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미친개에게 목줄을 채우는 법

by 연구소장

[천명 외상센터, 제1 수술실]


"메스."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대 위에는 백강우의 부하, 김도진 하사가 엎드려 있었다. 척추 3번, 4번 분쇄 골절. 뼛조각이 신경을 누르고 있어 자칫하면 하반신 마비가 확정되는 초고난도 케이스였다.


"O-arm(3차원 촬영 장비) 돌려. 나사못(Screw) 박을 위치 잡는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넛 모양의 기계가 환자의 허리를 스캔했다. 모니터에 3D로 재구성된 척추 뼈가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허..." 참관실 유리창 너머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백강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학병원에도 한 대 있을까 말까 한 20억짜리 장비가 여기선 동네 구멍가게 전자레인지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백 선생님, 놀라지 마세요. 저거 지난주에 이사장님이 '심심해서' 사신 겁니다." 옆에서 마취과 이지영이 덤덤하게 말했다.


수술실 안. 나는 초집중 모드였다.


[시스템 경고: 신경 손상 위험 감지!] [스킬 <신의 손(Lv.1)>이 보정을 시작합니다.]


내 시야에 붉은색 실선이 나타났다. 신경 다발을 피해 나사못을 박아야 할 정확한 각도(Trajectory). 마치 게임의 가이드라인 같았다.


"드릴." 지잉-! 내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드릴링. 뼛조각을 제거하고, 인공 뼈를 삽입하고, 티타늄 나사로 고정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정혁이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속도를 따라왔다. "이사장님, 손이... 너무 빠르십니다. 신경외과 펠로우들도 이렇게는 못 합니다."


"빠르기만 하면 안 되지. 정확해야지."


나는 마지막 나사를 조이고, 현미경(Microscope)을 통해 신경막(Dura)의 상태를 확인했다. 손상 없음. 완벽한 감압(Decompression).


"봉합해." 나는 장갑을 벗어 던졌다. 수술 시간 3시간. 예상보다 2시간이나 단축된 기록이었다.


[수술실 앞 복도]


내가 손을 씻고 나오자, 백강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수술 전의 삐딱함이 사라지고,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떻습니까. 제 실력, 합격입니까?" 내가 씩 웃으며 묻자, 백강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이군." 그는 툭 내뱉듯 말했다.


"군의관 생활 15년 동안, 총상이고 파편상이고 별별 수술 다 해봤지만... 척추를 그렇게 장난감 조립하듯 만지는 놈은 처음 봤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럼 약속은?"


백강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낡은 야전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멈칫했다. 병원이라는 걸 자각한 듯했다.


"지킨다. 내 부하 놈 다리 살려줬으니, 내 목숨은 네 거다."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보안팀이라고 했나? 뭘 하면 되지? 진상 환자 패주면 되나?"


"아니요. 당신 같은 S급 인재를 문지기로 쓰기엔 아깝죠." 나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백강우 씨. 아니, 백 과장님." "과장?"


"당신은 오늘부터 '천명 특수구조팀' 팀장입니다."


나는 벽에 걸린 헬기 사진을 가리켰다. "헬기 타고 현장 나가서, 환자 싣고 오는 게 주 업무입니다. 험한 현장이 많을 겁니다. 무너진 건물, 화재 현장, 조폭들 칼부림 현장..."


나는 백강우의 흉터 난 눈을 보며 말했다. "일반 의사들은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곳. 당신이라면 들어갈 수 있잖습니까."


백강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장에서 피를 뒤집어쓰며 전우를 구하던 그의 야성이, 다시금 꿈틀거리는 듯했다.


"의사가운 입고 총 대신 메스 들고 싸우라는 거군." 백강우가 피식 웃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제법 마음에 들어 보였다.


"월급은?" "빈칸 수표 줄 테니까 적고 싶은 대로 적으세요." "콜."


백강우가 내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퀘스트 완료: '전설의 영입'] [보상: 병원의 '보안' 및 '현장 대응력'이 S급으로 상승합니다.] [특수 스킬 해금: <야전 병원(Field Hospital)> -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존율 보정 +20%]


든든하다. 이제 천명 외상센터에는 '미친개(나)'와 '사냥개(백강우)' 두 마리가 상주하게 되었다.


[일주일 후, 한국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한국대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환자는 밀려드는데, 의료진이 없었다. 천명 외상센터의 '삼계탕 밥차' 공격과 파격적인 스카우트 공세에, 응급실 간호사 80%가 사표를 던지고 떠나버린 탓이었다.


"야! 김 선생 어디 갔어! 3번 베이 환자 드레싱 누가 해!" 응급의학과 교수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대답하는 건 텅 빈 복도뿐이었다. 남아있는 건 1년 차 인턴들과 갓 들어온 신규 간호사 몇 명뿐. 그들마저도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김 선생... 어제 천명으로 면접 보러 갔습니다..." 인턴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악! 최태수 원장 이 망할 영감탱이가!" 교수는 차트를 집어 던졌다.


그때, 응급실 핫라인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VIP 전담 핫라인이었다.


"여, 여보세요? 한국대병원입니다." [여기 청와대 경호처입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급하고 위압적이었다.


[지금 VIP께서 지방 일정 수행 중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흉부 관통상. 상태가 위독합니다. 헬기로 이송 중인데, 15분 내로 도착합니다. 수술 준비하십시오.]


"V... VIP라면 설마...?" [대통령님을 수행하던 여당 대표님입니다.]


응급실장이 사색이 되었다. 여당 대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거물. 그런 사람이 흉부 관통상을 입고 온다? 지금 이 인력으로?


"안 됩니다! 지금 흉부외과 교수님들 학회 가셨고, 마취과 스탭도 없습니다! 수술 못 합니다!"


[뭐라고요? 대한민국 최고 대학병원이 수술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근처에 받아줄 병원이 어디 있냐고!]


응급실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받아줄 병원? 경기 남부에 이 정도 중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대병원 뿐이었다. ...아니, 한 곳이 더 있었다.


최근 뉴스에 도배되고 있는, 그 '사이비' 병원.


"저... 그게..." 응급실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커리어가 끝날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었다.


"천명... 천명 외상센터로 가보시죠."


[천명 외상센터, 상황실]


"성자님! 아니, 센터장님!" 김 장로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또 경찰 왔어?" 나는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아니요! 청와대...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


"여당 대표가 교통사고로 위독한데... 한국대병원에서 수술 불가라고 뺀지(거부)를 놨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김 장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정치인. 그것도 여당 대표. 만약 살려내면 대박이지만, 수술하다 죽기라도 하면 병원 문 닫는 걸로 안 끝난다. 사이비 프레임 씌워져서 공중분해 될 게 뻔했다.


"거절할까요? 이건 너무 위험 부담이..." 김 장로가 덜덜 떨며 물었다.


나는 만화책을 덮고 천천히 일어났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거절? 미쳤어?" 이건 기회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권력'이라는 방패를 얻을 기회. 그리고 한국대병원 원장 최태수의 면상에 결정타를 날릴 기회.


"백 팀장!" 내가 소리치자, 옆방에서 군복 바지에 가운을 걸친 백강우가 튀어나왔다. "준비됐습니다."


"헬기 띄워. VIP 모시러 간다." 나는 가운을 휘날리며 상황실을 나섰다.


"정혁, 수술방 1번 열어! 그리고 홍보팀!" "예!"


"기자들 다 불러.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대학병원한테 버림받고 '사이비 소굴'로 실려 오는 꼴을 생중계해야 하니까."


[메인 퀘스트 발생: 권력의 정점] - VIP 환자를 살려내십시오. - 성공 보상: 의료법 개정안 발의, 국비 지원금 획득. - 실패 시: 병원 폐쇄 및 구속.


리스크? High Risk, High Return.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방식이지.


"가자, 역사 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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