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점심시간, 한국대병원 정문 앞]
"뭐야? 저기 왜 저렇게 시끄러워?" "삼계탕 준대! 무료래!"
점심시간을 맞아 쏟아져 나온 간호사, 전공의, 실습생들이 병원 정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5톤 트럭 두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트럭 짐칸이 활짝 열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에서 구수한 인삼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위로, 건물 2층 높이만한 초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경축! 천명 외상센터 그랜드 오픈] [메뉴: 전복 삼계탕 (무한 리필)] [채용 조건: 연봉 3배 / 주 4일 근무 / 나이트 수당 50만 원 / 기숙사 1인 1실 제공] [※ 병원장님 욕하고 오신 분 가산점 드림]
"미쳤다... 진짜 연봉 3배래?" "야, 나 이번 달 월급 또 밀렸는데 저기나 가볼까?" "주 4일 근무가 말이 돼?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웅성거리며 삼계탕 그릇을 받아 들었다. 닭다리를 뜯으며 현수막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흔들렸다. 밥 먹으러 왔다가 인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악마의 밥차였다.
트럭 앞에는 김 장로와 '천명 리쿠르팅 팀'이 정장 차림으로 서서 명함과 입사 지원서를 나눠주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식사 맛있게 하시고, 이력서 한 장 쓰고 가세요!" "볼펜도 드립니다! 몽블랑이에요!"
입사 선물로 몽블랑 볼펜을 뿌리는 병원이라니. 지나가던 내과 교수가 혀를 찼다. "저, 저 근본 없는 놈들! 신성한 의료 현장에서 장사질을 해?"
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던 펠로우(전임의)들의 시선은 볼펜과 현수막에 고정되어 있었다. 교수가 안 볼 때 슬쩍 명함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 손길이 분주했다.
[한국대병원장실]
"이게 무슨 개망나니 같은 짓이야!"
와장창-! 한국대병원장 '최태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화분을 집어 던졌다.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인파, 그리고 펄럭이는 저 도발적인 현수막. 이건 선전포고 수준이 아니라 대놓고 모욕을 주는 행위였다.
"원장님, 진정하십시오. 저런다고 누가 사이비 종교 병원에 가겠습니까?" 비서실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렸다.
"안 가긴 왜 안 가! 지금 응급실 간호사 10명이 단체로 사표 냈어! 마취과 펠로우들도 면담 요청 들어오고 있다고!"
최 원장은 뒷목을 잡았다. "안 그래도 외상센터 적자라고 정부 지원금 끊겨서 골치 아픈데, 인력까지 빠져나가면 우리 병원 문 닫아야 해!"
그때, 원장실 전화벨이 울렸다. 보건복지부 차관이었다. "네, 차관님. 아, 뉴스 보셨습니까? 네... 그 천명 재단이라는 곳이... 뭐요? 외상센터 지정 신청을 했다고요?"
최 원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니, 차관님! 거긴 무허가 시설 아닙니까? 실사도 안 거치고 어떻게... 네? 청와대에서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요?"
전화를 끊은 최 원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천이환... 이 듣보잡 놈이.' 감히 대한민국 의료계의 정점인 대학병원을 상대로 머리싸움을 걸어?
"비서실장." "예, 원장님." "검찰 쪽에 연락해. 그리고 국세청에도." 최 원장의 눈이 독사처럼 가늘어졌다.
"저 놈들 자금 출처, 털면 먼지 안 나오겠어? 사이비 종교가 깨끗할 리가 없지. 아주 탈탈 털어서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 버려."
[천명 외상센터, 임시 면접실]
같은 시각, 나는 밀려드는 면접자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쭈뼛거리는 30대 여성이 들어왔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전형적인 '갈려 나간' 간호사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대병원 응급중환자실(EICU) 7년 차 간호사 김지은입니다."
나는 이력서를 훑어봤다. 7년 차.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이런 인재가 제 발로 걸어오다니.
"지원 동기가 뭡니까?" 내가 묻자, 김지은 간호사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돈... 많이 주신다고 해서요." "솔직해서 좋네요. 또?"
"그리고... 태움(간호사 괴롭힘 문화)이 없다고 들어서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저희 수간호사 선생님이... 임신 순번제(임신 시기를 병원이 지정해 주는 악습) 어겼다고 매일 갈구거든요. 야근 수당도 안 주고..."
나는 이력서를 책상 위에 덮었다. "합격."
"네? 질문 더 안 하세요?"
"7년 버텼으면 실력은 볼 것도 없고. 그동안 못 받은 야근 수당, 우리가 사이닝 보너스로 일시불 지급해 드립니다. 임신? 하고 싶을 때 하세요. 육아 휴직 3년 유급으로 드립니다."
김지은 간호사의 눈이 커졌다. "지, 진짜요? 사기 아니죠?"
"사기면 노동청에 신고하세요. 아, 그리고." 나는 씨익 웃었다.
"그 괴롭히던 수간호사 이름 적고 가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지원하면 서류 컷 시키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나갔다.
[시스템 알림] [숙련된 의료진 영입 성공! (현재 간호 인력: 50명 / 목표: 100명)] [병원 평판이 상승했습니다.]
"다음!"
이번에 들어온 건 남자였다. 덩치가 산만 한 게 레지던트라기보다는 보디가드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한국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4년 차, 마동석... 아니, 마동철입니다!"
"정형외과? 뼈 잘 맞추나?" "망치질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10시간 동안 뼈만 깎아도 지치지 않습니다!"
"체력 좋군. 합격. 연봉 2억." "충성! 뼈를 묻겠습니다!"
면접은 일사천리였다. 돈과 복지라는 무기 앞에서는 애사심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그동안 열정 페이를 강요받으며 착취당했던 의료진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마치 '쉰들러 리스트'가 아니라 '닥터 리스트'를 작성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김 장로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표정이 미묘했다. "성자님, 좀... 특이한 지원자가 한 명 왔는데요."
"특이해? 사이비 종교라고 욕하러 온 놈인가?" "아니요, 그게 아니라... 스펙이 좀..."
김 장로가 내민 이력서를 본 순간,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름: 백강우] [나이: 45세] [경력: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장 역임 / 아프가니스탄 파병 의료지원단장 / 현 무직]
백강우? 전생의 나(강진혁)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군의관 출신으로, 총상 환자 수술에 있어서는 국내 1인자로 불리던 사람. 하지만 윗선과 마찰을 빚고 군복을 벗은 뒤 야인(野人)으로 지낸다고 들었는데.
"들여보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낡은 야전 상의를 걸친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한쪽 눈가에 깊은 흉터가 있는, 짐승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나를 삐딱하게 내려다봤다. "네가 천이환이냐?"
"초면에 반말입니까?" 나는 웃으며 응수했다. 기에 눌리면 안 된다.
"소문은 들었다. 돈 지랄해서 병원 놀이하는 꼬맹이가 있다길래 구경 왔다." 백강우가 콧방귀를 꼈다.
"근데 와서 보니까... 장비는 제법이더군. 헬기도 두 대나 있고."
"구경 잘 하셨으면 가시죠. 면접 보러 오신 태도는 아닌 것 같은데."
"면접?" 백강우가 피식 웃더니, 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던졌다.
"이거나 고칠 수 있나 봐라."
나는 종이를 펼쳤다. 환자의 차트였다. CT 사진을 보니 상태가 심각했다. 척추 뼈가 산산조각 났고, 신경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누굽니까?" "내 부하 놈이다. 훈련하다가 헬기 레펠에서 떨어졌는데... 군 병원에서는 못 고친다고 전역시키라더군. 민간 병원? 돈 없다고 안 받아줘."
백강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0원 영수증 끊어주는 미친놈이라며. 이 놈도 공짜로 고쳐줄 수 있나?"
이건 테스트다. 단순히 돈이 많은지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의사'인지, 아니면 그냥 관심받고 싶어 하는 관종인지 시험하려는 것이다.
나는 차트를 꼼꼼히 살폈다.
[환자 상태: 요추 3, 4번 분쇄 골절. 하반신 마비 진행 중.] [수술 난이도: S급] [성공 확률: 40%]
어렵다. 신경외과 전문의도 손사래 칠 케이스다. 하지만 내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공짜로는 안 됩니다."
백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소문이랑 다르잖아. 역시 너도..."
"몸으로 갚으라고 하세요." 내가 말을 잘랐다.
"수술해서 걸어 나가게 해줄 테니까, 대신 당신이랑 그 부하 놈. 우리 병원 보안팀으로 들어와."
"뭐?"
"병원에 진상 환자들이 많아서 말이죠. 당신 같은 미친개... 아니,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나는 백강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콜?"
백강우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맹랑한 놈 보게. 군단장 앞에서도 쫄지 않던 나한테 흥정을 걸어?"
그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좋다. 내 부하 놈, 다시 걷게만 해주면 내 남은 인생 네놈 병원 경비견으로 써주마."
[시스템 알림] [전설 등급 인재 <백강우(S급 외상 전문가/보안 전문가)> 영입 퀘스트 발생!] [미션: 척추 재건 수술을 성공시키십시오.]
판이 커진다. 간호사 군단에 이어, 전설의 군의관까지. 이 정도면 아주대 병원이 아니라 국방부랑 맞짱 떠도 되겠는데?
"김 장로! 수술방 잡아! 신경외과 세트 준비하고!"
나는 가운을 휘날리며 일어섰다. 오늘도 천명 외상센터의 밤은 길 것 같다.