대생... 당신의 경험이 곧 스펙입니다.] [전액 장학금 + 생활비 지원 + 졸업 후 100% 채용 보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의 병원에서 격무에 시달리던 간호사들, 소방서에서 밤새 구급차를 타던 구조대원들, 그리고 '도피 유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편의점 알바를 하던 해외 의대 출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입시 요강이 아니라, 인생 역전의 초대장이었다.
물론 반발도 거셌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무자격자 양산 시도", "의료의 질 저하"라며 맹비난했다. 의대생 커뮤니티에서는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 "간호사가 무슨 의사냐"며 조롱의 글이 쇄도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욕은 먹으면 배부르고, 노이즈는 곧 마케팅이다.
"많이들 오겠군."
나는 이사장실에서 CC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 정문 앞에는 벌써부터 원서를 접수하러 온 지원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그중에는 낡은 배낭을 멘 30대 여성(PA 간호사), 군복 바지를 입은 건장한 청년(특전사 의무관), 그리고 뿔테 안경을 쓴 수척한 남자(헝가리 의대생)가 보였다. 그들의 눈빛. 그것은 엘리트 의대생들의 오만한 눈빛과는 달랐다. 굶주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
"환영한다, 나의 괴물들아."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너희를 진짜 의사로 만들어 줄게. 대신, 지옥 훈련을 견뎌낸다면 말이지."
[시스템 알림] [특수 유닛 <천명 1기> 모집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지원자 수: 3,450명] [예상 경쟁률: 34.5 대 1]
게임은 시작됐다. 이제 옥석을 가려낼 시간이다.
제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