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괴물들의 드래프트

by 연구소장

[천명대학교(구 다산대) 정문 앞]


"근본 없는 잡종들이 신성한 의사가 되려 하다니! 결사반대!" "무자격자 양산하는 천명 재단, 교육부는 즉각 인가 취소하라!"


이른 새벽부터 정문 앞은 전쟁터였다. 머리띠를 두른 명문대 의대생들과 학부모 단체, 그리고 대한의사협회에서 동원한 시위대가 스크럼을 짜고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수능 0.1%라는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자신들의 성역에, 뒷구멍으로 들어오려는 이물질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철옹성 같은 시위대 너머, 개구멍과 담벼락을 넘어 꾸역꾸역 들어오는 인파가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3,450명의 지원자들.


그들의 행색은 초라했다. 시위대가 입은 명품 패딩이나 과잠바와 달리, 낡은 야상 점퍼, 색 바랜 간호복, 혹은 예비군복을 입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시위대가 갖지 못한 것이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서슬 퍼런 '독기'였다.


본관 3층 테라스. 나는 믹스커피를 씹으며 그 아수라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관이네요. 콜로세움이 따로 없습니다." 옆에 서 있던 백강우가 혀를 찼다.


"백 팀장. 저 사람들 눈빛 어때 보여?"


"글쎄요. 굶주린 들개들 같습니다. 먹이를 주면 주인의 손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인데요."


"정확해.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저거야."


그때, 김 장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사장님! 교육부랑 복지부에서 또 공문이 왔습니다. '정원 외 입학'에 대한 법적 근거를 대지 않으면 시험을 중단시키겠답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김 장로. 서랍에 있는 '그 서류' 팩스로 보내."


"그 서류라면..."


"김진혁 대표가 입원해 있을 때 사인해 준 거. [국가 재난 대응 전문 의료인력 양성 시범사업 특별법]. 여당 단독 발의로 통과된 거 몰라?"


"아! 그 '전시 및 재난 상황 한정 면허' 말씀이시군요!"


"그래. 우린 일반 의사를 뽑는 게 아냐. 전쟁 나면 총알받이 하러 갈 '특수 목적 의료인'을 뽑는 거지. 국가가 허락한 합법적인 '총알받이'라고 전해."


이것이 내가 파놓은 쥐구멍이었다. 정식 의사 정원(TO)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의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물론 기존 의사들은 이걸 '반쪽짜리 의사'라고 비웃겠지만, 실력만 갖추면 그 반쪽이 온전한 하나를 집어삼키는 건 시간문제다.


"내려가자. 쇼를 시작해야지."


[천명대학교 실내 체육관]


3,000명이 넘는 인원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땀 냄새와 긴장감이 뒤섞여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단상 위로 내가 올라가자,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반갑습니다. 천명 재단 이사장 천이환입니다."


마이크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본론만 말하죠. 여러분은 오늘 필기시험을 준비해 왔을 겁니다. 영어, 생물학, 의학 용어..."


지원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 밤을 새워가며 족보를 외웠을 터였다.


"그런데 어쩌죠."


나는 단상 위에 놓인 두툼한 시험지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흩뿌렸다. 펄럭- 하얀 종이들이 눈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리 학교는 그런 거 안 봅니다."


"......!!"


체육관이 술렁거렸다. 당혹감이 감돌았다.


"토익 900점? 필요 없습니다. 환자가 영어 문법 맞춰서 아프다고 합니까? 학점 4.5? 달달 외우기만 잘하는 샌님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러분이 받게 될 면허는 '일반 의사' 면허가 아닙니다. '재난 전문 의사'. 즉, 지옥에서 사람을 살려야 하는 면허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험은 딱 하나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체육관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중앙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그곳에는 책상 대신 수백 개의 '수술용 더미(Dummy)'와 도축장에서 갓 공수해 온 '돼지 내장'들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세팅되어 있었다.


"살려내세요."


나는 씨익 웃었다.


"제한 시간 10분. 여러분 앞에는 장이 터지고 혈관이 끊어진 환자(돼지)가 있습니다. 아직 면허가 없으니 불법 아니냐고요?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교육 목적의 시뮬레이션 센터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시작!"


[테스트 구역 A - 수술 시뮬레이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체육관은 도살장을 방불케 하는 혼란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지원자는 당황했다. 이론으로는 알지만, 미끈거리는 내장을 직접 만져보고 바늘을 꽂아본 경험이 없는 '장롱 면허'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이들이 있었다.


"거즈! 썩션!"


A구역 15번 테이블. 30대 중반의 여성. 그녀는 혼자서 집도(Surgeon)와 보조(Assist)를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왼손으로 장기를 젖히고(Retraction), 오른손으로 능숙하게 바늘을 돌렸다.


그녀의 손기술은 기계적이었다. 매듭을 짓는 '원 핸드 타이(One hand tie)'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켜보던 감독관(정혁)의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사장님, 저 여자 보십시오. 레지던트 4년 차보다 빠릅니다." 백강우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름 한수진. 지방 2차 병원 흉부외과 PA 간호사 12년 차입니다."


"12년 차라..."


"소문으로는 그 병원 과장이 알코올 중독이라, 밤에 응급 수술 들어오면 이 여자가 몰래 집도했답니다. 일명 '섀도 닥터'였죠."


"어쩐지. 폼이 예사롭지 않다 했어. 교수가 술 퍼마실 때, 환자 살리려고 피눈물 흘리며 메스 잡은 세월이 보이는군."


나는 합격 명단에 동그라미를 쳤다. "합격. 저런 사람이 진짜 명의지."


[테스트 구역 C - 응급 처치]


다른 쪽에서는 돌발 상황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환자 발생! 기도 폐쇄! 호흡 곤란!"


감독관의 외침에 지원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과서적인 하임리히법을 시도하거나, 119에 신고하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거칠게 지원자들을 밀치고 들어왔다. 짧게 깎은 머리, 구릿빛 피부, 목에는 군번줄이 걸려 있는 사내.


"비켜! 공간 확보해!"


그는 환자 모형의 목을 젖히더니,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분해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모형의 목(윤상갑상막)을 찔렀다. 응급 기관절개술(Cricothyrotomy).


"기도 확보! 산소 연결해!"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수많은 전장에서 포탄 소리를 뚫고 부상병을 지휘해 본 자만이 낼 수 있는 '지휘관의 목소리'였다.


"박철민. 특전사 707특임대 의무 부사관 출신. 아덴만 작전 때 총상 환자 혼자서 셋을 살려서 훈장 받았습니다." 백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데려와. 내 경호팀 겸 응급구조팀장으로 딱이네. 의학 지식은 가르치면 되지만, 저런 깡다구는 타고나는 거야."


[테스트 구역 F - 진단 및 약물]


이곳은 가장 조용했지만, 가장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문제, 데이터 오류입니다."


깡마른 체구에 뿔테 안경을 쓴 20대 청년이 손을 들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내가 다가가서 물었다.


"CT 상으로는 췌장염처럼 보이지만, 혈액 수치에서 젖산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이건 췌장염이 아니라, 장간막 허혈(Mesenteric Ischemia)이 진행되면서 췌장에 2차 손상이 온 겁니다. 췌장만 치료하면 이 환자, 3시간 안에 장이 괴사해서 죽습니다."


정답이었다. 일부러 함정을 파놓은 문제였는데, 유일하게 간파했다.


"이름이?" "민도현입니다. 헝가리 데브레첸 의대 수석 졸업했습니다." "근데 왜 여기 있나? 국시 보면 되잖아."


민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실기 시험 면접관이... 제 출신 학교를 보더니 그러더군요. '어디 도피 유학 갔다 온 놈이 신성한 한국 의사 물을 흐리냐'고요. 그리고는 태도 불량으로 과락시켰습니다."


카르텔. 썩어빠진 텃세.


"잘됐네. 나도 예쁜 매듭보다는 살아있는 매듭을 좋아하거든. 합격이다."


그때였다. 콰창-! 체육관 유리창 하나가 박살 나며 벽돌이 날아들어 왔다.


"으악!" 창가에 있던 지원자가 벽돌에 맞아 이마가 찢어졌다.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뚫렸다! 시위대가 진입한다!" 보안요원의 다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정문을 막고 있던 보안 라인이 무너진 것이다. 흥분한 의대생들과 외부 세력(용역 깡패들로 보이는)이 체육관 안으로 난입했다. 그들의 손에는 각목과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시험 중단해! 이 불법 행위 당장 멈춰!" "이 새끼들 다 끌어내!"


난장판이 되었다. 지원자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고, 돼지 내장이 엎어지며 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사장님! 진압할까요?" 백강우가 나서려 했다.


"잠깐."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저기 봐."


벽돌에 맞아 쓰러진 지원자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그를 밟고 지나가려 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면허 없는 내가 만져도 되나?' 하는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비켜! 환자 밟지 마!"


누군가 시위대 앞을 막아섰다. 박철민이었다. 그는 특전사 시절 익힌 체술로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의 팔을 꺾어 제압하고, 쓰러진 환자 위로 몸을 날려 보호했다.


"여기 지혈제! 압박 붕대 가져와!"


그 외침에 한수진이 달려왔다. 그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침착하게 소독 거즈를 챙겨 와 환자의 이마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녀도 망설였다. 지혈만으로는 부족했다. 찢어진 혈관을 묶어야 하는데, 이건 명백한 '의료 행위'였다.


"꿰매야 해요... 하지만 우린 면허가..." 한수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민도현이 깨진 유리 조각을 주워 들고 시위대를 향해 겨누며 공간을 확보했다. "이 사람, 쇼크 오고 있어! 법이고 나발이고 사람부터 살려야 할 거 아냐!"


그들 셋을 중심으로, 겁에 질려 있던 다른 지원자들도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서 환자를 보호하고, 누구는 구급상자를 나르고.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처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적 책임이라는 족쇄 때문에.


"비키세요! 제가 합니다!" 정혁 교수가 뛰쳐나가려 했다.


"아니." 내가 정혁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한수진, 박철민, 민도현."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체육관에 울렸다.


"지금부터 내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하지만 내 명령이 있으면, 그건 내 손이 하는 거다."


"......!!"


"내 의사 면허 걸고 지시한다. 박철민, 기도 유지해. 한수진, 3-0 나일론으로 봉합해. 민도현, 바이탈 체크하고 쇼크 오면 에피네프린 놔."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다가갔다.


"법적 책임? 내가 진다. 감옥? 내가 간다. 너희는 그냥 살려. 그게 너희가 치를 마지막 시험이다."


내 말 한마디가 그들의 족쇄를 끊어주었다. 한수진의 손이 움직였다. 망설임 없는 봉합. 박철민의 손이 환자의 목을 받쳤고, 민도현이 주사기를 꽂았다.


"허..." 난동을 부리던 명문대 의대생들이 그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다. 자신들이 '가짜'라고 비웃던 그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짜 의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상황 종료."


나는 보안팀에게 눈짓했다. 백강우와 보안팀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제압하기 시작했다.


"폭도들 전원 현행범으로 체포해. 업무 방해 및 특수 상해 혐의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환자를 처치하고 있는 100여 명의 지원자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환자 곁을 지킨 100명. 너희들이 합격이다."


"나머지는 짐 싸서 집에 가. 폭탄이 떨어져도 환자 버리고 도망가는 놈,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은 내 병원에 필요 없다."


탈락한 지원자들의 탄식과, 합격한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교차했다.


[3일 후, 천명대 의대 캠퍼스 - 특별관]


최종 선발된 100명의 '천명 1기생'들이 강의실에 모였다. 분위기는 비장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들 앞에는 지옥 같은 커리큘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교단에 섰다. 칠판에는 거대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HELL WEEK (지옥주)]


"축하한다. 그리고 유감이다."


나는 지휘봉으로 칠판을 탁탁 쳤다.


"너희는 '중고 신인'이다. 남들 6년, 10년 걸려서 배우는 걸 너희는 2년 안에 끝내야 한다. 그것도 그냥 끝내는 게 아니라, 기존 의사들을 압살할 실력으로."


"가능합니까?" 민도현이 손을 들고 물었다.


"가능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나는 뒤쪽 문을 가리켰다. 백강우가 험악한 표정으로 몽둥이를 들고 들어왔다.


"오전 6시 기상. 체력 훈련 2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론 수업.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응급실 실습. 수면 시간? 하루 4시간이면 충분해. 링거 맞으면서 공부해."


학생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못 하겠으면 지금 나가. 환불해 줄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수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박철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여기가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좋아."


나는 시스템 창을 띄웠다.


[특수 유닛 <천명 1기> 결성 완료] [집단 버프: '헝그리 정신(S)' 발동] [- 학습 속도 200% 증가] [- 피로 회복 속도 150% 증가]


"굴려. 오늘부터 '의사 공장' 풀가동이다."


그날 밤부터, 천명대 캠퍼스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밤새도록 해부학 용어를 외우는 소리, 봉합 연습을 하느라 돼지껍질을 뚫는 소리. 세상은 그들을 비웃었지만, 그들은 묵묵히 칼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노인의 시선이 있었다. 천무성 교주.


"그래... 잘 키워보거라, 아들아." 그는 CCTV 화면 속,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만든 그 군대... 나중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자본과 광기, 그리고 음모 속에서 '괴물 의사'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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